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OO은 이 길로 통한다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12.12.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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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길 따라 돈이 흐른다/ 세계적인 명품 거리 된 명동·가로수길·홍대

편집자주 ‘뜨는’ 거리에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 가야만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분위기를 따라 사람이 몰려들고 사람이 몰리는 곳엔 어김없이 돈이 몰려든다.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는 서울의 명동과 홍대, 가로수길은 요즘 '핫한 거리'로 통한다. 여기에 ‘잇 스트리트(it street)’ 이태원의 꼼데가르송길 역시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특별한 거리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곳곳에 조성 되고 있는 명품 거리를 돌아봤다. 거리 고유에 패션, 뷰티, 문화, 음식 등이 융화되면서 '**거리' '**길'과 같은 거리문패가 만들어졌다. 이같은 거리에 인파가 몰리자 대기업들의 거대자본까지 침투한다. 거리는 변화하고 발전한다. 청담동의 한류스타 거리와 이태원의 음식문화 거리처럼 새로운 명품 거리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특별함이 묻어나는 서울의 명품거리. 그 현장을 추적했다.


쇼핑·패션·젊음의 거리 '빅3'… 또 다른 '무엇' 개발이 과제

화장품을 사고 싶다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은? 젊음을 느끼며 인디문화를 향유하고 싶을 때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하는 거리는? 최신 패션트렌드를 느끼며 여유 있는 브런치를 즐기고 싶을 때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정답은 국내 대표적인 쇼핑거리 '명동'과 젊음의 거리 '홍대', 그리고 패션의 거리 '가로수길'이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은 물론 국내에서도 한번쯤 들러봐야 할 명소로 자리잡은 대표적인 거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거리들이 아무 이유 없이 유명해졌을까. 거리의 이름만 들어도 머릿 속에 그려지는 분명한 풍경과 분위기,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특색 있는 색깔과 문화가 뒷받침 됐기에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거리로 성장할 수 있었다.
 
◆명동 - '화장품 거리'에서 '축제 거리'로

지난 5일 명동거리. 폭설과 한파에 일찌감치 어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불빛을 밝힌 화장품 매장마다 손님들이 북적거린다. 현재 이곳 명동에 위치한 화장품 브랜드숍은 대략 100여개에 달한다. 미샤와 더페이스샵 등 국내 대표적인 화장품 브랜드의 경우 이곳에서만 5~6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 2009년 이 지역에 위치한 화장품 매장이 20여개였음을 감안한다면 4년 새 매장 수만 4~5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곳은 화장품 브랜드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화려한 인테리어로 매장을 치장하고 일본어나 중국어가 유창한 직원을 고용해 관광객을 직접 응대하는 건 기본이다. 이날 역시 매장 앞마다 세워진 간판에는 한류스타의 사진 아래 '50% 할인' 등의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다.



이처럼 국내외에 이름을 떨치는 '뷰티 스트리트'로 확고히 자리잡은 명동이지만 앞으로는 이것만으로 명동을 설명하기엔 부족할 지도 모른다. 이동희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명동은 역사적으로도 오랜 세월 국내 대표적인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거리"라며 "최근 화장품 매장을 중심으로 상업적인 특색만 부각되면서 여기에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대표적인 축제가 지난 9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개최되는 '댄스 나이트' 행사다. 12월에는 오는 21일 행사가 열린다. 명동 예술극장 광장을 중심으로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신나는 음악과 함께 거리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댄스 타임을 즐길 수 있다.

이 사무국장은 "명동의 하루 유동인구만 150만명에 달하지만 밤 11시만 되면 죽은 거리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명동에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듦으로써 자연스럽게 상인들의 밤 시간 매출로도 연결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_류승희 기자


◆신사동 가로수길 -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로 세력 확대

강남구 신사동의 가로수길은 국내 대표적인 패셔니스타들이 사랑하는 거리로 유명하다. 유학파 디자이너들이 만든 작은 옷가게들이 하나 둘 생겨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이들의 취향과 입맛을 반영한 이색적인 음식점과 카페들이 인근에 둥지를 틀며 지금과 같은 가로수길의 모습이 갖춰졌다. 그렇게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생성된 마치 '작은 유럽'을 떠올리게 만드는 분위기는 어느 곳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최근에는 여기에 관광객까지 가세했다.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은 가로수길만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 패션쇼핑을 즐긴다. 가로수길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 중인 A씨는 "요즘엔 특히 일본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며 "하루 매출의 20% 정도는 일본인에게 판매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인근 성형외과에서 시술을 받은 뒤 마스크를 쓰고 가로수길 쇼핑에 나서는 일본관광객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해외 관광객에게까지 입소문을 탄 가로수길은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중이다. 메인 거리를 중심으로 대형브랜드와 외식업체들이 하나 둘 들어서며, 아기자기하지만 멋스러운 작은 가게들은 안쪽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추세다.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이 새롭게 뜨고 있는 것이다.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마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편집숍은 물론 태국, 스페인 등 이색적인 음식점들이 다양하게 자리 잡으며 가로수길의 세력 확장에 한몫하고 있다.

김광수 강남구 관광진흥과 팀장은 "가로수길은 대기업보다는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작은 가게들이 거리의 중심역할을 할 수 있어야 가로수길만의 색채가 지켜질 것"이라며 "인위적으로 가로수길의 분위기를 만들기보다는 가로수길 상인연합회를 중심으로 거리를 활성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홍대 - 상수역으로 밀려나는 인디문화의 거리

음악과 젊음이 넘치는 거리. 클럽에선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실험적인 갤러리 카페와 디자이너 출판사가 어우러진 곳, 바로 홍대 거리다. 대한민국 어디와도 다른 색깔을 지닌 이곳은 그러나 '한 단어'로 규정하긴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며 빚어내는 색깔이 강렬한 곳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클럽인 '밤과 음악사이'에서는 80∼90년대 추억의 음악에 젖어 복고감성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고, 홍대 정문에서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벽화골목에는 화려하고 기발한 그림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그러나 요즘의 홍대 거리는 젊은 예술가를 위한 문화의 거리로서의 색채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홍대입구역에서부터 홍대 정문 방향으로 이어진 '걷고 싶은 거리'를 중심으로 상업성이 짙은 술집과 외식업체, 옷가게들이 늘어서면서 유흥가의 색채가 짙어지고 있어서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지난 2003년 걷고 싶은 거리가 조성된 이후 신촌과 이대 인근의 상권이 상당부분 홍대 거리로 옮겨 온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이 같은 상권 개발을 위해 걷고 싶은 거리 아래에 지하주차장 건설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홍대 거리에 상업성이 짙어지며 치솟는 임대료에 밀려난 예술가들이 대신 자리를 잡은 곳은 인근에 위치한 상수역과 망원동 일대. 대다수 프랜차이즈업체와 대기업들의 외식브랜드가 단단하게 터를 내린 메인 거리와 달리 상수역 인근에는 개성이 뚜렷한 작은 커피숍들이 하나 둘 뿌리를 내리고 있다.

홍대에서 디자이너 카페를 운영 중인 B씨는 "홍대가 이처럼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저 상권이 커서가 아니라 젊은이만의 인디문화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마포구는 이 같은 홍대 문화를 지원하기보다는 걷고 싶은 거리 조성 등 시설적인 부분에만 개발 계획을 세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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