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수 삶던 17살때 생생"

머니위크 문혜원 기자 2013.06.15 09:47
글자크기

[머니위크]People/ 여경옥 롯데호텔 이사②

사진=류승희 기자사진=류승희 기자


여경옥 롯데호텔 '도림'셰프는 지난 24년간 신라호텔 '팔선'의 간판셰프로 있다가 자신의 이름을 건 '루이'를 내기 위해 호텔을 떠났다. 다시 그가 경쟁 호텔인 '도림'으로 돌아온 것에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여 셰프가 새롭게 둥지를 튼 도림에서 새로운 식당에 대한 포부를 들어봤다.



◆ 도림을 최고의 식당으로

처음 그의 눈에 들어온 도림은 공부는 잘 하지만 매력 없는 모범생같은 느낌이었다. '도림'하면 떠오를 만한 특별한 메뉴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 잘 하는 식당도 좋지만 도림만이 가진 장점을 개발할 생각입니다. 메뉴로는 제가 가장 잘 하는 불도장이나 샥스핀이 될 것 같습니다. 최고의 식재료를 사용함은 물론이고요."



그는 또 다른 방법으로 스토리텔링을 얘기했다. 중국의 대표 보양식인 불도장은 전복, 바닷가재, 돼지 발굽의 힘줄 등 20가지 재료를 넣고 3시간 동안 푹 고아 만든 일품요리다. 스님이 담을 넘을 정도라는 불도장(佛跳牆)의 이름처럼 맛이 뛰어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음식에도 스토리가 있어요. 최고급 음식인 불도장도 잘 모르고 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그래서 각종 문헌을 뒤져서라도 불도장에 얽힌 스토리를 얘기해주고, 조리 시 어떤 점을 염두에 두는지 얘기하죠."

음식을 먹으러 왔다가 얽힌 이야기까지 듣게 되면 고객의 호기심은 더해진다. 음식도 알고 먹는 것과 모르는 채 먹는 게 천지차이가 있다는 것. 손님도 만족감에 다시 도림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 최고의 길



35년간 중식계에 몸을 담으면서 이미 그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신라호텔의 팔선이 지금의 입지를 다지기까지는 여경옥 셰프의 조리노하우와 창의적 시도가 크게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광동요리의 대가인 그는 사천요리와 북경요리, 상해요리까지 섭렵해 중국 4대진미에 모두 정통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1990년대에는 방한한 장쩌민 전 주석에게서 "한국에도 이런 중식 요리사가 있느냐"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35년 요리경력 중에서도 처음 중식계에 발을 들이던 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는다.

요리를 배우기도 전, 그저 짜장면을 배달하던 그가 "기술을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조언에 처음으로 국수를 삶던 때였다.

"제대로 된 식사를 만든 건 아니었어요. 그저 면만 3~4그릇 삶았을 뿐이었죠. 하지만 그때 벅차오르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손님을 위해서 국수를 삶은 게 처음이어서 그랬나 봐요. 당장 형님께 전화를 걸어 '형 나 지금 국수 삶았어'라고 얘기했죠."

여 셰프는 어느덧 국수를 처음 삶던 17살로 돌아간 것 같다. 그의 눈가가 촉촉해지며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화교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중국어도 잘 못했던 그. 말부터 배우는 걸로 시작해 이제는 중식 요리계의 1인자가 됐다. 그의 남다른 노력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것이다.

다시 최고급 식당을 만들기 위해 요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여 셰프. 그가 열어갈 새로운 도전에 중식계는 물론 호텔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