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월세 170만원 부담에 "보증금 좀…"

머니투데이 최윤아 기자 2012.05.29 06:01
글자크기

저금리·경기침체 집주인 월세선호… 협상 여지 없어 '울며 겨자먹기' 계약

"월세 170만원은 너무 부담스러운데…. 혹시 보증금을 조금 올리고 월세를 낮춘다거나 전세로 돌릴 수는 없나요?"

 "3000에 170(보증금 3000만원, 월세 170만원), 집주인이 그거 아니면 안된다는데 별 도리가 없네요. 이전에 왔던 손님들도 결국 다들 포기하고 돌아갔어요."

 지난 24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A부동산 중개업소. 신혼집을 구하러 온 김모씨(28)가 중개업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김씨가 선택한 아파트는 '래미안 공덕5차' 전용 59㎡.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70만원을 내야 입주할 수 있는 이 아파트는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낮추거나, 전세로 전환하는 등의 '협상'이 불가능하다.

매물이 부족한 전형적 공급자 우위 시장인 전세시장에서는 집주인이 원하는 방식을 따라야만 계약이 성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예전에는 전세나 월세 중 세입자가 임대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협상의 여지없이 집주인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며 "관리비까지 합하면 매달 20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내야 해 부담스럽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월세로 계약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혼집 월세 170만원 부담에 "보증금 좀…"


 저금리와 주택경기 침체로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이 증가하면서 김씨처럼 '울며 겨자먹기'로 월세계약을 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전·월세 거래량 통계'에 따르면 4월 아파트 월세 거래건수는 1만41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나 늘어났다.

아파트,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등을 모두 합한 전체 주택의 월세 거래량은 4만300건으로 지난해보다 2.5%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세 거래량(8만2700건) 증가율(1.3%)보다 2배가량 높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데다 경기침체로 마땅한 투자처마저 사라지자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통계에는 고시원·원룸텔 등 보증금 없는 월세는 포함되지 않아 실제 월세계약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전·월세 거래량 통계에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보호받기 위해 관할 관청에 신고하는 '확정일자'를 받는 가구만 거래량 지표에 잡힌다.

국토부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요즘은 500만원, 1000만원의 적은 월세 보증금을 납부했더라도 확정일자를 받는 추세지만 고시원이나 원룸텔 중 상당수는 거래량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월세 계약을 강요받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서민경제 악화는 필연적이라고 지적한다. 전세의 경우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지만 월세는 다달이 임대료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사실 전세는 월세보다 세입자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인데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나는 것은 세입자의 주거안정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의미"라며 "임대인의 월세 수입에 세금을 부과하고 임차인의 월세 지출에 대해선 소득공제를 확대하는 등 전세의 월세 전환을 저지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