130년 日목조주택, 명동 재개발에 흔들

머니투데이 김유경 기자 2013.08.25 16:10
글자크기

[100년주택을 찾아서]<2>서울 중구 명동길 87-6 '수향'

편집자주 국토교통부가 2015년부터 100년 주택인 '장수명 아파트' 인증제 도입에 나선다. 유럽에선 100년 주택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고속성장을 하며 재개발·재건축을 해온 국내에서는 100년 넘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택이 100년 이상을 버텨내려면 유지·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100년을 버텨온 주택을 찾아 역사와 유지·관리 노하우, 어려움 등을 알아본다.

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 / 사진 = 김유경 기자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 / 사진 = 김유경 기자


"17세 꽃다운 나이에 처음 이집에 종업원으로 왔어. 그 때 80세 정도 돼 보이는 일본 할아버지가 당신 백일 사진을 들고 찾아왔는데 그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이라고 하더라고. 사진을 보니까 정말 이 집 맞더라고. 그러니까 130년도 넘은 집이지."

서울 중구 명동길 87-6(연면적 290.58㎡)에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세워진 목조주택(이하 '수향')의 이야기다. 이 집이 '수향'이란 한정식집으로 운영된 지도 최소 55년의 세월이 흘렀다.



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을 38년간 지킨 이유순 사장 / 사진 = 김유경 기자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을 38년간 지킨 이유순 사장 / 사진 = 김유경 기자
'수향'을 운영하는 이유순 사장(72)은 "1958년 처음 '수향'에 왔을 때는 어린 종업원이었지만 이후 1975년 4월 서른넷이 돼 다시 와서는 사장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38년의 세월을 '수향'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한평생을 보낸 셈이다.

'수향'이 정확히 언제 건축됐는지, 언제 음식점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수향'의 주인이었던 박 할머니 앞으로 소유권이 등재된 것은 1961년 7월이며, 2010년 돌아가실 때까지 소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은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소유권이 이전돼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박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 집을 상속받은 박 할머니의 딸이 160억원의 재개발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 / 사진 = 김유경 기자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 / 사진 = 김유경 기자
중구청 관계자는 "60년 이전 건축물은 준공연월일이 등재돼 있지 않다"며 "대장에 등재돼 있지 않으면 언제 건축됐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1930∼4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향'은 을지로2가 사거리에서 명동성당으로 올라오는 도중 서울YWCA 맞은편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는데 외부에서는 100년 넘은 고풍스런 목조주택의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녹색 페인트칠이 강한 시멘트 담길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집 내부를 구경하고 나와 다시 보면 보물을 감추기 위해 위장인 듯싶다.

'ㄱ'자형으로 건축된 '수향'은 구조가 독특하다. 보통 우리나라 주택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원이나 마당이 먼저 보이지만 이 주택은 정원을 품고 있다. 대문을 열면 주택으로 들어가는 복도가 바로 나오고 복도 끝으로 미닫이 유리문이 투명한 벽처럼 펼쳐지는데, 이 유리문을 열면 오래된 아카시아 나무를 비롯한 각종 수목과 우물,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이어진다. 대문이 북향이고 정원이 보이는 복도가 남향이다.


우물은 원형이 아닌 사각형으로 큰 돌들을 쌓아올려 만들었고 위에는 나무판으로 덮었다. 우물 왼쪽으로는 바로 연못과 이어지는데 연못 역시 큰 돌들을 배치해 타원형으로 조성했다. 돌 사이사이에는 예쁜 꽃과 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정원쪽으로는 모두 미닫이 유리문을 설치해놓은 것도 특징이다. 'ㄱ'자형 집 안 어디에서나 정원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쉽게 나아갈 수 있어 하나의 공간이나 진배없다.

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 / 사진 = 김유경 기자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 / 사진 = 김유경 기자
38년간 '수향'에서 숙식과 일을 같이 해온 이 사장은 "집의 구조가 나랑 딱 맞는 것 같다.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다.

'수향'은 전통적인 일본 주거문화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지진에 의해 무너질 확률이 낮은 2층집이고, 흔들림에 강한 목조건물이다. 창문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방과 방 사이에는 '후스마'라는 종이문 미닫이가 있고 바깥쪽에는 '쇼지'라는 장지문이 있다.

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 / 사진 = 김유경 기자100여년된 목조주택 '수향' / 사진 = 김유경 기자
세월의 흔적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방마다 오래된 그림들이 여러 점 걸려있는데 최소한 50년은 된 작품들이라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국내 첫 도입된 음식점 세금계산기라는 묵직한 물건도 낡은 가구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사장은 "집이 낡아 3년에 한번씩은 수리를 해줬는데 재개발 예정이라 5년째 수리가 안된 상태"라며 "매일 청소를 하고 있지만 수리가 필요한 곳이 많다"고 말했다.

수향은 이미 집주인이 보상금을 받은 터라 명동구역 제4지구로 사업시행인가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시내 많지 않은 100년 주택이 개발에 밀려 덧없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일본 목조주택이지만 100년을 버텨온 지혜도 함께 사라지는 셈이다.

◇1900년 초기 일본주택의 구조

김용안 씨의 저서 '키워드로 여는 일본의 향'에 따르면 일본 메이지(1867~1912년) 후기에는 재래주택의 기능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면서 복도를 이용하는 복도형 주택(츄우로오카 가타 쥬우타쿠)이 제창됐다. 이전에는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 다른 방을 거쳐야하는 구조여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문제가 있었다.

1910년대에는 이른바 문화주택이 생겨났다. 단란한 한 가족이라는 주제 아래, 집의 중심에 거실을 배치하고 그 거실 남향에 정원을 배치해 바라보도록 했다. 또 입식의 부엌과 식당과도 통하게 했고 가족 각방의 구획을 명확히 해 프라이버시를 살리는 기능 중시와 함께 쾌적함을 중시하는 발상이 구현됐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