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이 아니라 통찰력이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3.01.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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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24>

굳이 기술적 분석을 신봉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새로운 것 없다"는 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주식시장의 역사를 돌아봐도 주기적으로 거품과 패닉이 되풀이됐고, 시대와 나라는 달랐어도 광기가 형성된 과정이나 그 결말은 매우 흡사했음을 발견한다.

기억력이 아니라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나간 과거의 교훈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뛰어난 기억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실과 정보가 아니라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이기 때문이다. 너무 자세한 것들까지 과도할 정도로 기억에 담아두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쓴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보자. 푸네스는 완벽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보통사람들은 한 번 쳐다보고서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세 개의 유리잔을 지각하지만, 푸네스는 포도나무에 달려있는 모든 잎사귀와 가지들과 포도송이의 수를 지각한다. 그는 어느날 새벽 하늘에 떠있던 구름의 모양을 기억해냈고, 오래 전 강변에서 일었던 물결의 형태와 어제의 물결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일반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세한 차이를 전부 구별해낼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전부 포괄하는 사고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보르헤스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그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일반화하고 개념화하는 것이다. 푸네스의 세계에는 언제든지 다시 끄집어낼 수 있는 세부적인 것들밖에 없었다."



푸네스는 소설 속의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이와 비슷한 실존 인물도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야는 기억력이 너무 좋아 한번 보거나 들으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을 30년간 관찰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 나오는 S(셰르스키)라는 인물이 그렇다.

신문기자로 일하던 S는 편집회의 때마다 아무런 필기도구도 지참하지 않고 참석했는데, 왜 지시사항을 하나도 받아 적지 않느냐는 편집국장의 질책에 지금까지 들은 모든 사항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외워 보였다. 그는 놀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오히려 "다들 이런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가 결국 루리야 박사에게 보내졌던 것이다.

S는 난해한 수학공식이나 복잡한 난수표, 외국어로 된 시까지도 금세 외웠지만, 사람의 얼굴은 쉽게 기억하지 못했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표정 하나하나를 전부 포괄해 한 인물의 얼굴로 인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놀라운 기억력을 발견한 뒤 기억술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5분 전의 이야기와 5년 전의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끝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기억의 천재 푸네스처럼 될 수 있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무슨 정보든 전부 다 검색 가능한 세상이다. 그러나 기억술사 S가 보여준 것처럼 이미 확인된 사실과 과거의 일들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다. 상황은 늘 변해가는데 지나간 정보에만 집착하면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부지런히 땅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의 시선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매의 시야를 겸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실적들과 현재의 사업구조를 하나하나씩 세분하고 쪼개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업의 향후 전망을 보여주는 잠재력을 아주 분명하고 간략한 문장 하나로 요약해내는 것이야말로 투자의 성패를 가늠하는 열쇠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투자한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끄집어내 분석할 줄 아는 것이 미분하는 능력이라면 미래의 수많은 가능성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종합해내는 것은 적분하는 능력이다.

너무 어려운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유추하고 종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통찰력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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