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으로 고깃집 낸 50대 "손님 넘쳐도…"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12.03.13 10:38
글자크기

임대료·인건비등 매달 1000만원 지출… 자영업 '악순환 구조' 어떻길래

편집자주 답이 없다. 은퇴자와 실직자들은 다른 답을 찾을 수 없으니 막다른 길에 목숨을 건다. 이미 6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자영업에 인생을 걸었고, 그 가족들의 인생까지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그러나 이미 치열한 전쟁터에 참전인원이 많아지니 패자만 점점 늘어난다. 그 삶의 전쟁터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현실은 더 막막하다.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그들은 또 다시 소형트럭에 가족의 삶을 건다. 밤낮으로 새벽인력시장과 대리운전을 전전하며 재기를 꿈꾼다. 이 '답 없는' 현실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자영업의 몰락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시금 희망을 노래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함께 찾아봤다.

"10곳 중 8곳은 3년 내 폐업."
 
창업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법한 문구다. 섣불리 창업에 뛰어들었다가는 그만큼 실패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 인구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662만9000여명. 게다가 신규취업자 10명 중 3명은 자영업일 정도로 비율 또한 해마다 높아가고 있다. 전체 취업자 2500만여명 가운데 30% 안팎을 차지하는 자영업자 비율은 OECD 국가의 평균(15% 정도)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그러니 '10곳 중 8곳 폐업'은 허투루 보아 넘기기에는 꽤 무거운 숫자다. 자영업자의 절반 이상이 생계조차 위협 받는 잔인한 현실. 이들 중 상당수는 폐업 이후에 떠안은 빚과 함께 빈곤층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뼈빠지게 일해도 "월 소득 150미만"

#1. 지난 2월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에서 만난 시장 상인 정모(42) 씨. 그릇 가게를 운영 중인 그는 최근 시장 근처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오자 폐업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봐야 대기업 유통업체와 경쟁이 안 된다"며 "가족들도 미련하게 버티지 말고 빨리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고 씁쓸해 했다.



그러나 막상 그만두자니 이제 막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눈에 밟힌다. 그는 "애들이 커갈수록 돈 들어갈 일이 많은데 막상 일을 그만두려니 대책이 없다"고 말한다. 인근 상인들 중 먼저 폐업을 결정한 이들도 학원버스 운전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씨는 "그 생각을 하면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버티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2. 지난 7일 서울 지역의 한 세무서에서 만난 곽모(52) 씨. 그는 한손에 폐업신고서를 꼭 쥐고 굳은 표정으로 민원창구에 앉아 있었다. 그는 2년 전인 2010년 명예퇴직 후 5개월 준비 끝에 9월 프랜차이즈 삼겹살 전문점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게를 여는 데 그가 투자한 비용은 3억원 정도. 퇴직금과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금액까지 고스란히 투자했다. 역세권에 위치해 있는 탓에 권리금만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손님이 많은 만큼 열심히 일하면 갚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는 "장사가 안 되는 편은 아니었는데도 시간이 갈수록 적자폭은 늘어갔다"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임대료와 인건비, 관리비 등을 포함해 그가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비용만 1000만원 가까운 규모. 그러다 보니 정작 그에게 남은 순익은 매출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동안은 인건비라도 줄여보자는 마음에 아내와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가게에 매달렸지만 형편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아내의 건강도 나빠졌다.



사진=뉴스1 박철중 기자

그는 "아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이대로 버틸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가게를 정리하기로 했다"며 "가장이 무능력해 가족들을 고생시킨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진다"고 폐업 신고서를 향한 야속한 눈빛을 오랫동안 거두지 못했다.

정씨의 경우처럼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밀려 동네 개인 점포들이 고사당하고 있다는 소식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곽씨처럼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간판으로 내걸었다고 해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본사 로열티와 인테리어 비용 등 아무리 장사를 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에 최근에는 브랜드간 경쟁을 넘어 같은 브랜드 사이에서도 경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들의 입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장사해도 남는 게 없다"는 원성이 떠나질 않는다. 실제로 경기도 자영업자의 42%가 월 소득 15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2월 경기개발연구원에서 발표한 '경기도 자영업의 실상과 정책과제'라는 연구 조사 결과다. 전국 자영업자의 20% 이상이 속해있는 경기도 지역의 상황은 현재 국내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셈이다.
 
