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한국인 구글러, 만화에 빠진 이유는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2.10.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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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김창원 타파스미니어 대표, 웹툰으로 미국시장 도전

블로그 서비스회사 테터앤컴퍼니를 공동창업해 구글에 매각한뒤 4년여 구글 본사에서 소셜네트워크 사업을 책임졌던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대표. 그의 실리콘밸리 창업스토리는 스타트업의 정석을 보는 듯했다.  블로그 서비스회사 테터앤컴퍼니를 공동창업해 구글에 매각한뒤 4년여 구글 본사에서 소셜네트워크 사업을 책임졌던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대표. 그의 실리콘밸리 창업스토리는 스타트업의 정석을 보는 듯했다.


사실 김창원(37) 타파스미디어 대표가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 네이버나 다음에 올라오는 웹툰만큼은 달랐다. 한국 최초로 구글에 매각된 블로그 서비스 테터앤컴퍼니를 공동 창업해 대표로 일할 때도, 이후 4년여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서 블로거닷컴과 구글플러스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할 때도 웹툰만큼은 안보고는 못 베길 정도였다. 2~3시간 내리 보다가 ‘내가 대체 뭐한 거야’라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절로 손이 가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죄책감만 느끼고 있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웹툰으로 미국시장을 개척해보면 어떨까.’

만화보는 재미에 빠졌다가 만화로 크게 판 벌리다
김 대표는 올 초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웹툰시장에 대해 리서치를 했다. 결론은 한국의 웹툰만큼 흡입력 있는 웹툰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 한 회를 보고 났을 때의 감동과 그 다음 회를 고대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은 세계 최고라는 판단이었다. 반면 미국 만화시장은 아직 출판만화가 대세이고 웹툰이라는 장르는 형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



“처음에는 미국인들이 웹툰을 볼까 회의도 가졌죠. 야후 같은 포털에 웹툰 장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최근 한두 명 미국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웹툰에 페이스북 라이크가 5만 클릭, 트윗이 1만4천 클릭이나 되더라고요. 일상을 아마추어적으로 그려 올린 것에 불과한데도 말이죠. 용기를 얻었죠. 한국에서 출판만화가 웹툰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성공요인을 찾아 적용한다면, 미국에서도 없는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거죠.”

김 대표가 구글을 그만두고 미국 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3월. 전략은 이랬다. 첫째, 다음 회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 정도로 훌륭한 연재모델을 만드는 것. 둘째, 액션과 판타지뿐 아니라 회사생활, 육아, 결혼, 요리, 여행 등 일상의 다양한 포트폴리오의 콘텐트를 만드는 것. 셋째, 전문작가뿐 아니라 수많은 아마추어 등 작가들을 위해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의 웹툰 콘텐트와 작가들을 발굴해서 미국 시장에 진출시키는 것이었다. “강남스타일나 한국드라마는 동양의 이질적인 정서가 어필한 부분도 있는 반면, 한국 웹툰은 그 자체로 퀄리티가 세계 최고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웹툰 작가들은 처우가 열악할뿐더러, 자신의 콘텐트를 해외로 진출시킬 수 있는 통로가 없습니다. 한국 웹툰을 발판으로 미국 내에서 제대로 한번 웹툰 시장을 만들어내고 싶은 거죠.”

현재 타파스미디어는 미국 현지 작가 40명과 함께 한국 작가 15명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정서에 맞게 스토리와 그림을 만들 수 있는 한국 작가들에 대해서는 번역과 각색을 거쳐 소개하고, 그림보다 스토리가 뛰어난 한국 작가들은 미국 현지 작가들이 그림을 그린다. 지난 8일 정식 론칭한 웹툰 사이트 타파스틱(www.tapastic.com)에는 현재 50여 편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5편 정도가 한국 작가들 작품이다.

김창원 대표가 지난 8일 정식 론칭한 웹툰 사이트 타파스틱(www.tapastic.com).김창원 대표가 지난 8일 정식 론칭한 웹툰 사이트 타파스틱(www.tapastic.com).
논쟁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일단 만들고 피드백을 받아라
한국에서 이미 성공적인 창업을 이뤄냈고, 이어 구글에서 실리콘밸리를 경험했으며, 더욱이 실리콘밸리 유명 인큐베이터 500스타트업의 멘토로서 수많은 스타트업(초기기업)들을 접한 베테랑인 김 대표의 창업스토리는 정석에 가까운듯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웹툰이 될듯했다.


