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재앙' 물려준 그리스 세습정치

머니투데이 아테네(그리스)=강상규 미래연구소M 소장 2012.04.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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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극과 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②-3]

↑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좌측)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좌측)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호를 침몰로 몰고 간 좌파 사회당(Pasok) 파판드레우 전 총리와 불행한 유산을 물려받은 아들 파판드레우 총리, 이 부자의 이야기는 포퓰리즘 정치의 기구한 숙명을 보여준다.

2010년 아들 파판드레우 총리가 이끄는 그리스 정부는 막대한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공공부문의 임금과 연금을 대폭 삭감하고 세금을 올리는 등 긴축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집안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지금 비난의 공격을 퍼붓고 있다.



정부의 긴축정책에 저항하는 많은 시위자들은 원래 사회당의 지지자들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시위현장에선 정당 깃발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파판드레우 총리를 비난하는 포스터가 나돌았다.

아테네에서 와인을 판매하는 알렉산더 스테티아티스는 "아버지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에게 지금의 만연한 부패와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책임이 있다"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태의 원인은 아버지 파판드레우 총리가 이룩한 부패한 시스템과 이를 35년간 지지한 국민들의 멍청한 선택 때문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 출신인 아버지 파판드레우 총리는 사회당을 창당하고 1981년엔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그리스의 유럽연합(EU) 가입 후 밀려들어오는 해외 자본을 이용하여 퍼주기식 사회복지시스템을 창조했다.

그리스의 사회학자 데스피나 파파도폴로우는 "아버지 파판드레우 총리의 정책으로 인해 그리스에 거대한 중산층이 형성됐고, 이 중산층은 그 대가로 사회당이 그리스 정치를 20여년 집권할 수 있도록 지지해줬다"면서도 "그러나 아들 조지 파판드레우 총리는 긴축정책을 통해 아버지가 이룩한 유산을 허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 파판드레우 총리는 긴축정책 반대 여론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9월 독일 기업가들에게 한 연설에서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에 상관하지 않는다"며 "총리직에 연연하지 않고 아버지가 만든 부패한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메쓰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사회학자 파파도폴로우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만든) 그 사회당이 지금 중산층을 몰락케 하고 자기들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의 막강한 노동조합 부위원장인 콘스탄티노스 쿠소디모스(그 또한 사회당의 열성 지지자)도 아들 파판드레우 총리의 긴축정책을 두고 "이것은 정치적인 존속살인이다"며 "지금의 긴축정책은 아버지에 대한 철저한 배반이다. 선거에 당선되기 전에 그는 공약으로 사회 복지 증진과 임금 인상을 내세웠다. 그런데 고작 2개월만에 모든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경제학자들은 그리스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자기 실력을 넘어선 무리한 수준까지 커졌으며, 부패로 얼룩져 있다고 지적한다. (관련기사: 부정직한 정치인이 그리스를 '빚더미'로 몰았다

사회에 만연된 부패는 '파케라키(작은 돈 봉투를 의미)'라 불리는 뇌물로 상징된다. 돈 봉투가 오가는 행위는 그리스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됐고, 이 부패시스템은 사회전반에 파고들어 일반 가정에까지 만연됐다.

스티븐 힐 정치평론가는 "그리스 국민 중에서 과연 몇 명이 이런 부패에서 깨끗한 지, 그리고 과연 몇 명이 이 부패한 시스템을 개혁하려고 했는지 의문스럽다"고 비평했다.

많은 비평가들은 아들 파판드레우 총리가 내세운 긴축정책이 아버지가 만든 부패한 시스템을 고치지 못한 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될 것이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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