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25만원, 성능 230만원"… '재제조' 왜 안될까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2013.05.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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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환경부 간 칸막이에 가로막힌 재제조산업 현장

지난 14일 인천 성진모터스에서 양수용 대표가 재제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인천=김평화 기자지난 14일 인천 성진모터스에서 양수용 대표가 재제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인천=김평화 기자


"부처칸 칸막이를 허물자"

김재홍 산업부 1차관과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21일 서울 반포동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화해주’를 나눴다. 입장이 다르지만 대화로 풀어보겠다는 것. 이 자리에서 산업부와 환경부는 정책칸막이를 낮추기로 합의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자체가 사사건건 부딪혀온 산업부와 환경부의 관계를 보여준다.

'재제조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부는 물가안정, 고용창출, 자원절약 등의 효과를 내세워 재제조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환경부에선 영세 중고품 시장의 타격, 지적재산권 침해, 유해물질 사용 등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인천 자동차부품 재제조 업체 성진모터스를 찾았다. 공장 한편엔 시커먼 기름때를 뒤집어쓴 미션(변속기)들이 쌓여 있었다. 폐차장이나 정비소에서 폐품으로 버려질 운명이던 자동차부품들은 이곳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다시 태어난 미션의 공장출고가격은 25만원. 대리점을 거쳐도 35만원에 판매된다. 반면 신품 미션의 가격은 230만원에 달한다. 공정과정은 철저하다. 제품 성능을 테스트하는 과정엔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쓰레기로 보이던 폐품들은 재제조 공정을 거쳐 ‘환골탈태’했다.



같은 날 방문한 서울 금천구 호서대 벤처타워에 위치한 토너카트리지 재제조업체 심원테크. 전형적인 공장의 이미지와 다른 세련된 아파트형 공장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각종 인증서가 눈에 들어왔다.

30평 정도의 작업장에선 직원들이 공정별로 역할을 나눠 재제조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완성된 토너 카트리지가 이상이 없는지 패턴 별로 5장의 테스트 프린트를 하는 등 품질 검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포장된 제품은 외관과 성능 모두 신품과 비교해 다를 것이 없었다.

재제조란 사용한 제품을 분해, 세척, 검사, 보수, 조정,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원래의 성능으로 복원하는 것. 고철이나 폐기물로 취급돼 외국에 헐값으로 넘겨지는 중고품이 원재료가 된다.


공정에선 중고품을 일단 분해한다. 깨끗이 씻어 세부 부품들의 성능을 검사한다. 여기서 신품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부품은 그대로 두고 손상된 부분은 고치거나 다른 부품으로 교체한다. 그리고 다시 재조립. 이 과정을 거친 제품은 다시 엄격한 기준으로 검사를 받고 신품과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가진 제품만이 상품화된다.

재제조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 실제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조사결과 재제조산업의 매출 10억원당 고용창출효과는 8명으로, 3명에 그친 제조업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8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심원테크는 현재 20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 산업이 활성화될 경우 일반 소비자들이 가장 큰 혜택을 얻게 된다. 심원테크에서 만드는 토너카트리지의 가격은 5만원으로 시중가의 4분의1 수준. 심원테크 김준호(52) 대표는 조달청, 우체국, 환경부 이마켓 등 인터넷사이트를 이용,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해 판매가격을 줄이고 있었다. 재제조제품의 성능은 신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격은 신품의 30~50% 수준이다.

자원도 아낄 수 있다. 정비소나 폐차장에서 나온 자동차 부품은 고철로 분류돼 외국으로 헐값에 넘어간다. 재제조 과정을 거치면 충분히 신품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자원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성진모터스 양수용(48) 대표는 “폐기물과 자원은 구분해야 한다”며 “쓸 수 있는 부분들을 활용해 자원을 절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신품을 만들 때 투입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원재료의 대부분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자원 사용 절감률은 8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엔 1600여개의 재제조업체가 있다. 연매출은 7500억원 규모로 파악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7만3000여개 재제조업체가 연매출을 63조5000억원을 올리고 있다. 이는 신제품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다. 재제조 품목으로 지정된 품목은 121개, 고용인원은 48만명에 달한다.

정부는 재제조산업 육성을 위해 품질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재제조 품목으로 지정된 품목은 자동차부품 10개에 불과하다.



자동차 보험 약관에 따르면 품질인증 재제조 부품을 사용할 경우 신품가격 대비 20%를 현금으로 소비자에게 지급해야 하지만 실제로 수요가 많은 범퍼 등 외장부품은 재제조 대상 제품으로 고시가 되지 않은 상태다. 소비자가 부품을 고를 권리와 금전적 혜택을 제한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재제조업계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용한 제품’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다. 이는 재제조 품목으로 고시하고 정부로부터 품질인증을 받으면 해결될 문제다. 하지만 환경부에 막혀 품질인증 고시는 미뤄지고 있다. 부처 간 칸막이에 가로막힌 것이다.

심원테크 사무실에서 발견한 수많은 인증서들의 비밀이 여기서 나온다. 토너카트리지는 아직 정부의 품질인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김 대표가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김 대표는 소비자보호원과 산업기술시험원, 조달청, 특허청 등으로부터 받은 각종 인증서, 특허, 환경표지인증을 받아냈다.



김 대표는 “여러 가지 인증 비용이 중복해서 든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는 “아직 표준생산규격이 없어 소비자보호가 안된다”며 “국가품질인증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환경친화적산업구조로의전환촉진에관한법(환친법)에 따르면 품질인증 품목은 환경부 장관과 산업부 장관이 협의해 고시하도록 돼 있다. 환경부에서 반대하면 품목고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제조산업이 확대돼 재생산업 분야를 흡수하면 환경부 영역이 산업부 영역으로 바뀐다는 점도 환경부 입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이다.



고승현 한국자동차부품 재제조협회 회장은 “재제조제품은 중고품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품과 경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재권에 대해선 “소비자가 구매하는 순간 특허값은 이미 지불했다”며 “환경부의 주장은 정품 업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재제조산업은 여러모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라며 “품질인증 품목을 전산업 분야로 확대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는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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