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파업' 자충수 與野, 택시법 처리에 전전긍긍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김경환 기자, 성세희 기자 2013.02.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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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혈세 낭비' 역풍에 한발 물러선 與野 "정부 대체입법 협상 지켜볼 것"

#1. "실질적으로 택시기사에게 도움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택시법'(대중교통법 개정안)은 사장만 좋아지는 거라 호응이 높지 않은 겁니다. 법인택시건 개인택시건 서비스하는 기사에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가야 합니다."

개인택시 기사 최모(55)씨의 지적이다. 택시업계가 택시법 통과를 요구하며 20일 오전 5시부터 24시간 동안 택시운행 중단에 돌입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현재 8개 시도 15만3246대의 택시 가운데 4만7780대만 운행중단에 동참, 파업참가율은 31.2%에 그쳤다.



택시업계는 파업 참가율이 낮은 것에 크게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택시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택시기사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크지 않고 택시회사만 배불린다는 이유 때문이다.

법인택시 운전기사 성모(58)씨는 "이번 파업은 택시기사와 관계없다"며 "택시법이 기사들 위한 법이라면 솔선수범해 파업에 동참하겠지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데 왜 참석하겠나"고 반문했다



#2. "택시 파업을 한다더니 길거리에 생각보다 많이 다니네요. 솔직히 국민혈세를 매년 2조원 가까이 투입해 택시업계를 지원하는 택시법에 반대합니다. 택시하면 불친절이 떠오릅니다. 대중교통이 끊어지는 자정 무렵에는 택시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창문만 조금 열고 어디 가냐 물어보고 방향이 맞지 않는다며 승차거부하기 일쑤죠.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할 때 속이 시원하더군요."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만난 30대 직장인은 이 대통령의 택시법 거부권 행사를 매우 잘한 일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선거를 위해 택시업계를 지원하는 '악법'은 국회를 통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이 임기도중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택시법 거부권 행사를 꼽은 이가 적지 않았을 정도다.


택시업계는 "모든 택시가 그런 건 아니다"고 강변하지만 여러 번 택시의 불친절을 목격한 국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포퓰리즘' 부담에 눈치 보는 與野=여야 정치권이 택시법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표적 '포퓰리즘 법안'으로 꼽히는 택시법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여야는 30만 명의 택시 종사자와 100만 명에 달하는 가족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고 매년 1조9000억원 가량을 지원하는 택시법을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달 1일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후 국민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큰 것으로 나타나자 이 대통령은 여론의 힘을 입고 지난달 22일 택시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신 정부는 택시업계를 달래기 위해 이튿날 '택시지원법'을 대체 입법으로 마련하고 택시업계와 협상에 나섰다.

택시지원법은 △공급과잉에 빠진 택시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택시기사를 위한 제도적 지원 △승객을 위한 서비스 및 편리성 확보 등을 담고 있다. 택시지원법은 특히 택시회사가 가스비·차량구입비·세차비·사고처리비 등 월 5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기사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재방안을 담았다. 이를 통해 월평균 158만원 수준인 수입을 200만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청와대와 국민들의 반발에 직면한 여야는 일단 정부와 택시업계의 협상을 지켜보기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새누리당은 정부 방안대로 택시지원법을 마련해 업계를 달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민주당은 일단 정부와 택시업계의 협상을 지켜본 후 택시법을 처리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택시법 강행'을 무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국토위 간사인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은 "2월 회기뿐 아니라 (국회가 열리지 않는) 3월에도 실무진이 정부·업계와 접촉하면서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윤석 민주당 간사는 "택시법에 대해 여야 의견은 변함없지만 정부가 제안한 택시지원법을 일단 검토해보는 게 수순"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입법에 힘썼던 여야 정치권 행태는 입법권을 악용한 전형적 포퓰리즘이자 모럴해저드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은 "(국회에서) 재정이 소요되는 법안을 제출할 때 반드시 법안과 연계된 재원확보방안을 명시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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