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화장발' 거품의 증거

머니위크 문혜원 기자 2013.02.2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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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이유있는 화장품 할인경쟁…내려도 내려도 남으니 '연중 세일'

화장품업체들의 '겹치기 로드숍'과 '박리다매'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중삼중의 로드숍 경쟁이 결국 화장품값 거품만 잔뜩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저가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연말까지 세일을 진행한 데 이어 올해 초에도 신년 세일을 단행했다. 다른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1년에 한번 있는 브랜드 세일'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지만 그 브랜드는 매달 세일이 이어진다.



더페이스샵, 미샤, 이니스프리, 네이쳐리퍼블릭, 에뛰드하우스, 더샘, 홀리카홀리카, 잇츠스킨, 스킨푸드, 토니모리, 어퓨, 프리메라 등 화장품 브랜드는 하루가 다르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추세다. 매장 경쟁도 치열한데 할인전쟁까지 겹쳐 과연 매장 운영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한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는 "불황 속에서 업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며 "한 업체가 할인하면 다른 업체들 역시 경쟁적으로 할인 이벤트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고 업계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사진_류승희 기자사진_류승희 기자


◆너무 빠른 화장품 트렌드…재고 쌓아두느니 '땡처리'

"작년 말까지만 해도 진동파운데이션이 유행이었다면 올해는 에어쿠션 파운데이션이 인기다. 그만큼 화장품 브랜드는 제품 회전주기가 빠르다." 한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인기 제품이라 해도 6개월을 채 못 넘기기 십상이다. 이렇다보니 로드숍 화장품들이 할인행사 매대에 자주 오른다. '뜨는' 제품을 들여오고, '지는' 제품은 재고를 소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기제품을 겨냥한 '미투제품'은 쏟아져 나온다. 지난해 진동파우더가 유행을 타면서 화장품업체들은 너도나도 비슷한 제품을 쏟아냈다. 올해는 에어쿠션 파운데이션이 인기상품으로 뜨자 앞선 진동파운데이션 물량을 소진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최근에는 '틴티드 립'이나 'CC크림'이 유행이다. 틴티드 립은 볼륨감을 주는 립글로스와 발색력이 뛰어난 틴트가 결합된 제품이다. CC크림은 BB크림 이후 나온 제품으로 선크림과 메이크업 베이스 기능이 합쳐진 올인원 크림이다.

하지만 틴티드 립과 CC크림 역시 인기가 식으면 금세 재고 처리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재고를 쌓아두는 비용보다는 할인을 해서 조금이라도 마진을 건지는 게 이득이기 때문에 할인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할인해도 남는 게 있다면…

실제로 주요 로드숍 브랜드는 브랜드명을 따 '미샤데이', '이니스프리데이' 등 멤버십할인을 매달 제공해왔다. 각 화장품 회사들은 "멤버십 회원에게 혜택을 돌려드리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당일 가입 즉시 할인이 제공돼 '경쟁 할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이니스프리 측은 "올해부터 멤버십할인은 고객의 로열티를 높이기 위해 최근 6개월 동안의 구매액에 따라 등급을 차등화시키고 할인율도 달리 매겨 즉시할인의 문제점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품 할인에 대해 매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 매장 관리자는 "본사에서 할인을 하라면 해야 한다"며 "매장 오픈 시 본사협력 조항에 포함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모든 가맹점이 본사의 지침대로 할인 판매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잦은 할인 속에서 제 값 주고 화장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속이 쓰리다. 정상가의 제품을 금세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때를 기다리는 소비자도 많다. 소비자로서는 이렇게 할인이 많으니 원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한 화장품업체의 유통관계자는 "남는 게 있으니까 할인을 하는 것"이라며 "화장품 원가가 몇천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50%씩 할인해도 가맹점은 조금이라도 가져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같은 할인경쟁은 화장품가격에 대한 거품논란으로 연결된다. 백화점이나 방문판매 화장품의 거품은 지적된 지 오래. 비교적 저가인 로드숍 제품조차도 애초부터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한 화장품 유통업자에 따르면 A브랜드에서 생산하는 세럼의 경우 판매가가 3만원인데, 제품 케이스는 대량생산으로 1000~2000원에 불과하고 화장품 내용물 역시 몇 천원에 불과하다. 결국 화장품 원가는 1만원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할인을 해도 어느 정도의 이익은 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판매율 낮은 매장은 '도태'

문제는 이윤이 나지 않는 매장이다. 본사가 소위 '겹치기'로 매장을 내놓고 판매량이 낮은 지점에는 각종 조치를 취해 대리점을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명동은 화장품 로드숍의 격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경우 명동1호점에서 명동스타점까지의 거리는 불과 158m. 걸어서 2분 거리 안에 또 다른 매장이 위치하고 있다. 명동1호점에서 명동충무로점까지도 200m거리에 있어 5분 이내에 명동의 매장을 다닐 수 있다.

이는 네이처리퍼블릭뿐만이 아니다. 명동에 즐비한 로드숍 매장은 브랜드별로 4~5개가 기본이다. 미샤를 비롯해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등은 모두 명동에만 5~6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명동 외에도 한 지역에서 복수 매장을 내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하철역에 빼곡한 화장품 매장 중 겹치는 매장이 한둘이 아니다. 이니스프리의 경우 매장수가 2010년에 비해 올해 초 3배나 증가했다. 2010년 294개에서 올해 2월 624개로 급증했. 다른 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큰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더페이스샵은 전국에 1033개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올해 각 로드숍은 더욱 매장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이어서 가맹점간 경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더페이스샵은 올해 안에 매장을 전년대비 10% 늘려 100여곳을 신규 출점할 계획이고 이니스프리, 미샤, 네이처리퍼블릭 등도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갈 방침이다. 여기에 할인경쟁까지 겹치면 매장으로서는 그야말로 '박리다매'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많이 판매한 만큼 이윤을 건지면 다행이다.

한 화장품 영업 담당자는 "판매량이 적은 매장의 경우 매장 장려금을 줄이거나 판촉물 수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매장을 압박한다"며 "판매량이 극도로 안 좋은 매장은 제품 출고를 늦추거나 신제품을 안 넣어 주는 식으로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매장 측에서는 화장품 도매상을 통해 물건을 소진시키기도 한다"며 "본사에 걸리면 강압적으로 매장을 철수당하기도 하지만 동대문 쪽에서는 이러한 도매장사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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