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3~5년이 한국청년들에겐 절호의 기회"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2.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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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실리콘밸리 ‘알토스벤처스’ 김한준 대표 인터뷰

모두들 길이 없다, 답이 없다, 취업도 어렵다, 창업도 어렵다, 그래서 막막하다고 말하는 이때, 오히려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돈 될만한 기업에 돈을 투자해서 성공하면 더 큰 돈을 버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미국명 한 킴) 대표.

김한준 대표는 한국이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빨리 돈 벌겠다'가 아니라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자세로 사업을 시작한다면 앞으로 3~5년은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한준 대표는 한국이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빨리 돈 벌겠다'가 아니라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자세로 사업을 시작한다면 앞으로 3~5년은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초등학교때 이민 와서 웨스트포인트(미육군사관학교)와 스탠포드대 MBA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부즈앨런&해밀턴에서 일하다 1996년 알토스벤처스를 설립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탈은 갑(甲)중의 갑. 투자해달라는 데가 널려있기 때문에 굳이 한국의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초기기업)에 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계라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알토스벤처스는 운용자금 1억6000만달러(약 1,800억원)가운데 15%를 한국에 투자하고 있다. 쿠팡, 판도라TV, 블루홀스튜디오, 네이블커뮤니케이션, 스피쿠스, 블로그칵테일, 이음, 배달의민족 등에 각 15~25%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가 굳이 한국까지 가서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애국심 때문은 아닐 터. 그는 한국벤처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눈 여겨 봐왔다.



지난 달 27일 인터뷰하는 내내 그가 강조한 것은 “좋은 회사부터 만들라” “빨리 돈 벌려는 기업치고 성공한 곳 거의 없다”는 것. 투자사업을 하는 사람의 말치고는 역설적이다. 빨리 돈 벌 생각하지 말고, 좋은 회사를 만들라니. 참으로 말은 근사한데 현실도 그럴까?

그런데, 그의 열변을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검증해 보였다. 그 또한 빨리 돈 벌려고, 빨리 돈 벌어줄 것 같은 회사만 골라 투자 하지 않았기에, 지난 16년간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한국계 벤처캐피탈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앞으로 3~5년이 절호의 기회
김 대표는 “앞으로 3~5년은 한국의 청년들이 회사를 만들어 도전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한국시장이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사실은 굉장히 크지요. 한국과 미국의 톱10 도시의 인구 합계를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한국이 훨씬 많아요. 톱30 도시를 비교해봐도 미국이 겨우 100만명 많을 뿐이죠. 더욱이 인구밀집도를 보면 한국이 훨씬 높아요. 미국시장은 크고 한국시장은 작다고 생각하는 건 틀린 겁니다. 다만 훌륭한 회사가 나와서 한국시장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지 못했을 뿐이죠.”

김 대표는 한국의 온라인마켓에서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가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 역시 역설적으로 한국시장에서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에서는 요구수준도 높고 반응도 빠르지만, 온라인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서비스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한국회사들 입장에서는 과학적 마케팅만 갖춘다면, 해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한국 스타트업과 벤처에만 투자하는 한국펀드를 별도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시장의 가능성을 비춰볼 때, 알토스가 운영하는 펀드에서 15% 정도만 한국에 투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김 대표는 이어 ‘처음부터 글로벌비즈니스를 해야 할지, 아니면 한국에서 성과를 낸 뒤 해외로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달의민족은 밀집도가 높은 한국이 더 큰 시장이고, (소셜데이팅서비스) 이음은 미국이 더 좋은 시장일 수 있지만, 한국에서 시작했으니 한국에서 성과를 쌓는 게 중요하죠. (이동통신 솔류션회사) 네이블은 해외진출을 위해 최근 코스닥에 상장을 했고, (테라를 개발한) 블루홀은 미국에서 크게 한번 베팅을 하고 있는 중이고요.” 세계시장 진출의 방식은 비즈니스 모델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탈이 밀집돼있는 멘로파크 샌드힐 로드의 알토스벤처스가 입주해있는 건물. 알토스는 전체 운용자금 1억6천만달러 가운데 15%를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조만간 한국펀드를 별도로 만들 계획이다.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탈이 밀집돼있는 멘로파크 샌드힐 로드의 알토스벤처스가 입주해있는 건물. 알토스는 전체 운용자금 1억6천만달러 가운데 15%를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조만간 한국펀드를 별도로 만들 계획이다.
한국벤처가 못하는 두 가지
김 대표는 정답은 말해줄 수 없지만, 틀린 답은 정확하게 짚어줄 수 있다고 했다. 한국벤처들이 미국기업에 비해 부족한 딱 두 가지를 말이다.

