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현대카드 정태영의 도전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2012.03.19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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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30년 한국 현대금융사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금융 CEO 세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를 들겠는가. 하나금융의 김승유회장, 신한금융의 라응찬 전회장, 그리고 미래에셋증권의 박현주회장이 아닐까 싶다.

세 사람 중 라응찬 김승유 회장은 이제 현역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최고 금융 CEO의 맥을 누가 이을지가 궁금하다. 은행권에서는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신임 하나금융 회장내정자, 윤용로 외환은행장, 조준희 기업은행장 등이 눈에 띈다. 2금융권에선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김남구 한국금융지주회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등이 눈여겨 봐야할 CEO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주목해야 할 CEO가 있다. 바로 정태영 현대캐피탈 카드사장이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정태영 사장을 한국의 금융CEO 중에서 리테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기업 임직원들 입장에서 가장 좋은 지배구조는 오너가 직접 경영을 하되, 똑똑하기까지 한 경우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그렇다. 게다가 오너 경영자인데도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 진짜 워커홀릭이다.



그는 겸손하지만 자존심이 세다. 어떤 경우에도 손을 비비거나 네트워크에 의존해서 영업을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늘 시장과 정면승부를 한다. 그는 진정 신세대 경영자다.

그는 멋을 안다. 음악을 알고 미술을 알고 디자인을 안다. 세계 최고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레이디 가가를 불러와 판을 벌인다.

일에 대한 집념, 혁신성, 창조성, 자존심, 세련된 감각으로 그는 2003년 사장 취임 이후 채 10년도 안돼 업계 꼴찌였던 회사를 국내 최고의 카드사로 키워냈다. 그리고 이제 보험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업계 꼴찌 수준인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현대라이프를 출범시켰다.


한국의 보험시장은 철옹성이다. 신규 진입자에게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생보시장은 삼성 대생 교보가, 손보시장은 삼성 현대 동부 LIG가 과점하는 체제다. 여기에 먼저 외국계가 도전했다가 헛물만 켜고 물러났다. 방카슈랑스를 내세워 은행계도 나섰지만 아직 성과를 못내고 있다. 박현주 회장의 미래에셋생명 조차 고전하고 있다. 그린화재 이영두 회장의 실패는 참혹하다. 새로운 참가자로서 작은 성과라도 거둔 곳은 신한생명이 유일하다.

보험업계에선 정태영사장의 도전을 지나치게 무모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보험시장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게 통하는 곳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정태영 사장이 카드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카드 사태와 글로벌 경제위기 등 시장이 요동치는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현재의 국내 보험시장은 안정되고 이미 성숙해버려서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성장에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생보시장에서는 현대기아차라는 언덕이 별게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보험시장은 지금까지는 새로운 진입을 시도하는 금융 CEO들에게는 무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퇴패했다.

정태영 사장은 어떨까. 정 사장은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가겠다는 전략이다. M&A를 통해 인위적으로 회사를 키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에게 손을 벌릴 생각은 더더욱 없다.

정태영사장의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다. 한때 운 좋았던 재벌가 2세 경영자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을지, 아니면 진짜 한국 최고의 금융CEO으로 인정받을지 그건 전적으로 현대라이프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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