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빈 킹 영란은행 총재는 최근 글로벌 환율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우려스럽다'고 표현했지만 세계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글로벌 저성장 추세가 이어지면서 '환율전쟁'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당장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엔화 약세를 추진하는데 대해 "주변나라를 거지로 만들기 위한 정책"(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신흥국들은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미칠 악영향을 비판하면서 통제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통화 체제가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계속된 양적완화로 유로나 달러가 무한정으로 풀려 5년이 지나면 달러나 유로화의 구매력에 대한 의심이 생길 테지만 이를 대체할 대체제가 마땅치 않다는 것.
2008년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돈의 흐름이 멈춰버린 동맥경화 현상(일시적 위기)이었던 반면 유럽 재정위기는 팔, 다리가 부러진 외상(장기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진행되면서 자국 내에서 소비할 여력이 없으니 다른 나라에 수출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얘기다. 통화 가치 하락은 수출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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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통화 체제, 환율전쟁은 원화 가치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신흥국 통화로의 자본 유입이 계속되고 그 대상에 한국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원화 강세는 추세…속도 늦춰 부작용 최소화해야= 원화 강세가 이처럼 글로벌 경제 환경으로 인해 촉발됐지만 환율방어는 국내 정치경제적 요인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경제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고환율=대기업 지원 정책'이라는 인식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역시 경제민주화를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원화 강세 속도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일본이 저렇게 어려운데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수 십 년 동안 벌어놓은 부(富)가 있기 때문"이라며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도 대외교역을 통한 무역수지 흑자로 국가적인 부를 더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화 강세의 큰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되도록 천천히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격한 원화 강세는 기업경쟁력을 훼손해 경제 전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남우 토러스투자증권 영업총괄대표는 "환율 하락으로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제민주화 요구로 비정규직 등을 비롯한 노조의 요구가 강해지면 기업의 코스트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보다는 해외로 나가려는 기업들이 많아져 내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원화 강세 속도를 늦춰 기업들이 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홍춘욱 전 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강세는 피할 수 없겠지만 기업이 창의적 혁신 노력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4년간 우리 기업들이 고환율 덕에 힘입어 사상 최대 이익을 내 왔던 만큼 그 재원을 투자와 혁신에 쓰도록 해 환율 하락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하락을 만회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