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아는 자가 돈 번다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12.08.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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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날씨도 돈이 된다/ 날씨경영에 주목하는 이유

지난 2005년 여름, 미국 역대 최대의 재앙이라 불리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덮쳤다. 뉴올리언스를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든 이 재해로 인한 피해 복구비용만 무려 1500억달러나 됐다. 그 피해액까지 합하면 200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안겼던 9·11 테러의 15배에 달했다.

그러나 카트리나의 재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가가 상승하고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면서 주가와 달러가치도 하락했다. 금융시장까지 흔들리자 당시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문턱이 닳도록 기상청에 드나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허리케인과 같은 날씨정보가 투자에 있어서도 중요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이는 태풍이나 폭염과 같은 날씨정보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우리나라 역시 직간접적으로 날씨에 영향을 받는 산업의 비율이 국내총생산의 52%이고 기상정보의 활용가치는 연 3조5000억~6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의 연구 결과다. 그야말로 날씨가 곧 돈이 되는 시대다.


사진_뉴스1 송기평 기자 



◆"하늘에서 돈이 내려옵니다."

"기상에 대한 투자는 투자액의 10배 이상의 효과를 가져온다." 지난 1987년 세계기상기구(WMO)에서 발표한 요약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다. 이미 전세계는 오래 전부터 날씨가 미치는 경제효과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비교해 국내에서 날씨경영이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2009년 기상산업진흥법과 함께 날씨컨설팅 분야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래, 올해 폭염 등의 날씨재해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면서 '날씨경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한 분야인 만큼 '날씨경영'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한 것이 사실. 날씨경영이란 단순히 날씨에 영향을 받는 것을 넘어서서 기업이 날씨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날씨로 인한 피해나 손실을 줄이는 것은 물론 기회를 극대화해 매출을 늘리는 것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김종국 케이웨더 기상산업팀장은 "기존에는 '비오면 20% 할인'처럼 단순히 날씨를 활용한 이벤트가 많았기 때문에 날씨마케팅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였다"며 "최근에는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날씨를 고려해 경영전략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날이 더워지면 에어컨 판매가 늘어나는 거야 당연한 일. 그러나 이 같은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날씨정보를 적극 활용하는 게 날씨경영이다. 즉 무더위가 예년에 비해 10일 정도 빨라진다는 예측이 나오면 전자업계는 에어컨 제품의 출하 시기와 생산량을 조정할 수 있다. 비가 오면 백화점 매출이 10% 줄어든다는 기상정보 분석을 참고해 유통업체의 경우 비가 올 확률이 높은 날짜에 맞춰 고객유입을 위한 이벤트를 확대하거나 재고를 줄여 손실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사진_뉴스1 양동욱 기자

◆"돈 되는 날씨 정보" 기업들도 주목

이에 따라 기업체들도 날씨정보 활용에 적극적이다. 단순히 기상청 등에서 제공하는 기상정보를 참조하는 수준을 넘어 최근에는 기상으로 인한 매출 변화 등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판매나 생산 전략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제일모직은 지난 2010년부터 1년간 '기후대책 TF팀'을 운영, 5년간의 주요 아이템별 일일 매출과 기온, 강우량 등 날씨와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상품기획에 착수한 결과 그해 겨울외투만 65%나 매출이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기상청이 주관하는 '기상정보대상'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탄 '봉달이 김밥'도 날씨경영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비오는 날엔 기름진 음식을 찾는 손님이 많다는 점에 주목, '족발김밥' 메뉴를 개발해 매출을 올렸다. 또 봄철 꽃샘추위 때는 나들이 취소율이 높다는 것을 감안해 재고 손실을 줄였다. 그 결과 월 매출 1500만원을 달성했다.

이처럼 날씨정보를 기업경영에 적극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날씨'를 파는 기상산업의 시장규모도 커지고 있다. 기존에는 항공, 조선업 등에서 주로 해외 기상업체의 전문정보를 활용해왔으나 최근에는 국내 기상전문업체를 통해 구체적인 날씨정보뿐 아니라 날씨컨설팅을 의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전문적인 기상분석 정보의 수요가 늘어난 만큼 이에 대한 기업의 투자액 역시 30%가량 증가했다고 기상전문업체는 분석했다.

날씨경영을 적용하는 산업분야 역시 점차 다양화되는 추세다. 김종국 팀장은 "최근에는 유통분야에서 날씨경영에 많이 나서고 있고 농축산분야에서도 폭염 피해 등이 늘어나면서 날씨연구에 굉장히 적극적이다"며 "최근 몇년간 날씨 변동이 잦은 만큼 직간접적으로 날씨정보를 활용하는 분야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Interview/ 안정준 기상산업진흥원 부원장
"날씨는 공짜, 인식 바뀌어야"

"지난해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겨 손실액이 컸잖아요. 그런데 강남역 지하상가는 침수피해를 겪지 않았습니다. 지하철공사에서 미리 기상정보를 확보해 차수판 등으로 대비한 덕이었습니다. 실제로 경제적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죠."

안정준 한국기상산업진흥원 부원장은 최근 사례를 통해 날씨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상재해로 인한 손실액이 1년에 1조7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2005년 설립된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은 기상청 산하기관으로 사회 각 분야에 기상산업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기상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날씨활용에 우수한 기업을 대상으로 '날씨경영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안 부원장은 "날씨경영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라며 "고무적인 것은 기업들도 날씨경영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폭염 때문에 식품 보관 등의 분야에서 피해가 컸습니다. 우리 역시 최근 식품안정정보원과 MOU를 체결하고 날씨에 따른 식품 보관 등의 연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모델을 개발한다면 국내 식품업계의 경제적 이익이 상당히 클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행히 기업들도 이 같은 모델 개발에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안 부원장은 '날씨는 공짜'라는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상청에서 제공한 날씨정보를 경영에 활용하려면 기업들은 각 산업적 특성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해석해 고급정보로 바꾸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기상정보를 공짜로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보니 기업들이 기상정보를 활용하는 단계가 소극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

"우리나라의 기상관측기술은 세계 7위로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어요. 산업분야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이 같은 관측 데이터를 필요에 따라 정확하게 해석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고급 기상정보를 수출해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고요. 정부에서 기상정보 연구에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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