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실리콘밸리의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도 바로 구글의 구내식당이다. 구글 직원들도 외부손님들이 올 때면 “점심식사나 하면서 말씀 나누시죠”라며 뿌듯해한다.
인종과 국적의 다양함은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만 그런 게 아니라, 실리콘밸리 전체가 그렇다. 여기가 과연 미국인가 싶을 정도이다.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는 전체 인구의 63%가 아시아인이다. 1980년만 해도 백인이 91%였지만, 지금은 중국인, 인도인 천지다. 또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도시인 산호세는 3명중 1명이 아시아인. 94만5,942명(2010년 기준) 가운데 30만3,138명이 아시아계이다.
이렇게 보면 실리콘밸리의 아시아인들이 “인종차별을 거의 못 느낀다”고 말하는 이유가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릴 만큼, 역시 외국인 비율이 높은 뉴욕보다 실리콘밸리의 인종차별이 덜하다고 이야기되는 것을 보면 꼭 사람 숫자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IT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본질적으로 실용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는 IT의 속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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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는 어떻게 생긴 사람이냐 보다 어떤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냐를 더 중시한다. 그래서 아시아계 사장 밑에 수많은 백인들이 일해도 전혀 어색할 게 없다. 10년 전 미국에 와서 소셜쇼핑정보사이트를 창업한 김강록(36)씨도, 5년 전 미국에 와서 소셜게임업체를 운영하는 박지은(39)씨도 현지에서 나고 자란 백인들을 직원으로 두며 사업을 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어느 나라 출신이냐보다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한 사람이냐를 더 따진다.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묻는 ‘Where are you from?’을 자주 듣기도 힘들고, 설령 물어도 의도는 ‘어디에서 살다 이사 왔냐’는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그래서 IT 세상에서는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상당부분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오라클 본사의 수석프로덕트매니저 조성문씨가 들려준 말이 정답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IT는 참 민주적인 것 같습니다.” 돈이 더 많다고 훨씬 더 비싼 스마트폰, 더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쓸 수는 없지 않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백인이 쓰는 스마트폰과 유색인종, 소수민족이 쓰는 스마트폰이 다를 리 없고,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피부색깔로 가입자를 차별하는 것도 아니다. 브로컨 잉글리쉬를 쓰는 소수민족이 고급영어를 쓰는 네이티브를 부하로 둬도 문제될 것이 없다. 마틴 루터 킹과 넬슨 만델라가 피 흘리며 이룩한 것과 똑 같은 것을 IT는 웃으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한번 바꿔보자. 여기는 한국의 대기업 회의실. 인도인이나 방글라데시인 팀장이 한국인 차장, 과장, 대리, 사원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다. 과연 그림이 그려지는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이 자연스러워질 때 대한민국 IT도 더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