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멈추면 그 음악은 잊어라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2.10.2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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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18>

음악이 멈추면 그 음악은 잊어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피델리티펀드의 창업자 에드워드 존슨 2세는 투자의 지혜를 바이올린에 빗대 표현하곤 했다. "나에게 바이올린은 그저 잘 다듬은 나무조각과 몇 줄의 현(絃)에 불과하다. 그런데 바이올린 연주자는 이것으로 멋진 소리를 낸다. 투자전략이나 투자원칙은 바로 이 바이올린과 같다. 잘 훈련된 연주자가 아니면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다."

그가 남긴 또 하나의 멋진 비유는 월스트리트의 격언이 됐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하나의 바이올린을 켤 수는 없다." 펀드매니저 한 명이 펀드운용을 책임지는 방식은 이 말에서 비롯됐다. 그 이전까지는 투자위원회에서 포트폴리오를 결정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에드 존슨은 이런 식의 집단운용 방식보다 탁월한 펀드매니저 1인의 독창성을 더 존중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사람은 자기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이뤄가는 과정에 있을 때 진정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발굴한 펀드매니저가 1960년대 미국에 펀드열풍을 몰고온 제럴드 차이와 '마젤란펀드' 신화를 일군 피터 린치였다.

에드 존슨은 변호사 출신으로 역발상을 좋아했는데, 그가 투자의 세계를 음악에 비유한 것은 동일한 악보를 똑같은 악기로 연주하는 데도 들리는 소리는 연주자마다 다 다르기 때문일지 모른다.



피아노 연주도 그렇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자. 처음과 끝의 두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뤄진 이 곡을 연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연주자에 따라 30분 이상 차이가 난다. 가령 피터 제르킨의 연주음반은 44분6초인데 로잘린 투렉의 것은 74분46초나 걸린다. 심지어 글렌 굴드의 연주는 1955년 음반이 38분26초에 불과한 반면 1981년 것은 51분14초나 된다.

물론 피아니스트의 기교에 따라 곡의 인상이 상당히 달라지지만 연주시간의 차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중간의 휴지기(休止期) 때문이다. 건반을 한 번 친 다음 또 다시 건반을 칠 때까지의 짧은 시간 말이다. 일종의 공백과도 같은 이 시간적 간격은 소리 없는 연주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 아무것도 없이 음의 여운만 남는 시간에 명상에 빠지기도 하고 피아니스트의 매력을 한껏 느껴보기도 한다.

다소 장황하게 피아노 연주를 이야기한 것은 주식투자의 성과 역시 이런 휴지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박자가 됐든 반 박자가 됐든 건반을 타격하는 것을 실제 매매행위라고 한다면, 그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주식을 매수한 다음 보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매도한 다음 시장에서 물러나 있는 시간이다. 많은 투자자가 믿고 있고, 또 투자관련 서적이나 소위 투자 고수들이 가르치는 것은 매수와 매도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매타이밍은 휴지기의 길이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투자의 간격이 투자 성과를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이다. 글렌 굴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비결이 어느 정도 자신을 악기로부터 떼어놓는 방식에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의 경우도 이 같은 분리의 기술, 즉 매매행위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한 번 건반을 친 다음 새로운 건반을 칠 때까지 자신을 잊고 시장의 변화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 미국 주식시장은 경제활황과 뮤추얼펀드 열풍, '니프티 피프티'(Nifty-Fifty) 붐에 힘입어 그야말로 '고고의 시절'(The Go-Go Years)을 만끽했다. 에드 존슨은 1967년에 쓴 글에서 대공황 이후 이어진 약세장의 종말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들었던 음악의 가는 선율은 사라졌다. 그 선율은 오랫동안, 분명 수십 년은 넘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최상의 규칙은 이것이다. 음악이 멈추면 그 음악은 잊어라."

시장은 늘 이렇게 변곡점을 준비한다. 매일매일의 주가변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지만 시장을 둘러싼 상황과 투자환경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투자자는 이 흐름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세상이 변하면 그동안 들어왔던 음악은 잊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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