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韓商' 날개달고 세계로 간다

머니투데이 평창(강원)=유영호 기자 2012.04.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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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간 700만명·100兆 경제권 성장…"제도적 지원통해 新동력으로 활용해야"

적대적 관계의 아랍국가에 둘러싸인 유대국가 이스라엘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중동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또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불리는 중국의 초고속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재외 경제인에 있다. 이스라엘은 세계 각지에 뿌리를 내리고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여론을 선도하는 유대 상인들의 힘을 톡톡히 보고 있다. 중국 역시 전 세계 6000여만명에 달하는 화상(華商)들이 연간 70조원이 넘는 돈을 본토에 투자하며 국가발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경제 '韓商' 날개달고 세계로 간다


◇中 초고속 성장의 원동력 '화상'=중국 개혁·개방의 총 설계자인 덩샤오핑이 가장 공들인 부분은 화상을 초청해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는 "거주하는 나라에 뿌리를 굳건히 내리되 뿌리의 근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화상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냈고, 그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제 막 개방에 나서는 중국에게 화교자본은 가장 믿을 만한 해외자본이었고 대외진출의 동반자였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 중국에 투자된 해외 자본 중 80%는 화교자본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상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동자산만도 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무엇보다 화상의 강력함은 그 '네트워크'에 있다. 세계 각지의 화상들이 서로 협력, 흩어진 경제영토를 잇는 가교가 돼 '대중화경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1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유대상인과 2500만명의 인상(印商)도 각자 고국 성장의 가장 중요한 추진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700만 '한상'도 韓경제 지원=한국 경제 역시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전 세계 180여개국 700여만명에 달하는 한상(韓商)이 그 주인공이다. 유대상인, 화상과 비교하면 아직 미약한 수준이지만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노력만으로 재외동포재단 추산 100조원대의 경제권을 형성했다. 잠재력 측면에서는 오히려 그들은 뛰어넘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한상의 역사는 1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한 미국 증기선 게일릭호 3등석에 몸을 실은 56명의 남자와 21명의 여성, 25명의 어린이 등 모두 102명의 한인들이 한상의 출발점이다.

가난을 피해 조국을 떠난 102명으로 시작한 초라한 이민의 역사는 110년이 지난 지금 700만명의 재외동포로 성장했다. 사탕수수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던 이민자들의 지위도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끈기, 명석함을 바탕으로 '거상'으로 뛰어올랐다.

해외에서 성공했지만 우리 경제발전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져 잊혀졌던 존재인 그들의 진가를 드러낸 것은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국난이었다. 한상을 중심으로 한 재외동포들은 1997년 한 해 동안 1537만달러를 국내로 송금해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특히 한상들은 미국과 일본에 집중됐던 우리나라의 수출처를 다변화하는 '해외진출의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하며 경제발전의 초석이 됐다. '한국의 무역증진에 기여하고, 한국 상품 해외시장 진출에 공헌한다'를 공통의 가치로 삼고 한국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해 우리 중소기업의 우수성을 세계 각국에 알렸다.

재외동포 경제인들이 '한상'이란 거대 네트워크로 결집한 것은 지난 1981년이다. 통상부(현 지식경제부)와 코트라의 지원 아래 미국과 일본 동포들을 중심으로 '해외교포무역인연합회'가 탄생했다. 이 단체는 2001년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 세계 61개국 113개 지회에 6500여명의 회원과 1만여명의 차세대 회원을 둔 국내 최대 민간 경제조직이자 해외 최대의 한인 민간 경제단체다.

세계한인무역협회 통상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국내 기업과의  무역 증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세계한인무역협회 제공)세계한인무역협회 통상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국내 기업과의 무역 증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세계한인무역협회 제공)
◇경제성장에 '한상 네트워트' 적극 활용해야=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상은 미래가 불투명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된다. 한상 개개인이 모두 해외 바이어이자 국내 수출기업의 수출 도우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실제 월드옥타는 매년 국내 지방 중소기업들의 수출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한 '수출상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실제 지난 25~27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에서 열린 올해 수출상담회에서는 계약 상담실적 4200만 달러, 수출 계약 체결 410만 달러의 성과를 올렸다. 최근 5년간 누적 실적은 무려 15억 달러에 달한다.

인력양성 기능도 주목할 만하다. 월드옥타의 경우 '한민족 경제영토 확장'을 목표로 국내 청년 1만명을 대상으로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회원사로 나가는 인턴은 단순 사무보조가 아닌 실제 경영현장에서 실무를 보게 되며 원하는 경우 현지에서 정식 취업도 가능하다.

노영기 중앙대 경제학 교수는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요즘 한상들이 한국의 경제 영토로 모국 경제에 기여할 부문이 커지고 있다"며 "특히 '한민족 경제 네트워크'는 구축비용은 거의 제로인 반면 이 네트워크가 경제활동에서 창출하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중화권 경제협력을 촉진해 중국은 물론 전 세계 화교기업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한 화상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며 "한상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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