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식품 회장, 직원 5억씩 부자 만들겠다며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12.10.0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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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맨' 김영식 회장 "2014년말 IPO 계획…성공 비결은 열정"

↑김영식 회장이 서울 역삼동 사옥 1층 매장에서 사진 촬영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봉진 기자 honggga@mt.co.kr↑김영식 회장이 서울 역삼동 사옥 1층 매장에서 사진 촬영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봉진 기자 [email protected]


2년 전 회사 송년회 때였다. 직원들이 물었다. "회장님은 성공한 기업가이시죠?"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61)은 이렇게 답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내가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는 여러분이 부자가 됐을 때입니다. 여러분의 통장에 5억원 이상 들어 있을 때 나는 성공한 기업가라고 큰소리치고 다닐 것입니다."

김 회장은 2014년 말까지 부산 본사와 서울 계열사를 통합해 기업공개(IPO)를 실시할 계획이다. 현재 주간사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상장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직원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아직 작은 회사라 사업 확장에 조심스럽지만 상장 전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해 중국시장 진출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계획대로 상장에 성공해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대부분 자사주를 갖고 있는 직원들에게 그 결실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 지 근 40년. 한때는 자살을 마음먹을 만큼 위기를 겪고 절망도 했지만 낙천적인 성격과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화산처럼 끊임없이 끓고 있는 뜨거운 열정을 사업과 사람에 쏟아부어 대표적인 중소기업가 중 한 명이 됐다.



◇기분 좋게 하는 사람=김 회장은 지난 2010년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시에프(CF)에 직접 출연했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하는 구수한 경상도 말투가 화제가 돼 자신은 물론 회사 이름을 크게 알렸다.

김 회장은 "절박한 심정으로 진솔하게 말한 것"이라고 하지만 광고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밌어 웃었다. 실제로 김 회장은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스스로도 남들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저는 이벤트를 좋아합니다. 아내의 생일 땐 자동차 트렁크를 열면 풍선이 날아오르는 전통적 이벤트에서부터 5만원권 50장을 침대 위에 한장 한장씩 깔아놓은 이벤트까지 안 해 본 것이 없죠. 직원들과는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집으로 초대해 점심을 차려주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스스로를 '열정 직원'이라 부르는 직원들과 제주도에 다녀왔다. 낚시와 사격, 승마를 하며 열정을 불살랐다. 또 회사에는 여직원들이 많은 편인데,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새 옷을 사 입은 직원과 만나면 미용비나 옷값만큼 용돈을 준다.

심지어 시민들한테도 용돈을 준다. "집 근처 산을 오를 때마다 3만원씩 가져갑니다. 젊은 사람이 인사를 해오면 만원을 줍니다. 로또 사지 마시고, 이 돈을 종잣돈 삼아 번성하라고 덕담해 주죠. 오늘도 개그콘서트 출연진들과 저녁에 맥주를 마시기로 했는데 선물로 주려고 만원짜리 신권 100장을 챙겨놨습니다."

김 회장은 해외 정상들까지 챙긴다. 지난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냈다. 당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등으로부터 고맙다는 답장 편지를 받았다. 10년 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선물과 편지를 보내 두 달 뒤 부시 부부의 친필 서명이 담긴 답장을 받았다.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성공하고 싶다면 당연히 열정을 가져야 하겠죠. 그런데 어떻게 하면 열정이 생길 수 있을까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안된다고 생각하고 얼굴을 찡그리면 의욕과 열정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잘 할 수 있다고 소리치며 자기암시를 하면 열정이 생기고 얼굴이 밝아집니다. 그러면 주변에 사람이 모입니다."

김 회장은 주로 산에 올라 열정의 불씨를 살린다. 태양의 기운을 받으며 "나는 잘 할 수 있다, 잘 되고 있다"고 소리친다. 자기가 세운 목표도 자꾸 주변에 알린다. 휴대폰 화면에도 항상 목표를 써 둔다. 지금 화면은 '중국시장 대박 만들기'라고 돼 있다. 또 열정만 지나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전략을 세우고 수시로 검토하며 행동에 옮긴다.

열정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는 근면이다. 물론 타고난 것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항상 새벽부터 일어나 일했던 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2시간 넘게 있지 못했고, 지금도 주말에 쉬기보다는 등산을 하거나 밖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집에서 뒹굴면 몸살이 나는 스타일이다.

김 회장이 매 순간마다 부지런을 떠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다. "자신의 미래는 점쟁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운은 자기 발뒤꿈치에 있습니다. 열심히 뛰고 일한 사람은 당연히 미래가 밝겠죠."

의욕이 넘치다 보면 세심함이 부족할 수 있지만 김 회장은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다. 주로 부산 본사에 있다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서울 법인에 출근하는데 매번 1층에서부터 회장실이 있는 6층까지 150명에 이르는 전 직원들과 악수를 하고 올라오느라 시간이 한참 걸린다.

