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좋으면 낙찰"…자격미달 '좀비건설사' 여전

머니투데이 이군호 기자 2012.09.1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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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한국건설의 미래를 묻는다<7-1>]부실건설사 걸러낼 입찰·보증제도 강화해야

"운좋으면 낙찰"…자격미달 '좀비건설사' 여전



[글싣는 순서]
⑴해외시장으로 등떠밀리는 건설사들
⑵해외시장 '정부·新동력' 있어야 롱런
⑶국내시장 '건설투자 축소'에 직격탄
⑷경제성장 못 따라가는 'SOC인프라'
⑸'레드오션' 공공시장에 몰락한 건설사
⑹'천덕꾸러기 된 주택사업 새 기회 없나
⑺건설산업 살리는 '구조조정'이 답이다
⑻'부실 늪' 부동산PF 대안을 찾아라


"운좋으면 낙찰"…자격미달 '좀비건설사' 여전
 #지방 소형건설업체 A사는 건설업 등록을 하면서 사채를 빌려 통장에 돈을 예치해 서류를 제출, 등록을 마쳤다. 사채로 빌린 돈은 이자를 내고 갚았지만 이후 대한건설협회가 실시한 등록기준 미달혐의업체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자본금 미달로 적발돼 등록이 취소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건설업계의 부채비율, 영업이익률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적정 건설사수를 6000개 내외로 추정했다. 이는 5월 말 현재 종합건설사 1만1545개의 절반이다.

 국내 건설투자가 감소세에 접어든 반면 건설사수는 예전 수준을 유지하면서 건설산업 구조조정 논란이 한창이다. 국내 공공공사 건설수주액은 2009년 58조원에서 2010년 38조원, 2011년 36조원으로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2009년 1만2321개던 종합건설사수는 2010년 1만1956개로, 2011년은 1만1545개로 소폭 감소했다.

 적정 업체수를 6000개로 분석한 건설산업연구원은 건설사가 과잉 양산된 이유로 1999년 건설업 면허제가 등록제로 바뀌고 2000년 10억원 미만 공사입찰의 시공경험평가 배제와 공제조합 가입 임의화가 단행되는 등 진입규제가 한꺼번에 풀린 점을 꼽았다.

 최민수 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은 "현재 전체 건설사의 30%가 무실적업체고 기술자 등록요건을 간신히 채운 종합건설사가 70%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채규 국토해양부 건설경제과장은 "현재 국내 건설시장의 경우 공공공사 물량은 줄어든 데 비해 업체수는 감소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수주경쟁이 치열해져 낙찰률이 하락하고 업체 부실화가 지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가 매년 등록기준 미달 건설사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수천개의 건설사를 적발, 영업정지 또는 등록취소 등의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음에도 업체수 감소는 소폭에 그치는 아이러니가 계속되고 있다.

 실제 국토부는 △2008년 2759개 △2009년 1947개 △2010년 1645개 △2011년 1291개의 부적격 종합건설사를 적발했다.

 문제는 퇴출 건설사들이 제도적 허점을 악용, 다시 등록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공공공사 급감에도 퇴출 건설사들이 등록기준을 보완하고 대표자와 상호를 바꿔 공공공사시장에 재진입하는 이유는 뭘까.

 현 입찰제도상 시장 진출입이 마구 이뤄지는 소규모 건설사들이 참여하는 공공공사는 운만 좋으면 공사를 딸 수 있는 '운찰제'(運札制)로 발주되는 적격심사(발주처가 제시한 공사 예정가격과 비슷한 금액을 써낸 업체가 낙찰을 받는 입찰) 공사여서다.

 즉 등록기준만 맞춘 뒤 적격심사방식의 공공공사 입찰 수십건에 참여해 1~2건만 수주해도 해당 공사를 하도급업체에 넘기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적격심사방식의 입찰은 300~4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결국 사무실과 인력 등의 등록기준만 맞추면 1년에 수억원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이 있는 한 건설산업 구조조정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와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발주·보증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부실 건설사들이 발을 붙일 수 없게 공사 발주를 까다롭게 하고 일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건설사는 공사관련 보증을 받지 못하도록 해 공사를 진행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공사를 수주한 건설사는 부도 등의 사유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보증기관에 보증을 들도록 돼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비정상업체를 구분할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변별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입찰제도를 개선하고 보증시장을 강화해야 한다"며 "발주자가 역량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과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GS건설경제연구소장은 "효율적인 입찰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발주자가 부실 건설사를 거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입찰 참가업체수가 10개 내외인 외국은 발주자가 기술역량, 노하우,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부실 건설사를 걸러낼 수 있지만 우리는 아직 정상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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