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아이팟을 못 만든 이유는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2012.06.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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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장인정신을 버려야 기업의 미래가 있다

소니가 아이팟을 못 만든 이유는


사진으로 엄청난 돈을 번 두 기업이 있다. 하나는 코닥이고, 또 하나는 인스타그램이다. 카메라로 찍어 인화하고 현상해서 보냐(코닥),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찍어 스마트폰으로 돌려보냐(인스타그램)의 차이는 있지만, 어차피 사진이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은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에 페이스북에 팔렸고, 코닥은 131년 된 장구한 역사를 뒤로 하고 올해 초 파산신청을 했다.



세상에는 또 음악으로 엄청난 돈을 번 두 기업이 있다. 하나는 소니이고, 또 하나는 애플이다. 워크맨으로 그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소니나, 아이팟으로 일어선 애플이나 어차피 출발은 음악이다. 그런데 소니는 옛 명성을 거의 잃어버렸고, 애플은 세계 최고 기업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똑 같은 게임이지만 닌텐도는 몇 년 사이 회사가치가 3분의 1 토막이 됐고, 징가는 그 똑 같은 몇 년 사이 세계 최고 게임업체가 되었다.



코닥과 소니, 닌텐도는 왜 이렇게 됐을까? 기술의 변화를 못 좇아가서? 이건 아닌 것 같다.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다름아닌 코닥의 엔지니어였다. 그것도 37년 전 1975년에 말이다. 꿈의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OLED(유기발광디이오드) TV를 최초로 출시한 곳도 바로 소니이다. 5년 전 2007년에 말이다.

기술적 히스토리만 본다면 코닥이 인스타그램을 만들고, 소니가 아이팟을 만들고, 또한 소니와 닌텐도가 징가를 만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왜 만들지 못했을까?

혹시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돼버린 폴라로이드(즉석카메라)를 기억하시는지. 그 폴라로이드의 CEO였던 개리 디카밀로는 수년 전 예일대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팬밸트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팬밸트를 바꾸기 위해 감히 엔진을 멈출 생각을 못했다. 당시만해도 즉석필름이라는 엔진은 우리에게 가장 많은 돈을 벌어 주었으니까."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돼버린 폴라로이드(즉석 카메라).  <br>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돼버린 폴라로이드(즉석 카메라).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따온 인스타그램의 로고. 폴라로이드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인스타그램은 최근 1조원이 넘는 가격에 매각됐다. <br>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따온 인스타그램의 로고. 폴라로이드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인스타그램은 최근 1조원이 넘는 가격에 매각됐다.
코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업성이 불확실한 디지털카메라를 위해 캐시 카우(cash cow)였던 필름인화시장이라는 엔진을 멈출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설령 코닥이 인스타그램을 만들고, 소니가 아이팟을 만들았다고 해도 그것이 잘 됐을까? 이 대답 역시 부정적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코닥과 인스타그램, 소니와 아이팟은 너무나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코닥의 정체성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진, 더 좋은 카메라를 만들 것이냐'이면,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하면 사진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스토리를 나눌 수 있도록 할 것이냐'이다. 소니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음질을 만들 것이냐'이면, 아이팟은 '어떻게 하면 음악을 라이프스타일로 만들 것이냐'이다.

인스타그램은 비록 사진이지만 그 안에는 스토리가 흘러 넘치고, 아이팟은 비록 음악이지만 사람들의 삶과 밀착한 문화 현상이다. 뛰어난 기술만으로는 창조해낼 수 없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생리 자체가 다르다. 정크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유기농마트로 잘 알려진 홀푸드로 쉽게 변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변신이 이제는 불가피해진 세상이라는 것. 필요하다면 맥도날드가 홀푸드를 만들고, '빅맥' 엔진을 갈아치울 수도 있어야 하는 세상이다. 방법은 두 가지이다. 애플식으로 하든지, 아니면 구글식으로 하든지.

최근 <인사이드 애플>을 출간한 포춘의 편집자 애덤 라신스키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대기업병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관료화되고 혁신의 싹이 죽는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회사 전체가 스타트업(초기기업)처럼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인위적으로 스타트업 환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애플도 필요할 때는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고 곧바로 실행하는 환경을 만들었던 것이다. 스스로 내부의 스타트업을 만들어왔다.

반면 스타트업 문화가 여전히 압도적인 구글은 필요할 때면 외부의 스타트업을 수도 없이 사들였다. 실리콘밸리에는 구글에 매각하기 위해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들이 널려있다.

팬밸트를 교체하기 위해 감히 엔진을 멈출 용기가 없다면, 최소한 일부는 네비게이션이 가르쳐주지 않는 길을 의도적으로 가보든지, 아니면 외부의 새로운 엔진을 끊임없이 사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많은 기업들은 둘 다 실패했다. 국물 맛은 누구한테도 가르쳐줄 수 없다는 외골수 우동집 장인정신이 아직 대세이다.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에서 도전하는 창업가들의 수는 인도나 중국의 반의 반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우리가 또한 알아야 할 것은 실리콘밸리 한국인 창업가는 그런 일본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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