직원들에 대한 배려는 회사 정책으로 체계화돼 있다. 직원들의 출산·육아와 자녀 교육에 관련된 복리 후생을 잘 갖춰 놓았고, 직원들이 대학이나 대학원에 가면 교육비 전액을 지원한다. 공장 생산직을 비롯해 콜센터 직원이나 매장 안내원까지 대부분이 정규직이다. 김 회장은 최고의 복지를 갖춘 회사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김영식 회장이 추석 전날인 29일 팬카페인 '뚝심카페' 회원들에게 보낸 추석 인사 문자 메시지.↑김영식 회장이 추석 전날인 29일 팬카페인 '뚝심카페' 회원들에게 보낸 추석 인사 문자 메시지.
◇사람 좋아하는 사람=김 회장은 사람을 최고로 여긴다. 직원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그래서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먼저 인사를 하고, 한번 만난 사람은 계속 인연을 이어간다. 또 중요한 사람을 처음 만날 때는 반드시 인상을 남기려 애쓴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의 일화다. 청와대 주최 중소기업 간담회 오찬 자리에서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옆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동안 중국 요리가 나왔는데 김 회장은 먹는 시늉만 했다.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였기에 대통령과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자리가 끝나자 이 대통령은 김 회장에게 "천호식품이라고 하셨죠? 그 회사 참 잘 되겠네요"라고 했다.

탤런트 이순재씨는 천호식품의 광고모델이다. 김 회장과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인연을 맺었다.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10년 전 김 회장은 이씨에게 회사의 가능성을 담보로 하고, 모델료는 후불로 주는 조건으로 모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씨는 김 회장의 열정과 창의성을 높게 사 부탁을 들어줬고, 지금까지도 계속 가깝게 지내고 있다.

김 회장은 골프를 좋아하고 잘 치지만 대외적인 실력은 '보기 플레이어'(90타 전후)를 유지한다. "골프를 너무 잘 치면 주변에 같이 칠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인간관계를 잘하려면 내가 져주면 됩니다. 다 이기려 하면 안되죠. 조금만 겸손하면 잘 되더라구요."

김 회장은 행복도 사람에게서 찾는다. 특히 가족, 그 중 아내는 김 회장의 '행복의 기원'이다. 김 회장은 아내와 펜팔을 통해 만났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 이겨냈다. 김 회장은 자서전 '10미터만 더 뛰어봐'에서 아내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내가 아주 힘들었을 때, 모두들 떠나갔을 때, 그 때 옆에 있어준 단 한 사람, 아내가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

↑"생각하면 행동으로, 지금 당장 즉시!"라고 쓰여진 벽 앞에 서 있는 김 회장. ⓒ홍봉진 기자↑"생각하면 행동으로, 지금 당장 즉시!"라고 쓰여진 벽 앞에 서 있는 김 회장. ⓒ홍봉진 기자
◇고난을 이겨낸 사람=김 회장이 직원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업을 무리하게 이끌어 가지 않는 것은 실패와 고난의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거센 파도는 유능한 선장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거센 파도를 만난 사람은 그 뒤 잔잔한 파도는 그냥 넘어갑니다. 기업을 하면서 혼이 나 본 사람은 잘 안 망합니다."

김 회장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대에 다녀온 뒤 스물네살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첫 사업인 학습지 사업은 어느 정도 성공했고, 신발 깔창과 금연파이프 등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대학 등록금이 50만원도 안되던 서른살 때 반년 동안 6000만원이 넘는 이익을 남겼다. 젊어서였을까, 자만심에 빠졌다. 돈을 물 쓰듯 썼고, 장난감과 주방기구 사업까지 확장하다 무너져 내렸다. 한 순간에 무일푼이 됐다.

김 회장은 1984년 서른네살 때 부산에서 천호식품을 세워 재기를 노렸다. 달팽이로 건강식품을 만들어 팔려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파산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러나 한 인기 방송 프로그램에 끈질기게 매달려 출연에 성공하면서 '달팽이 엑기스'가 대박이 났다. 이후 10여 년 동안 사업이 계속 잘 풀렸다. 김 회장은 1994년 1월 당시 부산에서 현금 보유 기준 100위 안에 들었다.

다시 사업 확장에 나섰다. 서바이벌 게임장, 찜질방, 황토방 체인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왔다. 200명이 넘던 직원들이 다 떠나고 여직원 하나 밖에 안남았다. 서울 서초동 넓은 사무실에 혼자 않아 소주를 마셨다. 식당에서 삽겹살 회식을 하는 직장인들이 부러웠다.

'천길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느껴졌을 때 9층 사무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세무서 직원이었다. 밀린 세를 내라고 독촉했다. 거친 말이 오갔다. 그러자 오기가 생겼다. 반드시 재기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사무실 보증금을 빼고, 아버지에게서 2000만원을 얻어 최종 부도를 막았다. 그리고 다시 뛰었다. 혼자 돌아다니면서 제품을 팔았다. 아내가 선물한 반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130만원을 빌려 전단지를 찍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단지를 돌렸다. 그리고 하루 2만원을 주고 여관에 묵었다. 소세지 하나와 소주 한병으로 하루를 버텼다.

김 회장은 재기를 마음먹고 스스로 6개월이라는 시간을 정했다. 6개월 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무조건 달려보자는 마음이었다. 첫 달에 1100만원을 벌었고, 목표했던 6개월 뒤에는 2억5000만원을 벌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1년 11개월 만에 빚 22억원을 다 갚았다.

이후 산수유환 등 여러 히트 제품을 내놓으면서 부산과 서울에 직원 400여 명을 두고, 연매출 1000억원을 넘긴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서울 역삼동에 사옥도 지었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지면서 국내 대표적인 건강식품 회사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세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은 목표를 달성하다보면 큰 목표도 이뤄집니다. 목표 달성의 달콤한 맛을 봐야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멀리도 아니고 10미터만 더 뛰면 됩니다. 지금 바로 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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