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에는 있고 갤럭시에는 없는 '그것'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2012.09.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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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아이폰에는 있고 갤럭시에는 없는 '그것'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D-3’, ‘D-2’, ‘D-1’, 5시간 전, 3시간 전, 10분 전, 나중에는 초단위로 카운트다운. 대통령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아니다. 미국의 거의 모든 매체들이 호들갑스럽게 홈페이지를 장식하며 생중계한 이 역사적인 이벤트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아이폰5 공개 행사.

무슨 개표방송 중계도 아니고 ‘해설위원’들까지 나와 실시간으로 팀 쿡 등의 발언을 라이브로 중계한다. 시청자 전화도 받고, 실시간 폴도 진행한다.



애플의 이벤트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과연 ‘좋은 제품’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좋은 제품이란 ‘잘 만든(well-made)’ 제품이 아니라, ‘사랑 받는(beloved)’ 제품이라는 것. 아이폰은 진심으로 사랑 받고 있었다. 아이폰5가 기대에 미쳤든 못 미쳤든, 충분히 진화를 했든 아니면 혁신이 없었던 간에 말이다.

발표 직후에는 온갖 매체와 블로그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한쪽은 ‘아이폰이 지루해졌다’ ‘대약진이 없다’고 하고, 다른 쪽은 ‘혁명(revolution)도 시간이 흐르면 진화(evolution)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변화 그 자체를 위한 변화를 만들지 않았고, 분명 더 좋아졌다’라고 말한다.



아이폰에는 있고 갤럭시에는 없는 '그것'
오죽했으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아이폰5 공개 다음 날인 13일자에 1개 면을 털어 “미디어 에코시스템이 애플 때문에 먹고 산다(Media ecosystem feeds on anything Apple)”고 했을 정도이다. 애플이 앱 개발자, 액세서리 제작자뿐 아니라 미디어까지 먹여 살린다니! “대중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애플에 대한 뉴스를 생산하는 것 자체를 ‘엄청난 비즈니스(Big Business)’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WSJ는 미국의 한 잡지정보네트워크를 인용하면서 스티브 잡스를 잡지 커버에 등장시키면 그 전달호보다 25~45% 정도 더 많이 팔린다고 소개했다. 타임지가 지난해 11월 스티브 잡스를 기념하기 위한 커버스토리를 다루자 판매량이 평소의 2배에 달했다. 또 ‘9to5Mac’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세스 웨인트라우브는 웹 개발자로 일할 때보다 블로그에 애플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이 정도면 아이폰은 참 잘 만든 제품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사랑 받는 제품이다. 기술력이나 기능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아우라’(aura)이다.


실리콘밸리의 한 인사는 아이폰만의 ‘유저 익스피어리언스(사용자경험·UX)’때문이라며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한때 모토로라 CEO가 “아이폰을 능가하는 스마트폰을 만들라”며 엔지니어들을 재촉한 적이 있었다. 이 결과 나온 스마트폰은 기술적인 스펙에 관한 한 아이폰 못지 않았고, 오히려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외면했다. 왜냐?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들에게 먼저 숙제를 주었던 반면, 모토로라는 엔지니어들을 다그쳤기 때문이라는 것. 잡스는 UX를 먼저 고민하고, 엔지니어들이 거기에 맞춰서 제품을 만들도록 했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어떻게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것.

그런데 기자가 보기에는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바로 누가 제품을 판매하냐는 것.

아이폰의 세일즈맨은 모바일 기기를 파는 가게 점원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였고, 팀 쿡이었다. 사람들은 청바지와 검정 터틀넥을 입은 잡스와 쿡에게 아이폰을 샀지, 점원들에게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타 CEO가 스마트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스마트폰을 들고 당신들이 왜 사야 하는지 설득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문화현상이었다.

스마트폰이든, 다른 그 무엇이든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디바이스만 팔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디바이스가 만들어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팔아야 한다. 그 디바이스 특유의 카리스마를 만들고 그 카리스마를 팔아야 하며, 아우라를 만들고 그 아우라를 팔아야 한다.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를 팔아야 한다. 그러려면 CEO가 베스트셀러가 돼야 하고, 그 CEO가 직접 팔아야 한다. 그래야 잘 만든 제품을 넘어 사랑 받는 제품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갤럭시S3와 다음 달 나올 갤럭시 노트2가 어떻게 보면 아이폰보다 더 잘 만든 제품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아이폰5의 디스플레이가 커진 것도 어떻게 보면 갤럭시를 따라 한 것 아닌가. 이젠 더 사랑 받는 제품으로 변신할 차례이다. 그리고 가게 점원이 아니라 갤럭시를 대표하는 누군가의 스마트한 카리스마로 세일즈를 시도해볼 차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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