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싱글'이 낫다고? 과연 그럴까

머니투데이 박창욱 선임기자 2013.03.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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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멘토다]22. '어둠 속의 빛'

# 요즘 젊은 층들은 대개 결혼을 늦게야 한다. 아이도 잘 낳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혼자 살거나 두 사람만 사는 가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달한다.

요즘 사람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을 잘 만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가 된 데는 '청년실업' 같은 경제적 문제 뿐 아니라 팍팍한 사회적 현실도 반영돼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여자들. 결혼하면 가사와 육아 부담이 크다. 나라와 사회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라도 할라치면 상황은 더 끔찍해진다. 그런 와중에 '시월드'의 간섭까지 받으면 '꼭지'가 확 돈다. '화려한(?) 싱글'이 낫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다.

남자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요즘엔 남자들에게 끊임없이 헌신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기들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들이 도처에 널렸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나이가 찼다고 남들 하는대로 결혼했다가는 자칫 인생 망치기 딱 좋다. 예전과 달리 자유로운 연애 분위기도 보편화됐다. 굳이 결혼까지 해서 아직도 남자에게 당연하게 씌워지는 '삶의 굴레'를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화려한 싱글'이 낫다고? 과연 그럴까


# 그러나 언뜻 굴레로만 보이는 가족은 사실 우리 삶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예전과 달리 삶의 공동체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갖는 의미는 훨씬 더 중요해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어둠 속의 빛'(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 4월11일 개봉)은 그런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폴란드에서 독일군의 학살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하수구로 숨어든 유대인 11명과 그들을 돕는 하수구 수리공 소하의 이야기다.
소하는 처음엔 유대인들이 가진 돈과 보석을 얻기 위해 그들을 숨겨주지만, 도와주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독일군에게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그들을 끝까지 돕는다.

유대인들은 쥐가 들끓는 냄새나고 더러운 하수구에서 햇빛도 보지 못하고 살면서도 무려 14개월을 버텨 끝내 살아남는다. 이는 물론 소하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들이 가족 단위로 똘똘 뭉쳐 있었던 점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유대인 피난민들의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그야말로 한심하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현실과 하수구라는 극한의 조건에도 어린 아이들은 계속 징징거리고, 여자들은 서로 다투며 투덜거린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어머니는 아이들과 나머지 젊은 여인들을 정성껏 돌본다. 젊은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수용소로 간 그녀의 여동생을 찾아 나선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소하에게 유대인들은 어느덧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렇게 해서 생긴 '대가족'은 생존이라는 문제 앞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유대인 일행 가운데 가족을 버리고 정부(情婦)와 함께 하수구로 도망왔다가, 일행의 소지품을 훔친 후 그 정부마저 버리고 다시 도망갔던 남자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 영화 속 이야기처럼 전쟁같은 극한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가족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상실의 시대'인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독일의 언론인 프랑크 쉬르마허는 책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나무생각)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20세기 정신분석의 인식과 달리 가족은 인간의 영혼을 뒤틀고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병적인 조직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족은 이제 생명의 은인으로, 그 기능과 필요성에서 도움의 생산자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있으며 사회가 안정돼 있지 못한 곳일수록 삶의 안전장치로서 가족의 가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때로는 가족이 귀찮을 수도,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삶에서 가장 오래 함께 할 사람들은 오로지 가족밖에 없다. 평소부터라도 가족에게 잘 하자. 거창한 게 아니어도 좋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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