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인 위해 정문내준 마트 '상쟁에서 상생으로'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정영일 기자 2012.02.2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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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유통업체·재래시장 상생법](1) 큰 것과 작은 것이 같이 갈수 있다

골목상인 위해 정문내준 마트 '상쟁에서 상생으로'


지난 연말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있는 롯데마트 삼양점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진행됐다. 롯데마트가 골목상권 상생을 위해 인근 삼양시장 상인들을 초청, 2차례 바자회를 연 것인데 상인회 소속 34개 업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곳이 참여했다.

마트정문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상인들은 즉석 김을 비롯해 시장에서 만든 반찬과 참기름, 사과, 고춧가루, 청국장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했다.



대부분 마트에도 있는 상품이나 바자회를 통해 보다 저렴하게 판매되는 것이 많아 고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참여한 업체는 시장 슈퍼마켓을 비롯해 식당, 의류수선, 메이크업, 야채상 등 다양했고 수익금은 전액 상인들에게 분배됐다.

롯데마트는 행사 지원을 위해 인근 소비자들에게 4만부의 전단을 제작해 배포했으며 대형 현수막과 텐트 등 시설도 지원했다. 시장상인들을 대상으로 고객응대 요령 등 사전교육도 이뤄졌다.



사실 이 점포는 개설문제를 놓고 마찰이 컸던 곳이다. 2년 전 건물을 지어놓고도 시장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지난해 하반기에야 오픈했다. 이번 행사가 상생을 위한 첫걸음을 떼게 해준 셈이다.

행사 후 상인들은 "롯데마트의 구매력을 통해 도매가로 물품을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마음을 열었다. 현재 롯데마트는 시장홍보를 위한 정기 바자회는 물론 특화시장 개설과 연 이자율 1~2%대 소상공인 대출지원 등 세부 지원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밖에도 재래시장이나 영세상인, 대형 유통업체가 공존하는 사례는 많다. 실제 적쟎은 자영업자가 '매장 내 매장' 형태로 대형마트에 입점했고 지역 슈퍼마켓이 SSM(기업형슈퍼마켓) 가맹점으로 업종을 전환한 경우도 있다. SSM의 경우 업체별로 차이가 있으나 20~30%가량은 자영업자가 운영하고 있다.


◇정치논리에 밀린 경제논리…"큰 것 작은 것 같이 죽인다"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래시장, 영세상인 보호를 내세워 대형 유통업체들의 영업을 제한하려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전북 전주시에서 시작된 일요 강제휴무 논의는 전국으로 확산되려는 중이고 이에 더해 여당은 대형마트와 SSM이 중소도시에 새로 진출하지 못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롯데마트 삼양점은 지난해 11월 지역 재래시장인 삼양시장 상인회 소속 업체와 상생 바자회를 개최했다.↑ 롯데마트 삼양점은 지난해 11월 지역 재래시장인 삼양시장 상인회 소속 업체와 상생 바자회를 개최했다.
반면 업계는 주력상품과 고객층이 서로 다르고 영업규제로 인한 업계피해뿐 아니라 소비자의 권익침해와 납품업체 등 연쇄피해도 크다고 반발한다. 최근 거론되는 규제책이 시행될 경우 업계 전체적으로 3조4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생계형 일자리도 6500개 이상 사라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물품을 납품하는 소상공인들의 피해와 물가상승 부작용도 거론한다. 급기야 대형 유통업체들을 회원사로 한 체인스토어협회는 지난 17일 법적 영업규제를 막아달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양측의 날선 공방이 계속되고 있으나 정작 이를 지켜보는 재래시장과 소비자들은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골목상권'과 '소비자 권익'을 함께 보호할 발전적 대안은 온데간데 없고 소모적 논쟁만 요란하다는 것이다.

유통 생태계는 이미 수십년간 발전해온 터라 이제는 단순한 규제책으로 틀을 바꾸기 어렵다. 소비자들의 취향과 선택기준도 달라졌는데 높아진 눈높이를 강제로 낮추려는 것도 바람직한 발상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의 부침원인, 그리고 대형 유통업체들이 가질 수 있는 역할과 기능에 주목해야 한다"며 "양측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조율하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통선진화의 그늘, 재래시장의 침체

한국에 이른바 '할인점'으로 불리는 대형마트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93년(창동 이마트)이다. 백화점과 슈퍼마켓 등 성장성이 둔화된 상황에서 유휴부지 활용을 놓고 고민하던 신세계가 대량구매와 판매를 통해 가격을 낮춘 새로운 판매방식을 선보인 것이다.

93년 50억원의 매출에 불과하던 할인점은 2004년 매출 20조원을 넘어섰고 이제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점포망을 갖출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그늘도 있었다. '유통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슈퍼마켓이나 야채상, 재래시장 등은 잇따라 문을 닫았다. 2010년 말 기준 전국 재래시장은 1517곳으로 2008년(1550곳)보다 37곳 줄었다. 시장 내 점포는 20만1358개로 2008년보다 6000여개 감소했고 상인도 35만9375명으로 3585명 줄었다.

'큰 것(대형마트)을 잡아야 작은 것(재래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논리가 나온 배경인데 전문가들은 "경쟁구도보다 상생관계를 맺어주는 방식을 구상하는 게 보다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형마트나 SSM이 재래시장, 골목상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마케팅을 펼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육성하면 양측의 상권이 함께 클 수 있다는 것이다.

◇판로 걱정하던 중소기업·농어민 "할인점 덕에…"

업계 1위 이마트의 경우 2005년부터 매년 중소기업 초청 박람회를 열고 있는데 2010년까지 3000곳 넘는 기업이 신청했다. 이를 통해 331곳 중소기업이 이마트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고 판매액은 3400억원이 넘는다.

전자기기업체 관계자는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개발비용이나 판로가 부족해 대기업 하청으로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며 "2008년부터 마트를 통해 판매를 시작한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능을 보완하거나 신제품을 만들기도 용이하다"며 "예전 같았으면 성공하기도 어렵고 자금난 때문에 진작 사업을 접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밀폐용기로 세계적 기업이 된 락앤락은 해외시장 개척에서 유통업계의 큰 도움을 받았다. 락앤락은 2004년 중국에 진출했는데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사업을 접을 뻔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이마트 점포를 통해 판매를 시작한 후 2008년 4억원에 불과하던 현지매출이 2010년 1500억원으로 늘었고 이를 계기로 현지공장도 세울 수 있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통해 농수산물 판로를 뚫어주는 것도 큰 역할"이라며 "전국 소비자들이 다양한 지역특산물을 편리하게 구매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할도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통해 농수산물 판로를 뚫어주는 것도 큰 역할"이라며 "전국 소비자들이 다양한 지역 특산물을 편리하게 구매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할도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완도군, 울진군, 양구군 등과 업무협약을 통해 상품을 공급받아 전국 이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다. 최근 유기농이나 자연산 횟감 등 산지 생산자와 직거래 비중을 높이고 있는데 농어민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많다.

충북에서 유기농 쌀과 배추를 재배하는 최모씨(48)는 "밭떼기 상인에게 손해를 입거나 팔지 못해 밭을 갈아버릴 때는 참담한 심정"이라며 "지역에 대형유통점이 들어선 후에는 판로걱정이 없고 가격도 후하게 받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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