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전액 기부하는 통큰 국수가게

머니위크 문혜원 기자 2012.10.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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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맛도 사랑도 '무한리필' 해주는 '동화마을 잔칫날'

가을이 성큼 다가선 지난 9월18일. 이른 점심시간임에도 서울의 끝자락 방화동에 위치한 국수전문점 '동화마을 잔칫날'은 어김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큰 대접에 한가득 나오는 잔치국수는 단돈 3500원. 싼 가격에 놀란 고객은 다시 그 양에 놀란다. 산처럼 가득 쌓인 국수양은 족히 3인분은 돼 보인다. 그릇을 제한 무게만 1.5kg이라니 그 양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것마저 모자란 고객에게는 무한리필이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국수가게는 매일 문전성시다. 하루 평균 방문자만 400명을 훌쩍 넘는다. 39.6㎡(12평)크기의 가게에 월평균 매출이 700만원이나 된다. 2009년 문을 연 '동화마을 잔칫날'은 지난해 5월과 9월 각각 2호점과 3호점을 열었다. 3곳 모두 임대가 잘 되지 않는 가게자리였음에도 이 국수가게가 들어서자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 사진_류승희 기자ⓒ 사진_류승희 기자


하지만 이 가게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아버지 김동운 길꽃어린이도서관 관장이 가게를 연 후 아들 김요환 사장이 이어받은 이 국수가게는 인건비 등 제반비용을 제한 수익을 100% 기부하고 있다. 가게 이름처럼 동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따뜻한 세상을 만들려는 부자(父子)의 노력 때문이다.



김 사장이 받는 월급은 일반 직장인과 비슷하거나 적은 수준. 아버지 김 관장은 그나마도 받지 않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3호점까지 열며 모든 수익을 노인과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싼 가격에 국수를 배불리 먹고서 자원봉사를 나서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 고정적인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봉사의 땀방울을 흘렸다.

"동네사람들은 배불리 국수를 먹고 그 수익금으로는 어렵게 사는 노인과 학생들을 돕는 것. 우리가 사는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국수집을 연 목적이죠."


김요환 사장의 말이다. 작은 국수가게의 힘은 놀라웠다. 매년 꾸준히 기부에 힘쓴 결과 지난해에는 3000여만원을 기부해 장학금과 노인복지에 사용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33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사진_류승희 기자

작은 국수가게의 힘

"예전에 동네에서 홀로 살던 한 할머니가 사망한 지 보름 만에 발견된 적이 있어요. 그 사건에 충격을 받아 노인들을 위해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김동운 관장이 기부에 앞장서게 된 이유다. 1997년 뉴스로 접한 독거노인 사망사건이 김 관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후 그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방화3동에 얼마나 많은 노인이 사는지를 파악했다. 무려 400세대 이상의 독거노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개인 사업을 하던 김 관장은 다니던 교회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역 내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건강식' 전달 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인정을 찾아가 관계자를 1년 동안 설득해 노인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애썼다.

"아직 정정한 노인들이 노인정에서 그저 화투나 치고 시간을 때우는 일이 많았어요. 이들에게 일거리를 줘 활기를 되찾게 해주고 싶었죠."

그가 만든 건 등굣길 우범지역을 지키는 '북치는 실버 순찰대', 어린이에게 할머니가 동화를 들려주는 '실버 이야기보따리', 전통문화 체험을 위한 '짚공예' 등이다. 김 관장의 노력이 헌신짝 취급받던 노인을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짚공예 활동을 하는 한 노인은 "집에서 하루종일 TV만 보다가 이렇게 나와서 일하고 기술도 배워 좋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청년 못지 않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의 명함에 적혀 있는 빼곡한 직함이 이를 잘 말해준다. 길꽃어린이도서관과 우장산작은도서관 두 곳의 관장직을 맡으며 (사)영우장학회의 이사장으로 학생들의 장학금 지급에도 힘쓴다. 지금은 매년 10월마다 3000여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동화마을 어린이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사진_류승희 기자

"행복은 돈을 모으는 데 있지 않다"

그런 김동운 관장을 보고 자란 김요환 사장은 기부가 몸에 뱄다. 국수가게를 맡기 전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매달 50만원씩 남을 위해 기부했다. 그 금액만 해도 3000만원은 족히 될 정도다. 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기부를 할 수 있었을까.

"당시에도 제 월급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가 만약 지금 기부를 하지 않는다면 10억원을 번다해도 큰돈을 기부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게는 기부해서 기쁜 마음이 돈을 버는 것보다 크죠."

그가 가게에서 받는 월급은 아내와 아들 세식구가 살기에는 빠듯하지만 그럼에도 행복은 더 커졌다.

"돈은 적게 벌지만 인생의 목적에 가까워졌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우리 부자(父子)가 진짜 부자(富者)인줄 알아요. 때때로 돈 걱정도 하며 사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인데 말이죠."

'동화마을 잔칫날'을 400개 여는 게 목표라는 김 사장. 400개가 되어도 그의 월급은 변함없겠지만 국수집이 많을수록 좋은 일에 쓰이는 돈도 그만큼 더 많아지게 된다. 멀리서 이 국수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국수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어려운 일에 나서는 따뜻한 국수집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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