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푸어 "과잉진료, 병만 더 키운 꼴"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송학주 기자 2012.09.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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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도 없는 '하우스푸어' 대책만 요란]<1>진찰없는 땜질식 처방


- 시세·대출금비율만 고려, 소득대비 이자비율봐야
- 정부개입 '형평성' 문제, 상환유예 등 간접지원을


ⓒ그래픽=김현정ⓒ그래픽=김현정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하우스푸어' 지원대책이 제대로 된 진찰없이 처방전만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작 하우스푸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도 전에 대책을 내놓다보니 논란만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다.



 일각에선 "굳이 병원에 갈 상황이 아닌 시점에 '과잉진료'하는 게 아니냐"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대선국면과 맞물려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집값·부채·자산·소득 대비 이자비용 등 종합분석 선행돼야
 지난 23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지분매각제도'를 발표했다. 이 제도는 주택담보대출로 허덕이는 집주인들을 위해 대출금 일부를 정부(공공기관)가 인수하되 그 금액만큼 지분을 갖고 공동보유하는 방안이다.



 실효성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하우스푸어의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다. 지분매각제도의 대상은 수도권 6억원 이하 주택(이외 지역은 3억원), LTV(담보인정비율) 80% 이하 1가구1주택자를 기준으로 했다.

 단순히 주택 시세와 집값 대비 대출금액의 비중만 고려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상환하느라 얼마나 허리가 휘는지를 가늠할 수 없는 기준인 셈이다.

 김태황 명지대 교수는 "취득세율 구분을 차용해 시세 9억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 등의 기준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소득으로 이자를 충당할 수 있으면 하우스푸어로 보기 어려워 담보대출자들의 부채 현황을 파악한 뒤 소득 대비 대출이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층을 대상자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부채의 절대 원금 규모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모기지론 지원처럼 소득 수준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다만 이런 기준으로 하우스푸어를 규정하려면 앞으로 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뤄진 뒤 판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소득뿐 아니라 부동산 이외 보유자산도 기준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은행들의 채무자 정보를 종합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연체자를 하우스푸어 기준으로 검토중인 데 대해서도 신중론이 제기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재 대략 4만5000명이 하우스푸어 대상에 속한다.

 정재호 목원대 교수는 "부채상환 압박에도 이자 납부를 연체하지 않고 꼬박꼬박 빚을 갚아간 사람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일부러 연체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를 자극할 수 있다"며 "모기지론 부실로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도 채무자의 부채탕감 과정에서 이같은 모럴해저드 우려로 논란이 됐다"고 지적했다.

 ◇"정부 직접 지원은 시기상조"
 하우스푸어 지원에 대한 시기상조론도 적지 않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위원은 "하우스푸어라는 용어 자체가 사회적 약자나 저소득층을 지칭하는 뜻이 아니어서 공공정책 대상이 돼선 곤란하다"며 "실제로 투자 목적으로 무리하게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까지 구제해주는 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나서기보다 현재는 민간금융회사의 세일즈앤드리스백(매입후 재임대)나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제도 등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취득세나 양도소득세 감면 등으로 수조원씩 세수 감소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 없이 하우스푸어 정부지원책을 내놓으면 무주택자들의 불만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당사자인 대출자와 은행이 최대한 자체 해결을 모색한 뒤 해결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구제 대상을 극히 제한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호 교수는 "우리나라는 LTV와 DTI(총부채상환비율) 등의 주택금융 규제로 인해 무분별한 대출로 금융시장에서 문제가 터진 미국과 다른 상황"이라며 "현재로선 국가의 직접 개입보다 원금상환 시점을 유예해주거나 장기대출로 전환, 상환압박을 덜어주는 간접적 지원 방안을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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