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궁리'에서 장영실을 맡은 배우 곽은태와 세종 역에 이원희(오른쪽). ⓒ국립극단
강원도 이천으로 온천 요양을 가던 세종의 '안여'(임금이 타던 수레)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세종은 수레와 함께 땅 바닥에 처박힌다. 연극 '궁리'는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군이여, 왜 내게 안여를 만들라고 하셨습니까?"
↑'궁리'의 다양한 예술적 볼거리는 행위예술, 또는 설치미술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국립극단
'궁리'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선택과 집중을 '인물'에 맞췄다. 민중의 힘을 모으고 그들과 소통했던 세종과 미래 지향적 지식인이었던 장영실의 내면을 파헤쳐 지금의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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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이 물시계를 발명하고는 "세상에 이런 신기하고 오묘한 것을... 주군이 주군이 만드셨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나 "제 속에는 제가 없습니다, 주군을 위한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등의 대사는 임금에 대한 그의 충성심 이면에 자신을 낮춰야했던,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당대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장영실의 해시계를 연상케 하는 U자형의 무대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적 의문이 반복되는 듯하다. 21세기 다문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과 앞선 지식인 장영실의 고뇌가 한 데 뒤섞이고, 때론 객석과 무대의 경계도 흐트러지며 극은 더욱 살아 움직인다.
↑'궁리'는 지고지순한 천재과학자의 고뇌와 열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국립극단
역사적 고찰과 함께 다소 장엄한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섬세한 동작과 아기자기함을 살린 점, 그리고 '인간상'에 대한 철저한 탐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극이 펼쳐지는 내내 천민과 왕이라는 구분과 경계보다는 과거의 인물이지만 현대를 넘어 미래까지 유효한 시대의 인간상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연기를 위한 충분한 도구가 되어 준 무대와 함께 현대와 조선을 잇는 의상, 웅장함과 섬세함이 살아있는 음악, 물질성에 인간미를 더한 감각적인 안무는 26명의 배우들과 어우러져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5월13일까지 공연한 후, 안산문화예술의전당(18~20일)과 고양아람누리(24~27일/31일~6월3일)에서도 이어진다. 1만~3만원. (02)3279-2233
↑옥중에서 장영실이 자신이 만든 해시계, 편경, 활자, 천문도, 물시계를 상상 속에서 재현하는 장면 ⓒ국립극단
△출연: 이종구 곽은태 박영숙 조정근 김수보 전형재 강학수 김미영 오동식 장재호 최승집 문호진 심완준 정준환 신유진 한강우 이원희 한상민 김성효 박우식 유승락 이희성 이정현 박혜선 안연주 주재희 이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