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에 닥친 현실과 미래

머니투데이 조길호 선임기자 2012.10.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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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이야기세상-16]日 노벨의학상 수상 계기로 국내 정책도 재정비 절실

19세기 영국에서 창조된 두 괴물이야기가 있다. 흡혈귀 드라큐라와 함께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프랑켄슈타인’이 그것이다. 시체들에서 주워 모은 뼈마디와 장기 피부조직을 얼기설기 끌어 모아 만들어진 괴물은 프랑크슈타인 박사가 전기충격을 가하자 거대한 악마로 ‘환생’해 박사를 괴롭힌다는 내용이다. 이미 죽은 시체들의 엽기적 환생이 공포의 테마로 등장한다.

메리 셸리라는 여류소설가가 지은 소설은 18~19세기에 걸친 세기말적 격변기를 전후해 일어난 많은 유혈사태와 당시 유럽전역을 휩싸고 있던 혁명의 광기에 기원한다. 수많은 주검을 경험한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깊이 잠재된 시체와 괴물에 대한 공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루마니아의 산간오지의 으스스한 배경에서 탄생한 이야기 ‘드라큐라’가 여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이란 공포를 일으키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후 두 괴물은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 드라마 등의 호러물에 등장하고 있다.



최근 줄기세포에 관한 의미 있는 두 사건이 있었다. 지난 8일 일본 교토대학의 야마나카 교수가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보다 3일 앞선 5일엔 같은 교토대학의 사이토 교수연구팀이 쥐를 대상으로 피부세포에서 역분화방식으로 유도된 만능줄기세포(iPS)인 원시생식세포를 만들었다. 이어 난소체세포와 함께 배양한 세포를 쥐의 난소에 이식해 난자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피부조직에서 한 개의 세포를 가지고 생식세포를 만들어 난자나 정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인간의 줄기세포기술이 마침내 신의 고유영역에 속하는 생명의 원천을 인위적 조작으로 만들어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시체들의 뼈와 조직들을 모아 전기충격 같은 방법으로 괴물을 탄생시키는 소설속의 허구를 현실속에서 재현한 것과 같아 그 충격이 매우 컸다.



특히 역분화방식에 의한 생식세포를 만들어낸 것은 과거 핵을 제거한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해 만드는 체세포복제방식에 의한 동물복제와는 크게 다르다. 체세포방식에 의한 복제는 난자를 이용해 수정란을 만드는 방식을 택하는데 비해 역분화방식은 체세포의 핵을 이용할 뿐 난자나 수정란의 배아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크게 자유로워진 것이다.

따라서 실험대상이 쥐에 그치지 않고 인간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너무나 뻔한 일이고, 그렇다면 정자나 난자만이 아니라 피부세포 하나로 인체의 어느 장기나 조직 또는 면역세포 신경물질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 줄기세포를 얻는 것도 시간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 줄기세포를 얻는 모든 과정이 표준화되어야만 하고, 하나하나의 분화과정에 관여하는 조건과 물질 등을 모두 완벽하게 규명해야 하며, 분화가 완전히 끝난 세포만을 골라내고 분화가 끝나지 않은 세포는 사멸처리 또는 제거하며, 이를 검증하는 완벽한 기술이 전제돼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복잡한 과정중 하나라도 미진하게 되면 그러한 줄기세포 약을 이식받은 환자는 암환자가 돼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분화방식은 지난 2006년 8월 일본 교토대학의 야마나카 신야교수가 세계적인 학술전문지인 셀지에 발표한 프로토콜을 따른 것이다. 야마나카 교수는 논문을 발표한지 불과 6년만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거머쥐었다.

야마나카가 노벨상수상의 업적을 만든 지난 2006년, 한국에서는 황우석 논문조작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웠다. 당시 황교수는 세계의 동물복제는 물론 줄기세포 연구에서 거의 무명이었다가 동물복제를 이끄는 선두그룹에 든지 불과 2~3년밖에 안됐다. 캐나다의 섀튼교수의 도움으로 문제가 된 줄기세포주에 관한 논문을 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황교수가 낸 논문은 체세포복제방식으로 사람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체세포의 핵을 이식시켜 만든 복제방식을 통해 줄기세포를 얻는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꿈같은 연구업적이었다. 불과 수년 전에 이룩했던 체세포방식에 의한 국내최초의 복제소 ‘영롱이’ 수준이 아니었다. 사실 황우석교수의 사람의 난자와 체세포의 융합에 의한 복제기술은 당시 세계최고수준인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 그가 연구팀 일원인 한 연구원의 줄기세포주에 대한 DNA지문 조작이 드러나면서 하루아침에 나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의 생명과학계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줄기세포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그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격한 반발을 불렀다. 난치병의 희망이었던 황교수의 연구업적은 당시 세계최고수준의 소위 ‘젓가락기술’과 전기충격 등에 의한 핵융합 방식 등을 거쳐 배아줄기세포주 개발의 문턱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일본의 야마나카는 역분화방식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고 그 성과는 쥐를 이용하긴 했지만 체세포의 역분화방식에 의한 생식 줄기세포로 발전했다. 생식줄기세포는 난자와 정자로 각각 분화할 수 있는 것이어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쥐 복제는 물론 다른 장기나 관절 같은 장기조직이나 면역세포, 신경물질 같은 특정단백질을 조건에 맞춰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이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와 비견되는 희대의 오보사건이 역분화 줄기세포에도 터졌다. 야마나카 교수가 확립한 체세포를 이용한 역분화줄기세포를 이식한 심근마비환자가 8개월째 살아있다는 임상시험 성공소식이 도쿄대 미국파견연구원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지 이틀만에 완전사기로 판명 난 것이다.

