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명 몰리고 땅값 2배로… 산골마을 무슨일?

머니투데이 경주(경북)=양영권 기자 2013.07.1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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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세계는 일자리 전쟁중, 우리는...]<4부 2-1>경주 건천마을

건천제2산업단지 전경. 전체 30만여평의 83%에 기업이 입주해 있다. / 사진=양영권 기자 건천제2산업단지 전경. 전체 30만여평의 83%에 기업이 입주해 있다. / 사진=양영권 기자


"예약 않고 오셨어요? 죄송합니다. 자리가 없어서 다음에 오셔야겠어요."

KTX 신경주 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경북 경주시 건천읍내에 있는 정육 식당 '영남암소'. 지난 5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지만 150석은 족히 돼 보이는 자리가 꽉 차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잡아온 소를 손질하던 식당 주인 김종웅 씨(66)는 "매일 그렇지는 않지만 예약이 넘쳐 손님을 못 받을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1995년 10평 정도의 공간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가정집 2 채를 터 식당으로 사용한다. 도시로 나갔던 아들도 내려와 일을 돕고 있다.



건천 읍내에는 비슷한 규모의 소고기 전문 식당이 6개가 더 있다. 모두들 김 씨네 식당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야' 밥을 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내에서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김종웅씨. /사진=양영권 기자 경북 경주시 건천읍내에서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김종웅씨. /사진=양영권 기자
인근에는 도시에만 있다는 파리바게트 등 유명 제빵, 커피 체인점이 성업 중이었다. 태권도장과 보습학원 간판이 줄지어 있다. 스크린골프 연습장도 문을 열었다. 200미터 길이의 실외 골프연습장도 조만간 건립이 완료될 예정이다.

원룸 40여 동이 있지만, 이것도 부족해 현재 20여 동이 추가로 건설 중이다. 2010년에는 443세대 규모의 LH아파트가 입주를 완료하는 등 대형 아파트들도 들어서고 있다.



◇ 경주에서 유일하게 인구 증가=경주 건천 마을은 '제조업'이 마을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건천이 처음부터 이렇게 '잘나가는' 마을이었던 것은 아니다.

건천은 김유신 장군이 검술을 연마했다던 단석산과 선덕여왕의 전설이 서린 여근곡을 품고 있는 오봉산, 동학의 발상지 구미산 등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민들은 계곡을 따라 들어서 있는 천수답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느 농촌마을처럼 주민의 연령이 높아 농사짓지 않고 방치한 논도 많았다.
건천 읍내에 들어서고 있는 원룸 건물들 /사진=양영권 기자 <br>
건천 읍내에 들어서고 있는 원룸 건물들 /사진=양영권 기자
하지만 2009년, 산을 깎아 만든 건천제2일반산업단지에 기업들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9000여명이던 읍민은 1만2000명 수준으로 늘었다. 경주 관내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나는 마을이다.

공단에는 현재 17개 업체가 입주해 20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이 대부분 원룸이나 기숙사에 살면서 주민등록은 옮기지 않은 것을 감안할 때 유동인구까지 포함하면 실제 인구는 훨씬 많다. 이 때문에 원룸을 지을만한 땅의 가격이 평당 70만원 수준이던 것이 현재는 140만원으로 치솟았다.


◇ "농한기에도 노는 노인 없어"=공단은 지역 주민들에게 상권 활성화뿐 아니라 일자리도 선물했다. 고령의 주민들은 공장과 기숙사 원룸 등의 경비, 청소 용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건천 제2산업단지에 입주한 한 업체의 기숙사./사진=양영권 기자건천 제2산업단지에 입주한 한 업체의 기숙사./사진=양영권 기자
수출 포장 전문업체 '아이존'의 기숙사에서 만난 60대 아주머니는 농사를 짓다 이곳에서 일을 얻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직원들이 출근한 사이 청소를 하는 게 주된 업무다. 아주머니는 "지금은 아저씨(남편) 혼자 농사를 짓는다"며 "예전에는 뙤약볕에 논에서 일하느라 힘들었는데, 적은 돈이지만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재미로 이곳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최정환 건천읍장은 "다른 농촌은 고령의 농민들이 농사철에만 일하고 상당 기간을 사실상 실업 상태에 있는 게 대부분"이라며 "우리 읍에는 인근 공단에서 나오는 일거리로 놀고 있는 노인들이 별로 없다"고 전했다.

건천 마을의 성장은 민간의 추진력과 지자체의 지원이 시너지를 낸 덕분이다. 제2산업단지를 계획해 건설하고, 현재 운영 중인 곳은 중견그룹 성우하이텍의 계열사인 '공단디앤씨'.
3천명 몰리고 땅값 2배로… 산골마을 무슨일?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나 금융회사 차입이 없이 사업을 진행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차질 없이 공단을 건설할 수 있었고, 이는 입주 업체의 신뢰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에 선박용 엔진을 납품하는 서한ENP, 교량용 와이어 등 특수선재 분야에서 입지를 구축한 고려제강, 두산중공업의 원전, 담수화설비 등에 들어가는 특수 파이프를 납품하는 이스트밸리TI 등 알짜 중견기업들이 다수 입주했다.

◇기업 건설에 도지사 전폭 지원…"民官협력 모범사례"=여기에 김관용 경북지사가 적극 지원했다. 공단 건설현장을 수차례 방문해 입주업체가 전기 공사 비용 부담을 놓고 한전과 갈등을 빚을 때는 직접 나서 중재를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건천 읍내에서 볼 수 있는 트럭과 건설 장비들. /사진=양영권 기자 건천 읍내에서 볼 수 있는 트럭과 건설 장비들. /사진=양영권 기자
박재곤 건천2리 이장은 "고등학교만 나와서 취업을 못하는 동네 청년들이 거의 다 공단에 취업하고 있는데, 공단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인구가 늘고 활기찬 마을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마운 마음에 행정적으로 도움을 준 김 지사에게 감사패를 보내자는 얘기도 많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성장도 놀랍지만 향후 성장은 더 기대된다. 제2산업단지에 입주한 중견기업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을 위해 제3일반산업단지가 인가를 완료하고 조만간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

이기영 공단디앤시 대표는 "건천은 철강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포항까지 25분, 자동차·조선 대기업이 몰려있는 울산까지는 40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이들 회사의 협력업체들이 입주할 수 있는 적지"라며 "공단 건설에 부수적으로 지역 사회가 발전하는 데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수십조원을 들여 건설한 공단이 텅 비어 있는 것과 달리 날로 번창하는 경주건천산업단지. 박근혜정부의 고용률 70%를 달성하고 성장률을 높여 국민이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고할 성공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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