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법 시행 두달, 기대와 한계는?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13.02.0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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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작지만 강한' 협동조합의 모든 것/ '다섯'만 모이면 못하는 일 없다?

'마음이 맞는 사람 다섯명이 모이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받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은 중간 도매상의 도움없이 스스로 직접 좋은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대기업의 자본에 휘둘리던 동네 가게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오래된 집을 수리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집주인들은 공동구매를 통해 수리에 필요한 장비와 전문인력을 동원했다.

모두 '협동조합'으로 가능한 일이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러나 여럿이 고민하면 해결되는 모든 일들이 협동조합의 대상이다. 협동조합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가 "협동조합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윤추구'의 강박에서 벗어난 협동조합이 우리사회의 대안 경제모델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효율보다는 모두의 공존을 택하는 경제모델, 이른바 '따뜻한 경제'다. 특히 지난해 12월1일 협동조합법이 시행되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은 만병통치약일까.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경쟁을 거쳐 살아남아야 하는 협동조합이 과연 얼마나 이윤추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머니위크>가 차갑기만 한 시장경제에 사람의 온기를 더해줄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짚어봤다. 이와 함께 노인복지와 지역경제의 대안으로 등장한 협동조합을 찾아보고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살펴봤다.



쿨머니 협동조합 만만한 카페(사진_머니투데이)


◆5명의 공동창업…협동조합은 뭐가 다를까?

은퇴를 앞둔 친구 다섯명이 모였다. 요즘 이들이 나누는 가장 큰 고민은 "아직 애들 대학등록금도 내야 하는데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다. 고민 끝에 이들은 동업을 결정했다. 학교 앞에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마다 여유자금이 제각각이다. 필요한 출자금은 2억원 정도. 친구 중 가장 여유 있는 누군가는 1억원을 선뜻 내놓았고, 어떤 친구는 어렵사리 모아뒀던 3000만원을 보탰다.


이들 다섯명이 모두 '사장님'이 되는 도시락 가게. 어렵게 오픈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5명의 사장들은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쳤다. 인테리어를 하는 데도 누구는 심플한 것이 좋다고 말하고, 누구는 화려한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이럴 때 누구의 의견을 따라야 할까.

만약 이 도시락 가게가 주식회사와 같은 방식이라면 입심이 가장 센 사람은 당연히 1억원의 투자금을 내놓은 친구다. 총 출자금의 50%만큼 의결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가게도 다섯명 모두 자본금을 출자했지만 한명만 사장을 맡아야 한다면 1억원을 투자한 친구가 맡을 확률이 높다. 모두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가장 많은 투자금을 내놓은 사장이 가게의 소유주로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협동조합의 독특한 운영방식은 이 지점에서 두드러진다. 협동조합에서는 1억원을 투자했든, 3000만원을 투자했든 모두가 주인으로서 똑같은 의결권을 갖는다. '1인 1표'의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더 많이 투자했느냐와 상관없이 다섯명의 친구가 모두 사장 역할을 하게 된다. 가게 인테리어 하나를 바꾸는 데도 다섯명의 사장이 똑같이 의견을 내고 합의를 거쳐야 한다.

'1인 1표'라는 협동조합의 기본원칙은 주식회사와 상당한 차이를 만든다. 주식회사는 주주들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는 게 기업의 목표다. 1억원을 투자한 사람은 더 많은 배당금을 받기 위해 '1억원어치'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의결권을 갖고 있는 협동조합은 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보다 다섯명에게 골고루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가게가 경영위기에 부딪히면 주식회사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덜 필요한 인력 2명을 감축하는 결정을 내리지만, 협동조합에서는 회사 전체의 이익이 줄더라도 다섯명이 함께 이익을 조금씩 줄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은 이윤이 남게 되면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는 것보다 이윤을 적립해 모두를 위해 투자한다.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거대자본을 무기로 한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질 때, 작지만 꿋꿋하게 살아남은 협동조합 기업들의 힘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개최한 협동조합 설립희망자 교육. 정원 470명을 초과하여 700여명의 수강생이 몰렸다.(사진_머니투데이)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두달…벌써 100여개?

임헌조 한국협동조합연대 이사는 "지난해 12월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기 전에는 사실 친구들끼리 이 같은 형태로 창업을 하고 싶어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기존에는 작은 가게나 기업을 창업하더라도 개인회사 아니면 주식회사, 두가지 형태로만 법인 성격을 부여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 이사는 "예전에는 다섯명이 같이 경영을 한다고 해도 동업자들끼리 출자금을 똑같이 20%씩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정부나 은행에서 지원을 받을 때도 한사람의 책임자가 있어야 경영 위기상황에서 책임이 분명해져 안전하다는 판단이 전제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표됨에 따라 5명이 똑같이 20%씩 출자해서 조직을 만들고 법인 성격을 부여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협동조합기본법과 함께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사회적으로도 이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커지는 분위기다.

아파트 부녀회와 같은 지역 소모임들이 법안 마련 이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을 준비 중이고, 국내 1호 협동조합인 대리운전협동조합이나 맹인안마사협동조합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힘을 모아 새롭게 협동조합을 시작한 곳도 이미 여럿이다.

실제로 법안이 마련된 이후 단 두달만인 1월31일까지 등록된 협동조합은 사회적협동조합 2개업체, 일반협동조합 136개 업체에 이른다. 협동조합 법인 전환을 준비 중인 숨어있는 공동체까지 감안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경제규모가 커지는 만큼 이를 통해 일자리창출이나 골목상권 살리기 등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기관이나 지자체도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데 적극적이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협동조합 8000여개, 경제규모를 14조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 지원 계획을 내놓은 만큼 앞으로도 지원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키우기보다 '공동체 문화'가 먼저

그러나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짧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커지면서 장밋빛 환상만 부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일종의 '대안'으로 비춰지는 탓이다.



임헌조 이사는 "해외사례를 보면 이미 100년이 넘는 협동조합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곳들이 많다"며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하면서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경제모델"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없던 기업의 형태가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닌 만큼, 마치 자본주의의 모든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얘기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마련되고 국내 협동조합 경제가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사실은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협동조합이 이어져 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부 주도 하에 특별법 등을 통해 운영되는 농협·수협과 일종의 소비자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는 한살림, 아이쿱 등의 생협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본래의 취지를 반영한 협동조합이라고 말하기엔 어려운 이유가 있다.

임 이사는 "지금껏 국내의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운영에 참여하는 형태가 아니었다"며 "농협은 다른 금융기관들과 시장경쟁을 벌이며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고, 생협도 소비자들이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의 이념을 갖고 시작하더라도 오랜시간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다보면 본래의 취지가 퇴색할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는 지적이다.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고 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끊임없는 교육과 공동체문화가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계동 한국협동조합연대 사무총장은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키우는 것보다 공동체에 대한 문화운동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한국협동조합연대 역시 올 한해 동안 협동조합과 관련한 교육원을 만들고,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거나 필요한 사람들 누구나 수시로 상담과 교육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박 사무총장은 "우리는 예로부터 두레나 품앗이와 같은 공동체문화를 향유했던 민족"이라며 "급속한 산업의 발전과 함께 사라진 공동체문화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갈등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체험을 통해 협동조합이 생활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며 "아직은 첫걸음이기 때문에 문화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면 협동조합이 우리 경제의 큰 몫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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