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엄단?" CJ비자금 5년간 수사 미적, 왜

뉴스1 제공 2013.06.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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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윤상 진동영 기자 =
서울 중구 남대문로 CJ그룹 본사 앞 신호등에 적신호가 켜졌다.  News1 허경 기자서울 중구 남대문로 CJ그룹 본사 앞 신호등에 적신호가 켜졌다. News1 허경 기자


검찰의 CJ그룹에 대한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치밀하고 속도감 있는 수사가 전개되고 있지만 5년 전 CJ 전 재무팀장 살인청부 의혹 당시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도 이제야 수사에 착수한 것을 두고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CJ그룹의 비자금 의혹은 2008년 이재현 회장의 차명재산을 관리하던 이모 전 재무팀장이 사업추진 과정에서 살인청부 의혹에 휘말리면서 처음 드러났다.



이 전 팀장은 투자자의 사업부진으로 자금회수가 어려워지자 증거인멸을 시도하려 살인청부를 의뢰한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USB가 처음 발견됐다.

경찰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가 수사 중인 자료와 증거품을 넘겨받아 분석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씨의 망가진 USB에 저장된 이 회장의 차명재산 운용내역과 재산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검찰은 이 회장 비자금 의혹의 단초가 된 USB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지만 조세포탈 부분에 대해 국세청에 통보하고 수사를 일단락 지었다.

◇5년간 검찰 뭐했나…CJ '정권 비호설'도

검찰은 2008년 수사 후 CJ그룹에 대한 내사를 진행해 왔다.


2008년 수사과정에서 수집된 자료에 더해 2010년께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 정보까지 넘겨줬지만 본격적인 수사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2008년 복원된 USB에는 이 회장의 예금, 주식, 미술품 등 차명재산과 관련된 핵심정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여기에는 이씨가 이 회장에게 쓴 A4 용지 10장 분량의 협박성 편지도 있었다.



2010년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CJ그룹이 해외에서 조성한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으로 회사 주식 70여억원 어치를 매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검찰에 통보했지만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 회장의 모교인 고려대 인맥을 중심으로 한 MB정부 핵심인사들의 비호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당시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 실세였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왕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등이 '고려대 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또 다른 정권 실세인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검찰 내에서도 한상대 전 검찰총장,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고려대 라인'이 이 회장과 가까웠다.

최교일 전 지검장은 최근 CJ그룹 압수수색 전후로 검찰 수사팀에 청탁성 연락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의 경우 사상 초유의 검란 사태와 대선, 중수부 폐지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제대로 된 수사착수가 어려웠을 수 있지만 이에 앞선 시기에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안한 점은 여전히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CJ그룹의 해외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5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이재현 회장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치고 이 회장의 자택을 빠져나가고 있다.  News1 유승관 기자CJ그룹의 해외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5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이재현 회장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치고 이 회장의 자택을 빠져나가고 있다. News1 유승관 기자
◇국세청, 1700억원에 '봐주기' 논란



CJ그룹의 탈세 여부를 확인할 1차 책임이 있는 국세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검찰은 2008년 수사 당시 CJ그룹 임직원 등 명의로 된 차명계좌 수백개에서 차명재산 수천억원을 발견해 국세청에 통보했다.

세금 포탈액이 연간 10억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조세) 혐의가 적용돼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후 이 회장은 자신의 차명재산 존재 사실을 인정하고 국세청에 상속세 등 1700억원을 자진납세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CJ에 대해 추가 세무조사나 고발을 하지 않고 자진납세액을 받는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일부에서는 역시 권력기관과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CJ그룹이 이 회장과 친분이 가까운 천신일 회장을 통해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상속·증여세에 대해서는 세금 탈루액이 아무리 커도 검찰에 고발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국세청이 따로 조사한다는 것도 이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2008년 당시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발견해 국세청에 이를 통보하고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이 들어오면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벌일 계획이었다"며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 중이어서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국세청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CJ그룹에 대한 2008년 이후 세무조사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 수사가 국세청 로비의혹으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차명계좌 수백개 쌓이는 동안 금감원은 뭐했나

금융감독원에서 먼저 CJ그룹의 차명계좌 거래나 내부정보 이용 거래 같은 위법행위를 적발해 내지 못한 데 대해서도 '경제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검찰이 지난달 30일 CJ그룹의 차명계좌와 관련해 특별검사를 의뢰하자 이를 받아들여 내주부터 금융권 특별검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우선 CJ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 대한 특별검사를 실시한 뒤 다른 시중은행들로 점차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금감원이 그동안 먼저 나서서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검찰의 요구에 뒤늦게 호응하는 식으로 나서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권에 대한 감시기능을 해야할 기관으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훔친 명의가 아닌 단순 차명계좌의 경우 찾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는 위법하거나 재무건전성에 위해를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이 혐의를 특정해주기 전까지는 구조적으로 금감원이 먼저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사과정이 있었다곤 해도 검찰이 수사개시 열흘여 만에 수백개의 의심 차명계좌를 찾아냈는데 전문기관인 금감원이 사전에 이를 적발하지 못했다는 데 대해서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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