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 모였다 하면 '안철수 뒷담화' 들어보니…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2012.08.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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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왜 안철수를 검증하는가

2명 모였다 하면 '안철수 뒷담화' 들어보니…


5~6년 전 어느 날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탈 사무실로 그가 찾아왔다. 벤처캐피탈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그에게 책상 하나가 주어졌다. 그는 수개월 동안 이곳으로 출근했고 말없이 파트너들의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때마다 그는 작은 글씨로 빼곡히 필기를 했다. 매번 그가 메모한 양은 노트 5-6장 정도는 족히 됐다. 회의가 끝나면 어김없이 파트너 가운데 한 명을 찾아가서는 꼼꼼하게 질문했다. 회의 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의사결정을 했는지.



마치 수습사원처럼 보이는 그는 바로 당시에 이미 크게 성공한 벤처기업의 오너였던 안철수였다.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의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MBA 과정을 다녔고, 이때 실리콘밸리를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도 두어 사람 이상 모였다 하면 안 원장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이다. 실리콘밸리를 거쳤던 사람이고, 같은 IT계의 인물이니 출마여부부터 시작해서 혹시 당선될 경우 그 이후의 전망까지에 대해서도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뒷담화가 조금은 다른 것은 안 원장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금방 끝나고 그대신 다음 시대에 대한 전망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당시 안 원장으로부터 귀찮을 만큼 많은 질문을 받았던 벤처캐피탈의 파트너는 최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배울 줄 아는 사람 같았어요. 옳다고 판단되면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래서 (대통령이 되면) 잘할 것 같아요. 왜 한국은 편가르기가 너무 심하잖아요. 남의 이야기는 옮든 그르든 죽어라 안 듣고, 비판합니다. 한국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이죠.”

구글에서 일하는 한 인사는 “지금이야말로 (안 원장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은 중국에 따라 잡힙니다. 그러니 소프트한 산업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실리콘밸리의 IT문화로 다시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을 보세요. 그런데 소프트산업의 전제는 유연한 문화입니다. 기술이 산업을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 사회문화가 산업을 만듭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늘 보고 들어왔던 정치권의 논리로는 불가능하죠. 전혀 다른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맞기는 한 것 같다. 아무래도 같은 IT쪽 인물이다 보니 지지하는 쪽이 훨씬 더 많지만, (대통령 후보로서) 안 원장에 대해 부정적인 쪽도 있기는 하다. 실리콘밸리에서 3개 기업을 창업했던 한 인사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IT기업을 이끈 리더십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만큼 전문가 마음대로 다루기 쉬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IT 출신들이 정작 리더가 된 후 사람들을 이끌 때는 쉽게 좌절하는 경우가 많죠. IT회사에서 자주 보여지는 자율적인 리더십은 감동과 존경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 갈림길에 서 있는 한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한국이 상호증오의 시대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혹은 성장이나 복지, 정의의 패러다임만으로는 더 이상 안되기 때문에 안 원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어떤 이들은 지금 한국에는 존경과 감동이 아니라 결단과 실행의 리더십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이들은 한국의 시대적 문제를 먼저 규명하고 적절한 인물을 판단하고자 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안철수 검증론’이 뜨겁다. 과거 행적에 대해 교통위반까지 검증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과연, 이런 순서가 옳은 것인가? 개인의 흠과 결, 과와 오를 끄집어낼 수 있을 데까지 끄집어내서 대통령 후보로 적합한지 판단해보자는 검증론이 과연 맞는 것인가? 인물을 사사건건 검증하기 이전에 세상을 검증하는 것, 시대를 검증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말이다.

기술제일주의 일본이 한 순간에 고꾸라졌다. 초라한 강대국이 되었던 미국이 세계 커뮤니케이션 판도를 바꾸어놓고 있다. 정말 한 순간이다. 누가 예전에 어떠했니 하기 전에 지금 우리가 놓인 상황을 먼저 검증하고 그 다음, 딱 맞는 사람을 꽂아야 한다. 이것은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누구든 마찬가지이다.

인물의 과거사를 들추어보고 뽑는 것이 아니라, 다음시대를 읽고 그 시대에 맞는 사람을 갖다 꽂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한 순간에 고꾸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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