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사상 최초 1조€ 수출 비결은 '정치 리더십'

머니투데이 프랑크푸르트(독일)=정진우 기자 2012.04.0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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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극과 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⑤-1]정치가 독일 살렸다...'성공키워드는?'

↑ 3월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모습. 프랑크푸르트 전시관에서 열리는 음악전시회(Musikmesse)에 가려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정진우 기자↑ 3월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모습. 프랑크푸르트 전시관에서 열리는 음악전시회(Musikmesse)에 가려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정진우 기자


지난달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Hauptbahnhof). 벨기에를 비롯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인들도 눈에 띄었다. 21일부터 4일 동안 프랑크푸르트 전시관(Messe Frankfurt)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악기박람회인 '무직 메세(Musikmesse)'에 가기 위한 관광객들이다.

중앙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달리자 프랑크푸르트 전시관이 나왔다. 5만8522㎡(1만8000평) 규모로 코엑스 2배 크기의 전시관은 입구부터 박람회 참가자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전시관 관계자는 "올해 행사엔 전 세계 47개국에서 1650개 업체가 참여했다"며 "중국 120개, 이탈리아 118개, 영국 76개, 프랑스 65개 등 악기제조 관련 기업은 대다수가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 지난 3월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음악전시회(Musikmesse) 행사장 입구.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몰렸다.ⓒ프랑크푸르트 전시관↑ 지난 3월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음악전시회(Musikmesse) 행사장 입구.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몰렸다.ⓒ프랑크푸르트 전시관
4일 동안 열린 이 행사엔 총 7만8500명이 다녀갔다. 김연재 코트라 프랑크푸르트 지사 차장은 "전통적으로 세계 최대 음악시장인 유럽에 진출하려는 기타, 피아노 등 각종 악기 제조 기업에게 무직 메세는 반드시 참가해야 할 성지(聖地)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독일의 주요 대도시들은 무직 메세와 같은 박람회 개최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독일은 2010년 기준으로 전시산업에서만 250억 유로, 우리 돈으로 37조원을 벌어들였다.

↑ 음악전시회에서 전시된 기타 모습. 전 세계 47개국 1650개 업체가 참여했다.ⓒ프랑크푸르트 전시관 ↑ 음악전시회에서 전시된 기타 모습. 전 세계 47개국 1650개 업체가 참여했다.ⓒ프랑크푸르트 전시관
제조업과 더불어 독일 경제를 이끌고 있는 전시산업은 지난 10여 년 전부터 정부가 의지를 갖고 육성하면서 도약하기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 하노버, 쾰른, 뒤셀도르프 등에 세계 5대 전시관 중 4개를 만들고, 전 세계에 383개에 달하는 전시회 안내소를 설치했다. AMP(Auslaendisches Messeprogam, 전시회 지원 국가프로그램)를 통해 독일 기업들의 전시회 참가를 지원했고, 독일 전시산업 연방진흥회란 기관을 만들어 경쟁력 없는 전시회를 통합, 조정했다.



전시산업의 성공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국가적 먹거리, 신성장동력을 찾아내는 독일 정부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바라본 금융가 모습. 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들엔 세계 각 국 은행들이 들어서 있다.ⓒ정진우 기자↑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바라본 금융가 모습. 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들엔 세계 각 국 은행들이 들어서 있다.ⓒ정진우 기자
사실 지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성장률을 기록한 독일은 '유럽의 병자(病者)'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3%(GDP 2조5000억 유로)에 달했다. 유로존 평균 성장률이 1.4%임을 감안하면 두 배가 넘는다. 세계 경제의 5%를 점유하는 수준이다. 당시 20%에 가까웠던 실업률은 7.3%까지 떨어졌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수출은 지난해 사상 최초로 1조601억 유로(1조3852억 달러)를 기록했다. 10년 전 수출은 6513억 유로에 불과했다.

독일이 이처럼 '확' 바뀐 것은 효율적이고도 경쟁력을 갖춘 정부와 함께 정치권의 과감한 결단이 가미된 각종 개혁 때문이다. 특히 2002년 유로화가 공식 출범할 때 '강한' 마르크화를 버리고 '약한' 유로화를 택한 독일 정치권의 결단을 손에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당시 독일 정치권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유로화 가입을 선택했다. 이후 '약한' 유로화는 독일 경제의 중심인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해외 투자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등 전시산업을 부흥시켰다. 정치의 리더십이 산업을 키운 것이다.

강성기 독일외환은행 사장은 "독일이 유로화에 가입한 이후 역내 수출이 크게 증가하는 등 유로 약세 덕을 많이 봤다"며 "정치권이 당시 어려운 선택을 결정했기 때문에 EU국가 중에서 경쟁력이 가장 강한 나라가 됐다"고 분석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전경ⓒ정진우 기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전경ⓒ정진우 기자
지난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중대 결단도 독일 부활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좌파 성향의 슈뢰더 전 총리가 이끌던 사민당과 녹색당 연정은 재집권 직후인 2003년 3월 개혁 청사진인 '어젠 다 2010'을 발표했다.

각종 복지 혜택을 줄이고 해고 규정을 완화한 하르츠 법안을 핵심으로 한 '어젠다 2010'은 국민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았다. 하지만 슈뢰더 총리는 차기 총선 패배를 감수하고서라도 개혁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전임 헬무트 콜 총리가 동독 지역의 표심을 얻기 위해 복지지출을 대폭 늘리면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경제를 살리려면 개혁이 불가피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의회에서 '어젠다 2010'을 설명하면서 "미래에는 어느 누구도 사회의 희생 위에서 쉬도록 해서 안 된다"며 "합당한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며 개혁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슈뢰더 총리는 결국, 개혁에 대한 저항에 부딪혀 2005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중도우파 성향의 앙겔라 메르켈 정부도 '어젠다 2010'을 외면하지 않고 바통을 이어갔다. 진보, 보수를 떠나 독일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선택이 옳았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가 2005년 첫 의회 연설에서 "'어젠다 2010'으로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문을 열게 한 슈뢰더 총리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하르츠 개혁으로 저비용의 일자리 창출이 이뤄졌고, 그 결과 낮은 실업률이 이어져 독일이 경제 부흥의 역사를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임철재 한국은행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 차장은 "독일의 호황은 정치권의 결단으로 탄생한 하르츠 법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 유연성과 임금안정, 기업의 고용 확충, 서비스 경쟁력 확대 등 산업구조 변화가 복합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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