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도 남는 게 문화산업"

머니위크 김성욱 기자 2013.03.1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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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인터뷰/ 김재목 JJ글로벌 대표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잘 나가는 의류사업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로'에서 뛰고 있다. 어느날 찾아온 한 작가에 이끌려 뮤지컬 제작자로 나섰다. 이를 위해 잘 나가던 의류사업을 접었고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다. 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 국내 창작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의 제작자 김재목 JJ글로벌 대표의 이야기다.

경북 의성 산골 출신인 김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무작정 상경, 25세 때부터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초에는 여성쇼핑몰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배우 겸 작가 김지환씨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김지환씨가 찾아와 '제 꿈을 사주십시오'라고 하더군요. 이쪽 시장을 전혀 몰랐지만 참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획 단계부터 같이 하게 됐죠. 아마도 운명처럼 찾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처음 시작할 때 김 대표는 몇천만원만 투자하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고, 수익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습과정에서부터 수백만원이 투입되는 등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비용이 억대를 넘어갔다. 지난해 10월 공연이 시작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관료, 배우 및 스텝들 급여 등으로 매달 60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첫달 공연수입은 1000만원에 불과했다. 제작비 회수는 고사하고 매달 큰 적자를 기록한 것. 예정된 2월 말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작품이 호평을 받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찾는 관객들이 많아졌다. 결국 공연 마지막 달인 2월에는 총지출의 90%까지 매출이 올라왔다. 그리고 3월7일부터 더 큰 극장으로 옮겨 다시 공연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가 지나면 매출이 총지출의 80% 정도까지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은 거죠. 지방공연이 늘면 조만간 제작비를 제외하고 지출대비 매출이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_류승희 기자사진_류승희 기자


비싼 임대료·호객영업, 공연질 낮추는 요인

김 대표는 처음 시작하면서 배우와 스텝들에게 복지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이런 의지는 꿈에 불과했다. 김 대표는 현재의 대학로시스템은 종사자들이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그는 첫번째로 대관 문제를 꼽았다. 현 대학로는 건물주가 있고, 건물주로부터 공연장을 임대한 사람이 다시 제작자에게 재임대를 하는 시스템이 주를 이룬다. 이렇다보니 임대료 자체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배우 등에 대한 복지가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

"이 때문에 제작자는 배우에 대한 복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져요. 임차인 등이 비용을 10%만 줄여줘도 대학로 종사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더 커질 겁니다."

김 대표는 길거리 호객행위도 대학로 연극을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현재 대학로의 공연 중 절반 정도는 대폭 할인된 가격을 제시하는 호객영업을 하고 있다.

"현장판매는 현금결제이기 때문에 영세한 제작자들은 현금회전율을 감안해 당장 돈이 되는 호객영업을 하는 거죠. 그러나 이는 결국 공연의 질을 떨어뜨리고 공연가격을 낮추는 원인이 되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부와 기업의 후원이 너무 대형공연에 치중되는 점도 대학로시장을 침체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큰 작품만 후원하고, 정부는 후원할 공연을 선정할 때 작품성보다는 서류를 먼저 봐요. 결국 돈 많은 제작자, 서류작업을 잘 하는 제작사만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 셈이죠."

김 대표는 그러나 "대학로의 문제점에 대해 지금 뭐라고 말하든 결국은 변명이 될 수밖에 없다"며 "공연으로 돈을 벌어서 배우와 스텝들이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화산업의 매력? "쓰러져도 남는 것이 있다"

김 대표는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의류사업을 접었다. 자금마련을 위해 10억원짜리 부동산도 다음달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도 공연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여러 사업을 통해 돈을 벌어봤지만 <담배가게 아가씨>의 첫공연 때 받은 희열은 여느 사업에서 느꼈던 것과는 매우 달랐어요. 젊은 배우들의 열정 등으로 인해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에 하던 사업은 김 대표가 지시하면 직원들이 그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이었지만, 공연은 제작자로서 기초만 제공하면 배우와 스텝, 그리고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점이 김 대표를 매료시켰다.

"사업은 쓰러지고 나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하지만 문화산업은 쓰러져도 작품이 남고, 추억이 남죠. 그래서 중독되는 것 같아요."

한편 <담배가게 아가씨>는 지난 3월7일부터 브로드웨이아트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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