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의 혁명' 베자르, 비운의 천재 니진스키를 만나다

머니투데이 글·사진= 송원진 바이올리니스트·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2013.07.0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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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진의 클래식 포토에세이] 불새와 목신의 오후, 그리고 볼레로

편집자주 <송원진의 클래식 포토 에세이>는 러시아에서 17년간 수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이 직접 찾아가 만난 세계 유수의 음악도시와 오페라 극장, 콘서트홀을 생생한 사진과 글로 들려주는 '포토 콘서트'입니다. 그 곳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공연과 연주자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화려하고 강렬한 터치로 러시아의 광활한 음악세계를 들려주는 그가 만난 음악과 세상, 그 불멸의 순간을 함께 만나보세요.

↑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외관 ⓒ사진=송원진↑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외관 ⓒ사진=송원진


↑엄청 많은 인파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송원진↑엄청 많은 인파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송원진
몇 년 전 발레뤼스(Ballet Russe)를 창단하고 러시아 예술을 전 세계에 알린 러시아 프로듀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Diagilev, 1872-1929)의 발자취를 따라 스위스 몽트뢰까지 간 적이 있다.

스위스의 살인적인 호텔 값 때문에 부부가 운영하는 아주 작은 호텔에 묵은 적이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내가 음악가라는 사실을 알고 자부심 가득하게 DVD 하나를 추천해줬다. 그것은 몽트뢰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떨어져있는 로잔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의 DVD였다.



모리스 베자르가 누구인가? 20세기 발레의 혁명가로 불리는 안무가다. 그는 혁명적이고 대중적인 안무로 모던발레의 역사를 새로 썼다. 안타깝게도 베자르는 2007년 세상을 떠났지만 이번에 파리에서 바로 이 발레단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공연의 타이틀은 <바츨라프 니진스키를 기리며> 였다.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봄의 제전> 초연당시 충격적인 안무를 맡았던 전설의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1959년 모리스 베자르는 니진스키와는 또 다른, 완전히 새로운 해석으로 <봄의 제전>을 선보여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남성 무용수 위주의 파워풀한 안무로 유명한 베자르의 <봄의 제전>은 남녀 커플의 내재된 성적 본능을 주제로 에로틱한 요소가 가미된 발레로 충격과 함께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 티켓 검사가 이루어지는데 정말 줄이 길었다. 이 곳을 통과하면 환상의 세계가 시작된다. ⓒ사진=송원진↑ 티켓 검사가 이루어지는데 정말 줄이 길었다. 이 곳을 통과하면 환상의 세계가 시작된다. ⓒ사진=송원진
↑ 반가운 샤갈의 천장화 . ⓒ사진=송원진↑ 반가운 샤갈의 천장화 . ⓒ사진=송원진
↑불이 꺼져가는 샹들리에. ⓒ사진=송원진↑불이 꺼져가는 샹들리에. ⓒ사진=송원진
이날의 공연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L’Opera Garnier)에서 있었다. 화려한 샤갈의 천장화 ‘꿈의 꽃다발’ 아래서.

파리에서 3일동안 이어진 베자르 발레단의 공연은 모든 티켓이 일주일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공연 당일 날 현장에 가보니 "티켓 하나 남는 것 없나요?" 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어떻게든 티켓을 구해보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까지 내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본 공연 중 기다리는 사람이 제일 많은 공연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내 자리를 찾아 앉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규칙적이지 않은 자리 번호를 찾아 헤매다 간신히 내 자리에 가보니 다른 사람이 조용히 묵비권을 행사하며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안내원이 뛰어와서 해결해 주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됐다.

↑  무대가 끝난 후 커튼 콜의 모습. ⓒ사진=송원진<br>
↑ 무대가 끝난 후 커튼 콜의 모습. ⓒ사진=송원진
↑ 멋있는 무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송원진↑ 멋있는 무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송원진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고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첫 무대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였다. 이 무대에서 모리스 베자르 안무로 1970년 초연된 이작품은 가운데 떠있는 붉은 달이 정말 인상적이다. 명불허전,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첫 무대가 끝났다.

