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삼식이 안 되려면…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12.05.1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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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스트레스 떨쳐내기

'억' '억'하는 은퇴준비에 마음만 무거워지는가. 그렇다면 현실적 삶과 이상이 조화를 이룬 노후설계에 관심을 가져볼 때다. 머니투데이는 고령사회고용진흥원과 함께 '효과적인 퇴직준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모색해본다.

<제2의 인생 균형 잡기 프로젝트 ①> 퇴직 스트레스 떨쳐내기를 시작으로 창업, 귀농, 일자리 등 은퇴준비의 이슈들을 짚어보고, 올바른 준비 노하우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오주섭(가명) 씨는 중견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그는 퇴직 후 전국의 명산을 두루 돌아보며 좋아하는 사진도 찍고, 맛 집도 찾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고기가 아무리 좋아도 매 끼니 먹으면 질리는 법. 매번 같이 갈 친구들도 없고, 생각보다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꾸 아내 눈치를 보게 돼 요즘은 가능하면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 지내고 있다.



막막한 마음에 매일 피워대는 담배만 늘고, 밤에는 이 걱정 저 걱정에 잠도 제대로 안 온다. 그는 "사회에서도 집에서도 잉여인간이 된 것 같다"며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700만명이 넘는 50~60년대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준비 안 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퇴직자들은 수십년간 일로 맺어진 네트워크가 사라지면 상실감을 느끼기 쉽다. 퇴직증후군(Layoff Syndrome)이다. 퇴직 남편을 둔 가정에서도 심리적 갈등을 겪는 일이 흔하다. 일명 '삼식(三食)이 증후군'으로도 불리는 '퇴직남편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e)'이다. 남편들이 은퇴한 이후 집안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 가사와 가정 일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노년 여성들이 큰 스트레스를 겪기 때문이다.


장영수 불교상담개발원의 심리상담사는 "일을 그만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울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족 및 사회적 관계 등 달라진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욱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제2의 삶을 찾으려면



프랑스 저널리스트 출신의 올리비에는 은퇴 직전의 심정을 "점점 침몰하는 배에 앉아있는 듯 했다"고 표현했다. 그의 심적 독백은 온 열정을 다 바친 회사에서 '퇴직 통보'를 받은 은퇴세대의 상실감과 허무함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은퇴 후 62세에 도보로 실크로드를 횡단한다. 은퇴가 끝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풍요로운 시기임을 발견한 것이다.

은퇴준비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각의 전환'을 강조한다. 장영수 심리상담사는 "은퇴준비의 시작은 인생의 목표를 새롭게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 전에는 생업(生業) 차원에서 일을 해왔다면, 은퇴 후에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신나고 흥분되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건강하고 즐거운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여가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박세진 레크레이션 치료사는 "과거 미국역학회지에는 주당 약 35시간 이상 걷기와 잔디깎기·구기운동·영화감상 등 여가활동을 즐긴 사람은 주당 약 6시간 이하였던 사람보다 폐암 발생률이 49%포인트나 낮았다는 연구가 실렸다"고 소개했다. 여가로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활력을 찾으라는 것. 이때 여가활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청소든 음악감상이든 자발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은퇴 후 자존감을 높이는 데는 봉사활동이 효과적이다. 은퇴플랜 전문업체인 중앙이아이피의 박영재 팀장은 "막연히 은퇴 후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있어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거주하는 지역의 주민자치센터 사회복지사에 문의하면 봉사활동 기관과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보건복지부나 행정안전부 등의 봉사인증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봉사활동 기관이나 업무를 소개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공시설이용료 면제, 간병인 무상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마일리지도 쌓을 수 있다.



은퇴 후 '관계'의 바탕이 되는 가족관계 재정립에 대한 은퇴준비도 필수적이다. 황하룡 한국인성교육원장은 "은퇴 전 가장들은 돈 벌어다 주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가족관계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가족과 대화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려 은퇴 후 원활한 소통에 애를 먹는 일이 흔하다"고 지적했다. 은퇴 후 가족과 갈등을 겪지 않으려면 대화법부터 다시 익히라는 조언이다. 이를 위해 황 원장은 "아내의 입장, 자녀의 입장 등을 바꿔서 이해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며 "은퇴 3~5년 전부터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꾸준히 받아서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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