첫 번째, 마케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한국기업가들은 ‘좋은 물건만 만들면, 확 퍼질 것이다’고 생각하죠. 이건 잘못된 가정입니다. 한국회사들이 실리콘밸리에 와서 실패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겁니다. 좋은 제품,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은 끊임없는 마케팅 과정의 연속입니다. 어디에 돈을 얼마나 썼는데,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새로운 실험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년 3월에 투자한 쿠팡의 사례를 들었다. “김범석 대표를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 ‘지금은 넘버2이지만, 몇 년만 지나면 훌륭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죠. 질문자체가 달랐어요. ‘매출을 빨리 올리려면 이런 방법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회사를 만드는 데 부작용이 클 것 같다’는 식이었죠. 그래서 쿠팡에 투자를 했고, 함께 경영을 논의하고 있죠.”

김 대표는 쿠팡은 매일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전 임원들이 모여서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했다. 전날 소비자들에게 제시한 메시지와 그 효과를 평가하고 지속적으로 실험한다는 것. “한국기업들이 이런 것(과학적 마케팅) 모르면 해외로 갈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돈 벌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은 회사를 만들 것인지 계속해서 물어야 합니다.”

둘째, 한국 기업가들은 제품출시 때까지 너무 잰다고 그는 지적했다. “제품을 기획해서 내놓기까지 시간을 너무 많이 들입니다. 이 디자인이 좋은지, 저 디자인이 좋은지 내부 논쟁도 많습니다. 실패할까 두려운 거죠. 그래서 기획한 것, 또 보고 또 보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세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사업에서는 치명적입니다. 기획단계에서 논쟁할 시간 있으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시장에서 실험하고 테스트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완벽한 것을 내놓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실험해서 바꿀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마인드셋을 바꿔야 합니다.”

될 회사와 안될 회사를 평가하는 3가지 기준
김 대표가 투자한 한국회사들 면면을 보면, 대부분 마치 족집게처럼 잘 나가고 있다. 투자를 결정할 때 그는 기업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평가할까?

우선, 사용자수나 매출 등 눈에 보이는 초기성과를 의미하는 ‘트랙션’. 가입자수가 가속적으로 늘고 있는지, 일정하게 늘고 있는지, 아니면 모멘텀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인터랙션(가입자와의 상호작용)도 중요한데, 가입자가 늘고 있어도 사이트에 체류하는 시간이 일정하거나 줄고 있다면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은 가입자수도 늘고 있는데, 인터랙션도 늘어났죠. 이걸 보면서 파워플한 서비스가 되겠구나 생각을 하는 거죠.”

하지만 김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창업자 등 회사를 만들어갈 팀이다. “창업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리얼리티(현실)을 리얼리티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창업자는 원래 꿈도 많고 비전도 큽니다. 그래서 현실보다 더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자기확신을 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크게 한번 성공해봤던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성공할 거라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 성공확률은 내려가면 내려가지, 올라가진 않죠. 내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정하고, 고칠 줄 아는 성품이 가장 중요합니다.”

김 대표가 한국출장을 갈 때마다 투자한 회사 대표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강조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만날 때마다 이야기합니다. 한국은 팩트에 충실하기 보다, 어떤 가정을 설정해놓고 ‘이렇게 될 거다’ 믿어버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이죠. 창업자들과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 것도 그런 가정들을 없애기 위한 것이죠.”

김 대표는 자신도 처음에는 실수가 많았다고 했다. ‘빨리 돈 벌 수 있겠다’ ‘빨리 팔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덤비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투자한 회사에 문제가 생겨도 대충 눈감아 버리게 됐다는 것. 물론 돈도 못 벌었다.

그래서 ‘가정(假定)’을 싫어하는 그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가정은 바로 이것. “나는 원래 운이 안 좋아. 투자회사가 평균이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건 어려워.”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가 비결이었다는 성공스토리에 익숙해온 우리에겐 낯선 가정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가정 때문에 더 열심히 전략을 짜고, 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하여튼 앞으로 3년에서 5년이 절호의 기회라고 한다. 더 이상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댈 시간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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