언제나 봐도 멋있는 오페라 가르니에의 무대. 내가 앉은 자리는 정면이 딱~ 보이는 조금 높은 곳이었다. 언제나 높은 곳에 앉으면 샤갈의 천장화 <꿈의 꽃다발>을 더 가까이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인터미션 시간 20분이 흘렀다. 이제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1912년 바츨라프 니진스키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목신의 오후> 초연 버전이 이어졌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를 위한 전주곡>에 말라르메의 시를 바탕으로 니진스키가 직접 안무를 했고 무대 디자인과 의상은 레온 박스트가 맡았다.

당시 니진스키는 반인반수의 기괴한 의상을 입고, 춤 동작은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착안해서 드뷔시 음악만큼이나 느리고 노곤한 움직임을 만들었다. 동작보다 포즈가 중요한 발레가 최초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님프가 두고 간 스카프를 향한 목신의 마지막 포즈는 점잖은 파리 시민으로부터 외설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 니진스키 버전의 의 독특한 커튼 콜 모습. ⓒ사진=송원진↑ 니진스키 버전의 의 독특한 커튼 콜 모습. ⓒ사진=송원진
↑ 제롬 로빈스 안무의  후 커튼 콜 모습. ⓒ사진=송원진↑ 제롬 로빈스 안무의 후 커튼 콜 모습. ⓒ사진=송원진
니진스키의 천재성이 드러났던 작품, 그러나 그는 28살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정신병에 걸려 더 이상 춤을 출 수도, 놀라운 안무도 남길 수 없었다.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었으며, 나머지 30년은 암흑과 침묵 속에 살다간 비운의 천재...

바로 이어진 공연은 1953년 제롬 로빈스(Jerome Robbins) 안무의 <목신의 오후>였다. 일주일 전 <봄의 제전> 초연 100주년 기념 공연에서 똑같은 음악에 니진스키의 안무와 자샤 발츠의 안무를 같이 본 것처럼 이번에도 두 개의 안무를 같이 보니 정말 완전히 다른 감흥을 느끼게 됐다.

↑ 공연 후 커튼 콜, 지휘자도 무대에 올라와 청중에게 인사 중이다. ⓒ사진=송원진↑ 공연 후 커튼 콜, 지휘자도 무대에 올라와 청중에게 인사 중이다. ⓒ사진=송원진
하지만 이날 내게 최고의 작품은 마지막에 있었던 <볼레로>였다. 베자르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작품이다.

라벨의 <볼레로>, 그 음악이 가지고 있는 단순하면서도 갈수록 강렬해지는 특유의 비트와 리듬이 베자르의 힘과 관능미를 앞세운 무용수들의 동작과 혼연일체 되어 놀라운 시청각적 흥분을 가져다 주었다. 무대 뒤쪽에 커다란 거울을 이용하고 또 조명을 특이하게 사용해서 더욱 몽환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유튜브에서 베자르 발레단의 <볼레로>를 찾아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본 것은 영상으로 보았던 그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거울과 조명을 이용해 명암을 극대화 시켜 역동성과 심장박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이작품은 정말 이것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꼭 실제로 무대를 봐야만 하는 그런 공연이다.

심장이 터질듯한 <볼레로>가 끝나자 극장이 터질 것 같은 함성과 함께 기립박수, 브라보가 쏟아져 나왔다. 모두에게 최고조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밤이었다.

☞ 7월 나눔콘서트 : 피아졸라와 파가니니, 그리고 차이콥스키
->'송원진,송세진의 소리선물' 7월21일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



◇ 클래식도 즐기고 기부도 하는 <5천원의 클래식 콘서트>
<송원진·송세진의 소리선물>콘서트가 매월 세번째 일요일 오후 1시 서울 KT 광화문지사 1층 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열립니다. 이 콘서트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클래식 콘서트의 티켓 가격을 5천원으로 책정하고, 입장료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가정의 청각장애 어린이 보청기 지원을 위해 기부합니다. 7월 공연은 21일 일요일 오후 1시입니다. 인터넷 예매가 가능합니다. ( ☞ 바로가기 nanum.mt.co.kr 문의 02-724-7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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