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에 투자하는 채권도 나올 것"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2.09.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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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의 길, 사회투자]<2-2>제프 멀건 영국 국립과학기술예술기금 대표

편집자주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재정 한계에 부닥친 정부, 요동치며 불안한 자본시장에 한계를 느낀 대형투자자, 빈곤인구의 거대한 고통에 대한 해법을 찾는 자선가. 이들이 한 테이블에서 만나고 있다. '사회투자'라는 테이블이다. '사회투자'는 자본이 혁신을 일으키는 원리를 사회 문제 해소에 적용해 '증세 없는 복지', 투자가 되는 복지의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 등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도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복지 문제를 해결할 비법이 될 수도 있어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머니투데이는 6회에 거쳐 국내외에서 시작되고 있는 사회투자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한다.

↑제프 멀건 NESTA 대표 ⓒ이경숙 기자↑제프 멀건 NESTA 대표 ⓒ이경숙 기자


"태풍이 지나간 후 한국 하늘은 정말 맑군요. 하지만 2008년 우리에게 '세계금융위기'라는 태풍이 닥친 이후 세계경제는 아직도 맑은 하늘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본시장은 경제를 위해 서비스하지 않고, 너무나 포식자 같아서 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파괴하고 있습니다."

제프 멀건 영국 국립과학기술예술기금(NESTA) 대표는 자본시장이 경제의 포식자에서 봉사자로 거듭 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과거에 정부가 주로 수행하던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가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자산군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자본주의, 새로운 사회·경제정책 그리고 자본시장의 새로운 역할' 국제회의 참가 차 19일 방한한 그는 "자본시장이 (OECD) 국가에서 혁신에 많은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며 '금융이 일으킨 혁신은 자동현금지급기(ATM) 외엔 없었다'는 폴 볼커 미국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경제활동과 투자활동, 사회활동을 연계해야 한다"며 "기업, 투자자 등 기존 기관의 행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경제는 뭔가를 만들어내고 부를 창출하는 데에는 잘 작동하고 있지만 사회적 부(Social wealth) 측면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는 오염·고령화·쓰레기·비만증·사회적 고립 등 같은 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도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경제적인 부는 자연자원, 노동자원을 배출하는 가족 등 사회공동체에 의존해 창출된다"며 경제·투자·사회 활동 연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사회적 부에 대한 가장 크고 장기적인 투자자는 정부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다. 세계금융위기 후 각국 정부는 이미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그런데도 경기 위축은 지속되어 세수는 줄어든 가운데 일자리 감소, 범죄 등 풀어야 할 사회 문제는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미국, 유럽 정부는 재정 긴축과 함께 예산을 지출했을 때 파운드, 달러당 효과가 어떠한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20년 전 정부에 민자사업이 새로이 나타났을 때처럼 인력, 사회 문제 해소 같은 무형 자산에 대한 사업에서도 자본시장의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기 교육, 범죄자 재교육, 제약산업 및 인프라에 투자할 때 성과가 사회적 비용 절감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에 대한 실증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회투자는 투자자의 주류 분야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는 "앞으로 10~20년 후엔 금융기관에도 사회적 성과의 측정과 분석이 익숙한 업무 분야가 될 것"이라며 "공공 부문이 교육 등 인적 자본 투자, 범죄 예방 및 보건 등 사회문제 예방 분야에 투자했을 때에 투자 수익 즉 사회적 성과에 대한 분명한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적 부가 창출되는 방식 역시 달라진다. 그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 모델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것"이라며 "상품 판매가 아니라 관계에서 부(wealth)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새로운 경제의 특징은 "통화량 창출은 전통 경제보다 적어도 가치 창출은 더 크다"는 데에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개인의 창의적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킥스타트(Kick Start)', 개발국 투자자들이 저개발국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군중펀딩 '키바(KIVA)', 세계의 빈방을 투숙희망자와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에어비앤비(Air B&B)'가 그러한 예다. 이런 서비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에 힘입어 인터넷 내 관계망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는 "대규모 펀드가 새로운 자산군에 투자될 것"이라며 "영국에선 노숙자에 투자하는 사회투자채권이 나올 것이며 앞으로는 정부·거액기부자뿐 아니라 소액 투자자도 투자 가능한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본시장에선 금융기관이 경제의 포식자가 아니라 봉사자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공공 정책과 비영리, 사회적기업 등 여러 부문을 넘나드는 경력의 소유자이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는 영국 정부 및 총리실에서 정책을 기획했고 이후 영재단(Young Foundation) 이사장을 맡아 사회적기업과 비영리기구의 혁신에 대한 투자를 주도했다. 지난해부터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NESTA는 의료·과학기술·예술 등 창의산업에 대한 영국 정부의 기금을 배분하는 기관이다. 조기 기술창업벤처엔 직접 투자도 수행한다. 그는 지난해 설립된 영국 정부의 사회투자기금 '빅소사이어티캐피털'의 이사이기도 하다.



중국, 호주 등 여러 정부의 리더양성과정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는 한국의 리더들과도 관계가 깊다. 이번 방한 때엔 박원순 서울시장과 별도로 만나 사회혁신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엔 서울국제경제자문단 총회, 2009년엔 부산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 올해 7월엔 아시아엔지오(NGO) 이노베이션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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