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밥" 노점 철거된 노량진…"경기가 좋아져야 할텐데"

뉴스1 제공 2013.01.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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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의진 기자 =

오전 10시께 동작구청 직원들이 전날 철거한 이곳 노점 앞 쓰레기를 처리하러 왔다.

"주변 상가에서 음식물 냄새가 진동한다고 민원을 제기했어요. 청소만 하고선 곧 갈 겁니다."



구청 직원 몇몇은 능숙하게 철거 잔해 등을 정리했고 인근 학원생과 주민들은 이 광경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지나쳤다.

같은 시각 철거된 노점 주인으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노점 천막을 지붕 삼아 드러누워 있었다.



그는 "어젯밤 용역들이 갑자기 쳐들어와 모든 집기 등을 빼앗았다"라며 "말할 기운도 없으니 다음에 오라"고 기자를 향해 손사래 쳤다.

전날인 23일 새벽 동작구 건설관리과 직원들은 지난해부터 제기된 이 지역 식당 주인들 민원에 못 이겨 최근 자주 거론된 '컵 밥' 노점 4곳과 호떡 노점 1곳에 대한 강제 철거를 집행했다.

'컵 밥'은 밥 한 공기 용적의 종이 용기에 김치 등을 재료로 만든 볶음밥을 채워 넣은 가판 먹거리다. 2009년 이후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를 중심으로 생겨나 금세 이 지역 명물로 자리잡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노량진역 일대에서 '컵 밥' 사업은 고시원 생활을 하는 학원생을 비롯해 일대 중고교생들과 출근길 직장인들도 즐겨 먹었다. 덕분에 지난해 대선 유세 때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이곳 노점을 찾아 '컵 밥'을 먹기도 했다.

노점상 황모(59)씨는 "2009년부터 컵밥을 팔기 시작했다"며 스스로를 노량진 일대 두 번째로 오래된 '컵 밥' 집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점포마다 하루 150여명의 손님이 다녀가는데 컵당 2000여원짜리 상품을 팔아봐야 비용을 빼고 나면 하루 7만~8만원 남는다"며 "중고등 학생이나 고시생들이 비싼 밥 사서 먹겠느냐"고 말했다.

노점상 강제철거에 대해 황씨는 "결국 경기가 안 좋으니 민심이 각팍해지고 또 이 때문에 손님 한둘 빼앗기는 상황을 상가 상인들이 견디지 못하게 된 거 아니겠느냐"며 "하루빨리 나라 경기가 살아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근 식당 주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철거된 '컵 밥' 노점 인근에서 2년째 주먹밥 프랜차이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은 "('컵 밥' 노점에 손님을 빼앗겨) 실제 몇 달째 적자 영업을 해오고 있다"며 "위생관리비나 수도세, 전기세 등을 내고 나면 그들과 우린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동작구 지회 한 관계자도 "이 지역 일대 식당 업주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컵 밥' 노점 탓에) 매상이 3분의 1 이상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며 "공과금에 임대료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절반가량 매출이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주변 상인들의 민원이 치솟았고 동작구 측은 도로법을 근거로 지난해 4월 무렵 처음 노점상 측에 1차 공문을 보낸 뒤 노점마다 정비와 관련한 구두 요청과 경고장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진철거가 이뤄지지 않자 이달 들어 '1월 15일까지 자진 정비를 해달라'는 내용의 2차 공문을 보냈다. 지난 18일에는 지역 상인으로부터 영업권 피해 민원이 중점적으로 제기된 일부 노점에서 조리대 등 주요 영업도구를 거둬갔다.

결국 23일 새벽 전체 50여개 노점 중 5개소에 대한 강제 철거가 집행됐다. 동작구 측은 관련법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청 건설관리과 한 관계자는 "생계목적 노점을 허가하는 문제는 정책 차원에서 법으로 정해줘야 하는데 도로법에는 '정비하라'고만 나와 있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24일 1호선, 9호선 노량진역 일대에 자리 잡은 노점은 27개소. 노량진동 전체에 포진한 노점을 포함하면 50여개에 이른다. 외식업 관계자들로부터 실질적인 영업권 침해라는 지적을 받는 '컵 밥' 노점은 이중 절반가량으로 추정된다.

전날 철거된 4곳을 제외한 '컵 밥' 노점은 24일 이날 오전 10시를 전후로 정상 영업에 들어간 상태다. 학원가 오전 수업이 끝나는 오후 1시께는 일대 인도에 발 디딜 틈 없이 손님이 드나들기도 했다.

동작구는 나머지 노점들에 대해서는 오는 31일까지 자진철거를 통보한 상태다.

전국노점상총연합 관계자는 "노점상들에겐 생과 사의 문제인데 설 연휴를 앞두고 갑자기 행정당국이 강제 철거에 나선 이유를 모르겠다"며 "지역 상인들도 (노점상들에게) 이익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지역시민들과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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