두 사건이 갖는 공통점은 ‘결과’로만 말하는 생명과학계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세계적 권위지에 도착한 논문의 시간을 다퉈 한 시간이라도 빨라야만 노벨상을 비롯한 각종 명예와 특허 연구비등 산업적 권리와 이득을 독점하는 승자독식의 경쟁구도에서 나온 것이다.

줄기세포는 하나의 약이다. 넓은 의미의 생물학적 제제에 속한다. 또한 환자의 자가세포가 됐든, 핵을 제거한 난자가 됐든, 수정이 이뤄진 후 배아의 세포분열기에서 한 할구만을 얻어내는 방식이 됐든 일단 만들어낸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만든 치료제를 환자에게 곧바로 시술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료시술에 속한다.

따라서 산업적 육성을 전제로 한 제약산업의 한 분야로 볼 때는 약사법을 비롯한 생물학적, 임상적 시험과정과 생산과정에 대한 밸리데이션(과정에 대한 기록)과 GMP(우수의약품생산공정)기준 등을 철저히 지켜야만 한다. 또 줄기세포가 제조된 후엔 환자에게 신속히 쓰여져야만 하는 경우도 많아 하나의 의료시술에 해당되기 때문에 의료법도 적용된다. 이어 배아줄기나 태반, 제대혈 줄기세포 등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절차를 밟아야 하고, 신의료기술은 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기술인증을 받아야만 하며, 태반이나 탯줄을 이용할 경우엔 인체유래 치료제의 생산에 관한 법률, 제대혈인 경우는 제대혈 관리법 등등을 거쳐야 한다. 최근엔 양승조의원이 발의해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된 줄기세포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조만간 시행될 예정이다.

이처럼 많은 법률적 제도적 제약 속에 한국의 미래산업인 줄기세포가 놓여있다. 연구원들도 이들 법률적 제제나 규정을 숙지하고 연구를 수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한편으로는 줄기세포 지원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국내 보건복지부와 지경부 교과부 농수산부 예산까지 합쳐봐야 원래 6백억원 수준이었다. 이를 지난 7월 1천억원 정도로 늘렸는데 이는 일본의 야마나카교수 연구팀이 한해 쓰는 예산이 6백억원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말그대로 ‘풀칠하는’ 수준이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시 깔거나 전국의 시의원 같은 토착 정치인들에 붙어서 쓸데없는 공사를 벌이는 등 우리 주변에서 낭비되는 예산만도 한해 수조원은 족히 될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야마나카교수가 노벨상을 탄 후 일본정부는 향후 5년간에 걸쳐 최대 4천억원대의 연구비지원을 약속했다.

제도적 믿받침이나 예산 보다 더욱 절실한 게 임상시험 능력이다. 줄기세포 같은 기초와 응용연구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최첨단 분야의 연구에선 연구와 산업화를 연결하는 중개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줄기세포를 갖고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기관은 20곳 내외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 연구자 임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법률적 제약을 받고 있어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모든 임상시험비용을 연구자 개인이나 기관에서 부담해야만 하는 장벽에 가로막혀 숨이 넘어가고 있는 상태다.

이번 야마나카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국내사정을 재정비할 절박한 사정이 생겼다. 분초를 다투는 생명공학, 그중에서도 줄기세포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모든 제약을 빠른 시간 안에 뜯어고쳐야 한다. 연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인력부족이나 예산 타령만을 하는 게 아니다. 예산이나 인력이 남아돌아 한국의 전자산업과 반도체,자동차 조선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게 아니라는 점을 누구나 잘 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게 줄기세포를 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고 그에 바탕하여 민관합동의 총력을 기울여 미래의 생명산업에서 세계강자로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표출되어야만 한다. 그 밑바탕엔 황우석사태가 던져준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칫 한눈파는 사이 모든 기회가 날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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