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후보들의 슬로건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은 지난 23일 방송토론회에서 손 고문에게 "제가 대선후보가 되면 손 고문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을 빌려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듣기에 따라 도발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손 고문의 슬로건이 탐난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손 고문은 "제가 대선후보가 될 텐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각 주자들은 당내 경선과 대선 본선을 앞두고 히트 슬로건 제조에 사활을 거는 한편 여론의 반응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후보 측은 "박 전 대표의 독주로 당내 민주주의가 퇴색해 '민주 대 반민주'를 부각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 후보의 독주가 굳어진 새누리당에서 슬로건 경쟁의 열기는 다소 약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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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고문은 민주당 경선주자 8명 가운데 '빅4'로 꼽히면서도 2, 3위를 다투는 손학규 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에 비해 열세로 평가된다. 눈에 띄는 새로운 슬로건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모색한다는 각오다.
손학규 고문은 여유가 넘친다. 손 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은 등장하자마자 인기를 얻으며 직장인들의 건배사로 쓰일 만큼 확산됐다. '저녁'은 시간적 의미뿐 아니라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상이란 의미도 함께 지닌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이 이런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약속이다.
문재인 고문은 '사람이 먼저다', 김두관 전 지사는 '평등국가'와 '내게 힘이 되는 나라'를 각각 내세웠지만 현재까지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문 고문은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를 겨냥, 대선 본선에서 꺼내려 했던 '대한민국 남자'는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했다.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라는 반응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에 적어도 슬로건 경쟁에서만큼은 손 고문이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슬로건 경쟁이 경선의 역동성을 키우는 또 다른 역할도 하는 셈이다.
정 소장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이 때문에 손 고문과 김 전 지사의 2·3위 싸움이 치열해지고 두 사람과 문 고문의 격차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캠프들이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PI는 원래 마케팅 용어이지만 최근 정치 분야에도 안착했다. '기업 정체성'을 CI(Corporate Identity)라고 하듯 최고경영자, 스포츠스타 등 리더의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일컫는다.
PI를 구현하기 위한 대표적 수단이 선거 슬로건과 이를 응용한 심볼 이미지다. 최근 기업들도 최고경영자의 PI가 전반적인 CI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PI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