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꿈꾸던 시범뉴타운, 비상구를 찾아 헤매다"

머니투데이 이군호 기자 2012.05.1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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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후']서울 시범뉴타운 길음·은평

"비상꿈꾸던 시범뉴타운, 비상구를 찾아 헤매다"


 서울시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된 뉴타운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개발광풍이 휩쓸었던 뉴타운은 출구전략이 본격화될 경우 10여년의 세월을 허비한 채 옛 모습을 유지하게 된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2000년 초로 돌아가면 당시 뉴타운은 황금알을 낳는 대박사업이었다. 2002년부터 지정된 뉴타운은 지역주민들에게 '헌집 주면 새집 주는 사업'이라는 기대감을 줬고 투자자들은 '부동산 로또'를 잡을 기회로 받아들였다.



뉴타운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서울 국회의원이 여야를 합쳐 28명에 달할 정도로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집주인들과 투자자들의 기대심리를 교묘히 파고들어 뉴타운 개발을 부추겼다.

실제 이같은 기대감이 반영돼 은평·길음뉴타운 등 시범뉴타운은 2004년에서 20010년까지 최고 경쟁률이 38.95대1을 기록할 정도로 청약대박을 터뜨렸고 한동안 억대 이상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지만 시범뉴타운의 그늘은 컸다. 지역에 거주하던 소규모 토지소유주와 세입자 등은 개발 기대감에 소외돼 도시외곽으로 밀려났다. 원주민 재정착률은 재개발사업의 34%에 절반에도 못미치는 15% 내외를 기록중이다.

은평뉴타운의 3.3㎡당 분양가는 1523만원으로, 은평구 일대 아파트 평균 시세(3.3㎡당 770만원)보다 무려 배가량 높았다. 이는 결국 주변 집값을 도미노식으로 올리는 주범이었다.

 개발이 완료돼 입주가 끝난 시범뉴타운은 아직도 후유증이 진행중이다. 은평뉴타운은 중대형 아파트 640여가구가 몇 년째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고 두 곳의 뉴타운 모두 경기침체 속에 집값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개발사업이 끝나 입주가 완료된 길음뉴타운(사진 위)과 은평뉴타운(사진 아래) 전경.↑개발사업이 끝나 입주가 완료된 길음뉴타운(사진 위)과 은평뉴타운(사진 아래) 전경.
◇부동산투자 광풍의 주역 '뉴타운'
뉴타운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도시 내 노후된 생활권역을 묶어 도로·공원 등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주민들이 주택을 새로 짓는 '시가지 종합재개발'이다.

2002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임할 당시 기존 시가지 정비와 강남북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고안한 것으로, 2003년 '서울시 지역균형발전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시가 기반시설을 설치할 여력이 부족하자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2005년 12월 제정하며 법적기반을 마련했다.



 서울에서는 2002년 은평·길음·왕십리 등 3곳이 시범사업 뉴타운으로 선정된 이후 2003년 2차 12곳, 2005년 3차 11곳 등 26곳 331개 구역이 지정됐다. 뉴타운을 포함한 서울 도시재정비촉진지구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3배인 24㎢에 달한다.

이처럼 뉴타운이 급증한 원인은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본래 목적보다 일단 지정되면 '돈이 된다'고 기대한 지역주민과 돈을 벌 수 있다고 본 투자자, 이들의 심리를 이용해 뉴타운 공약을 앞다퉈 내건 정치권의 합작이다.

◇'청약광풍' 시범뉴타운
뉴타운 개발이 시작된 곳은 은평뉴타운(진관내·외동, 구파발 일대)과 길음뉴타운(길음동 624 일대)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시범뉴타운 2곳의 아파트 분양은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2004년 4월 청약이 진행된 길음뉴타운 6단지는 25.46대1, 2007년 8월 분양 당시 길음뉴타운 8·9단지는 각각 18.56대1, 12.8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은평뉴타운은 우물골위브가 38.95대1(2009년 7월)로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박석고개힐스테이트 26.61대1 △상림마을 25.07대1 △마고정 센트레빌 17.62대1 등이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분양 당시 높은 경쟁률을 반영하듯 한때 은평뉴타운은 프리미엄이 2억원 가까이 붙어 거래되는 등 평균 웃돈이 1억원 정도 붙어 매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뉴스가 지면을 장식했다.

금융위기 전까지 집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길음뉴타운의 경우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2006년 4분기에 16.06% 상승했고 은평뉴타운도 2009년 2분기에만 13.68% 오르기도 했다.



"비상꿈꾸던 시범뉴타운, 비상구를 찾아 헤매다"
◇광풍 속 원주민 내쫓기고 인근 집값 급등
토지소유주, 투자자, 서울시가 시범뉴타운 성공에 취해 있는 동안 소규모 토지소유주와 세입자 등은 광풍에 도시 외곽으로 밀리고 높은 분양가로 인근 집값까지 오르면서 무주택 서민들은 고통을 받았다. 소형·저가주택 멸실로 살고 있던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외지로 내쫓겼다.

 시범뉴타운의 고가 분양은 인근 집값을 올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고분양가로 인해 서민들은 분양받지 못하고 결국 터전을 잃고 내쫓겼다는 지적이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메뉴였다.

◇경기침체에 뉴타운도 무너졌다
은평·길음뉴타운이 분양 성공과 집값 상승이란 기대감이 일시적으로 충족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경기 침체 속에서 맥을 못추기는 마찬가지였다.



은평뉴타운은 전용면적 101㎡, 134㎡, 166㎡ 규모의 대형아파트 640여가구가 몇 년째 미계약분으로 남아 있다. SH공사는 일시납 분양대상 주택, 할부납 분양대상 주택, 분양조건부 전세대상 주택으로 구분해 판촉을 벌이지만 경기침체로 매수자는 거의 없는 상황.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투자·출연기관장회의에서 이종수 신임 SH공사 사장에게 "중대형 미분양 640가구가 몇 년째 방치돼 있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방안을 강구해 1년 이내엔 없애야 할 것"이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은평·길음뉴타운은 부동산경기 침체 속에서 2010년부터 집값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분기별로 1% 내외 하락세를 보였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5년 4월 입주를 시작한 길음뉴타운 2·3단지 전용면적 84㎡는 2008년 3분기에 4억9000만원까지 상승했다가 올 1분기에 4억2000만원까지 떨어졌다. 2009년 12월 입주한 은평뉴타운 마고정 센트레빌 전용면적 84㎡는 지난해까지 5억2500만원선을 유지하다가 지난달 5억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조민이 에이플러스 리얼티 팀장은 "은평과 길음뉴타운도 최근 시장상황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며 "실수요층이 넓은 중소형은 가격이 보합세를 보이고 중대형은 하락하는 상황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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