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맥주, 마트서 푸대접받는 까닭

머니위크 문혜원 기자 2013.01.0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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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토종 맥주 '김' 빠졌나… 싸고 다양한 수입산, 점유율 야금야금 잠식

서울의 한 대형할인매장. 주류 매대의 냉장고를 차지한 건 수입맥주뿐이다. 전세계에서 들어온 갖가지 맥주가 냉장고를 채우고 있을 뿐 국산맥주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카스맥주나 하이트맥주와 같은 국산맥주는 냉장고에서 밀려나 일반 진열대에 놓여 있다.

마트 관계자는 "모든 매장이 다 이렇게 진열한 건 아니지만 일부 매장에서는 수입맥주를 선호하는 분위기에 따라 진열대를 바꿨다"며 "수적으로는 국산맥주가 단연 많지만 수입맥주가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가파르게 신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입맥주의 성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실제로 대형할인마트들의 최근 맥주 판매량 집계를 보면 수입맥주의 신장률이 국산맥주를 크게 앞질렀다. 판매량 면에서는 여전히 국산맥주가 높지만, 수입맥주가 점차 점유율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국산맥주 일변도인 맥주시장에서 수입맥주의 약진은 시사할 만하다. 시장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국산맥주, 마트서 푸대접받는 까닭



◆ 급성장한 수입맥주


대형할인마트의 맥주 판매량 집계 결과 수입맥주에 대한 선호도는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매출을 기준으로 전년대비 국산맥주 신장률은 0.2%에 그친 반면, 수입맥주는 45.7%로 나타났다. 구성비 역시 수입맥주가 2011년 17.4%에서 2012년 25.1%로 7.7%포인트 상승했다. 롯데마트도 국산맥주의 신장률이 단 2%로 나타난 반면 수입맥주는 25%로 훌쩍 뛰어올랐다.

이처럼 수입맥주 판매 비중이 높아지자 대형마트들은 다양한 수입맥주를 들여오는 등 판로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이마트는 수입맥주의 인기에 따라 물량을 전년보다 20% 이상 늘렸다. 독일, 네덜란드, 일본, 스페인, 벨기에 등 25개국의 수입맥주 180여종을 판매하고 있다.


이마트 주류담당 김진건 바이어는 "저도수로 마실 때 부담이 없고 종류가 다양해 골라먹는 즐거움까지 갖춘 수입맥주는 20~30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며 "올해는 런던올림픽 개최 등으로 야식 수요가 많아지면서 수입맥주가 더욱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 '맥 빠진' 국산맥주

수입맥주가 비중을 넓혀가는데 비해 국산맥주는 성장이 주춤한 상태다.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가 점유율을 양분하고 있는 국내 맥주시장에서 양사의 판매비중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각사는 카스와 하이트를 주력상품으로 점유율 경쟁을 벌여오던 터라 경쟁에만 매진하다 소비자에게 외면받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마트 판매기준 국산맥주는 2012년 11월까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병맥주 -0.1%, 캔맥주 0.9%, 페트맥주 -1.0% 등으로 신장세가 크게 둔화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양대 맥주업계의 판매전략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오비맥주는 2011년 3월 오비골든라거를 출시한 이후 마케팅 축이 전면적으로 달라졌다. 이른바 '삼각편대 전략'인데, 카스맥주만 고집했던 것에서 골든라거와 카프리를 비롯한 외국산 프리미엄맥주까지 마케팅 강화에 나선 것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던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이 어느덧 5%대까지 치솟았다"며 "무서운 성장세로 미뤄볼 때 프리미엄 맥주가 카스, OB 등 기존 브랜드들과 함께 오비맥주 도약의 또 다른 디딤돌이 돼줄 것"이라고 밝혔다.

오비맥주는 수입맥주 브랜드가 가장 많은 곳이다. 버드와이저와 호가든의 라이선스를 받고 광주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가 하면 일본의 프리미엄맥주인 산토리, 멕시코맥주인 코로나 등을 수입하고 있다.

하이트맥주는 전략 브랜드인 하이트맥주, 맥스, 드라이피니시 디 등 3종과 함께 2011년 말부터 수입맥주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하이트맥주는 제휴를 맺고 있는 일본의 기린맥주를 국내에 수입하고 있다. 하이트맥주 관계자는 "그동안 수입맥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시장이 커짐에 따라 기린맥주를 들여왔다"며 "지난해부터는 수입맥주시장을 확보하고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산보다 싼 외산맥주 등장

대형할인마트가 앞다퉈 값싼 수입맥주를 수입하는 것 역시 수입맥주 약진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3개 대형할인마트는 중소형 유통사를 통해 2000원 이내의 수입맥주를 들여와 수입맥주군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에이치비무역이 수입하고 있는 맥주 중 독일산 맥주인 '5.0' 시리즈(500ml)나 '엘(L) 맥주'(500ml)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풍부한 맛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있다. 5.0 시리즈는 이마트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가격을 1650원에서 할인해 1550원에 판매하고 있다. 엘맥주는 롯데마트에서 1600원에 팔리고 있다. 같은 용량의 국산맥주와도 별 차이 나지 않는 가격이다.

이준규 에이치비무역 부장은 "마케팅이나 광고를 일절 하지 않고 맥주의 마진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캔의 디자인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가격과 맛에 집중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현재 물량을 대기 바쁠 정도로 잘 팔리고 있다"며 "5.0 시리즈와 엘 맥주가 출시된 후 최근 2년 동안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신세계L&B는 윌리안브로이바이젠 등 3종의 벨기에맥주를 '국내 최저가 수입맥주'라는 콘셉트로 국내에 들여왔다. 국내 소비자에게는 생소하지만 값이 저렴해 매장에 비치하자마자 동이 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윌리안브로이바이젠을 비롯해 단버거엑스포트, 하켄버그필스라거 등은 모두 500ml의 용량에 1590원에 불과하다. 각기 다른 세가지 맛을 가지고 있어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다.

신세계L&B관계자는 "1년 전만 해도 저렴한 가격대의 수입맥주가 많지 않았는데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직수입해서 발굴한 상품"이라며 "담당자가 직접 해외 브로이를 찾아다니며 제조과정을 확인하고 시장조사를 한 후 들여온다"고 설명했다.

윌리안브로이바이젠의 경우 월평균 약 5만병이 팔리는 인기맥주로 자리 잡았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수입맥주 순위 10위권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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