“스타트업의 길은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을 검증하고, 검증결과에 맞춰 고쳐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팀원들이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이면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만들어서 검증하는 것이죠.”

가정과 검증에 이은 수정의 과정,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 김 대표 역시 지난 8개월여가 그랬다. 지난 7월 알파 버전을 내놓은 이후, 수많은 피드백을 받으면서 ‘이게 아니다’ 싶은 것을 다 뜯어고쳤다.

처음에는 ‘작가들이 다 들어와서 퍼블리싱 해라’는 식의 오픈 플랫폼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훌륭한 킬러콘텐트를 통해 트래픽부터 확보하는 쪽으로 수정했다. 10여명 팀원 가운데 버클리대 출신 3명이 버클리대 학생들의 일상을 담은 웹툰 스토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어도 버클리 학생들은 공감할 것이고, 그 공감이 입소문이 돼서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김 대표는 또한 웹을 완벽하게 만든 뒤 모바일을 구축하는 전략에서 ‘모바일 퍼스트 전략(mobile first approach)으로 확 뒤집었다.

“우리가 플랫폼이라고 얘기한다고 해서 작가들이 몰려들 거냐? 그렇지 않다고 확인한 것이죠. 또 모바일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모바일부터 하자’라고 까지 생각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웹의 연장선상으로서의 모바일이 아니라, 모바일의 연장선상으로의 웹으로 확 바꾸었습니다.” 김 대표는 이 모든 것을 두 달 만에 밤새워 다 뜯어 고쳤다. 스타트업은 시간이 돈이니깐.

별 것 아닌 것, ‘저게 뭐야?’ 하는 것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든다
블로그 서비스회사 대표, 구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책임자 등 그의 커리어 경로에 비춰보면 사실 웹툰 사업은 좀 생뚱맞다. 소셜과 모바일을 접목해서 뭔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남들도 생각하고 있는 아이템은 경쟁자가 너무 많아요. 자고 나면 수백 개씩 생기죠. 지나고 났더니 큰 비즈니스가 돼 있는 아이템들의 시작을 보면 사람들이 별로 주목을 안 했던 것이 많아요.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처음에는 ‘저게 뭐야’ 했잖아요. 좋은 비즈니스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인데 사람들도 그 필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아이템인 경우가 많다는 거죠. 아이팟이 새로운 욕구,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 해도 웹툰과 같은 이미지 미디어는 동영상에 비해서 너무 클래식한 것이 아닐까?

“사진공유 SNS인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이 유튜브보다 훨씬 나중에 나왔지만 급성장 했지 않습니까? 이미지는 동영상과 다르게 또 다른 장르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희가 하려는 것은 한 컷의 이미지가 아니라, 스토리를 비주얼화하는, 비주얼 스토리입니다. 20분짜리 동영상이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저하게 되죠. 하지만, 웹툰과 같은 비주얼 스토리는 몇 번만 스크롤하면 봐야 할지 여부를 0.5초안에 결정합니다. 동영상과는 또 다른 독특한 영역이 있는 것이죠.”

SK플래닛 역시 이런 비주얼 스토리에 대한 성장가능성을 보고 최근 타파스미디어에 엔젤투자를 하고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었다.

김 대표의 궁극적 비즈니스 모델은 교육 사업. “세상의 모든 스토리를 비주얼 스토리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웹툰을 통해 복잡한 컨셉과 이론을 쉽게 전달하는 2차 저작을 하는 것이죠. 영어가 됐든, 중국어든, 물리학이든, 세계사든, 아니면 영화 시나리오, 고전문학, 와인, 트렌디한 뉴스분석, 심지어는 보험약관까지 비주얼 스토리로 만들고 싶은 겁니다. 보험 약관만해도 사람이 보라고 써놓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계약서에 사인하고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는 보험약관을 웹툰으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김 대표의 말처럼 어쩌면 큰 비즈니스가 될 아이디어는 ‘저게 뭐야’할 만큼 만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중요한 것은 가정과 검증, 그리고 수정의 과정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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