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께 직접 용돈 안 드리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창욱 문화과학부 선임기자 2012.03.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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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수다]1.사위도 자식이지만 딸내미가 그래도 더 편하다

[글을 시작하며]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명지대 교수)는 최근작 '남자의 물건'에서 아저씨들이 불행한 이유는 자기의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구와 회사와 가정을 혼자서 지킨다고 착각하는 우리 아저씨들은 술이나 왕창 마시고 '꽐라'가 돼서야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죄다 별로 재미도 없는 정치 이야기나 회사 이야기다.

술 취하면 한 말 하고 또 한다. 주위 사람들도 이미 다 취해서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는다. 듣는다 해도 기억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생각했다. 맨 정신일때 직장, 마누라, 자식, 노후, 취미 등 일상사에 대해 수다를 떨어보자고. (단 할 말이 생길 때만 하기로 했다. 일정을 미리 정해둔 지면이 아니라 온라인에만 올리는 것이어서다)




축축하게 봄비가 오던 지난 금요일 저녁. 친한 취재원과 종로통에서 빈대떡과 굴전 놓고 저녁 겸 해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이 때 걸려오는 마눌님의 전화. 눈치 쓱 보고 나가서 받았다. '아, 오늘 약속 있단 말 아침에 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벼운 핀잔을 먹었다. 주말이라 오랜만에 저녁밥 같이 먹으려고 배고픈 거 참고 기다리고 있다가 한 전화였다. 잘못했다 할 밖에.



이어지는 멘트. "작은 언니(내겐 처형)랑 통화했는데, 내일 시골집(처가) 같이 가기로 했어." 좀 쉬고 싶긴 한데, 평소 맨날 '술 처먹는' 죄인인지라 어쩌나. 같이 가야지. 또 내려가면 사위 왔다고 맛있는 것도 많이 주신다. 시골 공기도 참 좋다.

가는 날 오전. 용돈 얼마 드리나 의논했다. 20만원 하기로 결정. 근데 마눌님이 생활비 계좌이체를 안 해서 당장 찾을 돈이 없단다. 다음달 용돈에서 보존받기로 하고 내 용돈계좌에서 찾았다.

'뻔한' 살림이라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보존 안 해줘도 된다고 했다. 그동안 모아놓은 비상금이 있으니 그 중에서 일부를 헐기로 했다. (마눌님도 내 비상금의 실체를 알긴 하는데, 금액은 정확하게 모른다)


문득 이 대목에서 예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이 생각이 났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고마워 할 때가 '자기 몰래 친정 부모님께 용돈 드리거나 선물 했을 때'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래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돈을 찾아 마눌님에게 건넸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 개인 용돈에서든, 생활비에서든 장인어른 장모님께 용돈 드릴 때 내 손으로 직접 드린 적이 한 번도 없다. 다 마눌님 통해서 드렸다.

거기엔 나만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설문조사에 나온 방식처럼 하면 마눌님에게는 생색이 더 난다. 일상의 소박한 이벤트다. 하지만 내 나이 또래까지 사위는 그래도 '백년 손님'이다.

아무리 사위도 자식이라지만 그래도 막내 딸내미에게 받는 용돈이 더 편하실 것이다. 내 생색 좀 안 나면 어떤가. 본인들이 더 편하시면 된 거다. 마눌님이 전하는 이야기로는 장모님께서 며칠 있다 친구 분들과 놀러 갈 때 잘 쓰겠다며 좋아하셨단다.

그래서 앞으로도 장인어른 장모님껜 내 손으로 직접 용돈 드릴 생각이 전혀 없다. 뇌물만 아니라면 돈은 받는 사람 편하게 드리는 게 최고다.

사족. 예전 한 선배님께 코치를 받아 확실하게 배웠다. 친가든 처가든 어른에겐 선물 그런 거 필요 없다. 괜히 번거롭게만 만들어 드릴 뿐이다. 5만원도 좋고 10만원도 좋다. 많은 돈이 아니어도 된다. 오직 '현금'이다. 그걸로 손자들 과자도 사주시고, 용돈도 주신다. 친구 분들 만나 설렁탕 한 그릇 드실 때, 작은 허세도 부리실 수 있다. 그게 바로 '고객만족' 아니 '어른 만족' 마인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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