◆'10명 중 8명' 폐업 이후… "1톤 트럭 없어서 못 판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폐업 이후다. 무엇보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대부분이 40~50대 이상의 장년층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에 은퇴를 앞둔 베이비 부머들의 자영업 유입이 높아지면서 이미 50대 이상 장년층 자영업자가 300만명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이다. 재취업이 어려운 만큼 '창업-실패-재창업-실패'의 악순환 고리에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세무서에서 만난 곽씨 역시 "한동안 일을 쉬면서 미래를 구상하고 싶지만 당장 아이들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어 쉴 형편이 못 된다"며 "당장은 새벽 인력시장에라도 나가 볼 각오를 하고 있지만 악착같이 일해서 빨리 다른 사업으로 재기하는 게 최선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최근 들어 1톤 트럭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한평 중고차 시장의 최원석 전무는 "요즘 같은 경기에 그나마 거래가 되는 것은 소형 트럭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000만원 정도 투자해서 일단 소형 트럭 한대만 있으면 과일이나 채소 장사 등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와서 소형 트럭을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1000만원 안팎의 투자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은 당장 돈벌이를 위해 대리운전, 택배, 새벽 인력시장으로 유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택시회사 인사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신입 택시기사 10명 중 2명은 자영업을 하다 온 경우"라며 "실질적으로는 택시보다 대리운전으로 빠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한 창업 관계자는 "폐업한 이들 대부분이 당장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직업 훈련을 받을 사정이 안 된다"며 "낮에는 택배나 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뛰는 경우를 많이 봤다. 몸은 몸대로 지치는데 빚은 빚대로 늘어나는 악순환인 셈"이라고 전했다.

잡코리아에서 운영하는 아르바이트전문 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월 100만원 안팎의 일자리를 찾기 위한 40~50대 남성들의 신규 이력서가 2009년엔 600여건에 불과했으나 올 1∼2월에는 단 두달 만에 1600건을 넘어섰다. 이들 중 대부분은 택배, 대리운전 등의 운전 직종과 입출고, 물류, 창고 관리 등의 직종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알바몬 관계자는 "대부분 이력서 상에는 자영업 경력을 빼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통계가 나오기 어렵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자영업에 종사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계형 자영업의 실태와 활로'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실업 인구가 많아질수록 진입장벽이 낮은 창업시장이 유일한 대안으로 비춰진다"며 "이미 경쟁이 격화돼 있는 시장에 지속적으로 인력이 과잉 공급되고 있으니 자영업자들의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폐업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들의 소득 저하는 가계 부채 증가를 야기하는 데다 만성적인 생활 불안을 초래하기 때문에 경제 전반으로 봤을 때도 심각한 문제"라며 "단지 자영업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후준비 부족으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자영업 수익 구조 따져보니…

"손님 넘쳐도 남는 게 없다"
 
도대체 자영업자들의 형편이 어떻길래 이토록 아우성인 걸까. 김상훈 스타트비즈니스 소장이 실제 경기도 죽전의 한 저가 치킨집의 사례를 바탕으로 비용을 요목조목 따져봤다.

실평수 33㎡(10평) 정도의 가게를 얻는 데 필요한 비용은 권리금 1억3000만원에 보증금 5000만원, 월세 350만원. 이곳에서 판매하는 치킨 한마리의 가격은 7000원 안팎이다.

김 소장은 "보통 월세 250만원을 안정적으로 지불하기 위해서는 8배의 매출을 기준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 기준으로 따져 보자면 가게에 필요한 월 매출은 대략 2000만원 수준. 이 중 식재료 등 원가가 1000만원 정도다. 여기에 고정 지출비만 따져보더라도 매달 월세에 부과세까지 300만원, 배달 인력 두명만 채용하더라도 인건비 2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또 가게 관리비 등으로 100만원 정도가 지출되고 창업을 위해 받은 대출이자까지 감안하면 치킨집 주인의 수익은 200만원을 넘기기도 빠듯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 소장은 "월 매출 2000만원이 가능하려면 하루 평균 70~100마리는 꾸준히 팔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숫자"라며 "그나마 이것도 가게 유지가 가능한 수준을 말하는 것이지 생계를 위해 넉넉한 수익을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막막한 현실을 전달했다.

무엇보다 창업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저가를 내세우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이 같은 구조가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객단가가 낮아진 만큼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이 팔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몇년 전 유행했던 토스트 전문점을 예로 들면 아무리 고객이 줄서서 사먹는다 한들 샌드위치 한개의 가격이 1200원이다"고 말한다. 그러니 1000원짜리 샌드위치를 하루종일 200명에게 팔아도 하루 매출이 20만원에 못미친다는 얘기다.

그는 "그래서 얼마 못가 그 많던 토스트 전문점들이 줄줄이 폐업을 했는데도 본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며 "가맹점을 개점할 때마다 돈을 번 곳은 개점 수익을 챙긴 본사밖에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