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냉면계의 진정한 장인이자 代母

머니투데이 남창룡 월간 외식경영 2012.02.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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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천대가의 '유천냉면' 창업주 우화자 여사

입소문을 무시할 수 없는 외식산업에서 상표(간판)의 힘은 막강하다. 우후죽순 일어나는 유사 간판과 관련한 소송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아무리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상도를 어기며 이익만을 추구하는 업소 때문에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이러한 난제를 정면으로 해결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칡 냉면계의 대모(代母)라 할 수 있는 여장부가 있어 화제다. 서울시 송파구 풍납2동에 있는 (주)유천대가의 '유천냉면' 창업주 우화자 여사를 만나 그의 장인 정신을 들어 봤다.



◇ 최고가 되려던 어린 시절부터 여장부 기질 발휘
1950년 6월에 충북 중원군 살미면에서 태어난 우 여사는 어려서부터 유달리 욕심이 많았다고 한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뭐든지 꼭 알아내고야 말았다. 1등이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보기 드문 성격의 아이였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1등만을 해 다른 또래 아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남자가 아니면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가난했기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칡 냉면계의 진정한 장인이자 代母


오죽하면 당시 장학사까지 나서서 그의 아버지에게 ‘딸 화자만큼은 계속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설득했겠는가. 그러나 가정 형편이 힘들어 전 학년 담임선생들도 무척 아쉬워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다른 선생의 도움으로 그는 17세 꽃다운 나이에 강원도 원주의 한 우체국 보조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에 열중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어 근처에 생긴 야간학교에 입학한다. 밤늦도록 공부를 해도 지치지 않고 너무나 행복한 시절이었다.

20대 초반에는 친구의 소개로 서울의 한 버스회사 경리로 취업을 하면서 부업으로 고향집에서 농사지은 농산물을 판매하기도 했다.

봉급보다 높은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서 모은 돈 전부를 친아버지 이름으로 집과 과수원, 농지 등을 매입하고 동생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 동네방네 칭찬이 자자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지속적인 학업에 대한 열정은 포기해야만 했었다.


◇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양념장과 육수 개발 성공
세월이 흘러 중장비 기술자격증을 소지한 남편은 낯설기만 한 중동지역 근로자로 멀리 떠난다. 솥뚜껑 같은 무더운 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생하는 남편을 생각하니 보내준 돈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깝기만 했다.

그래서 자신도 뭔가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1982년부터 지금의 서울 풍납동 도깨비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보리밥과 강된장, 냉면, 비빔국수 등을 팔아서 월세, 식대 등을 모두 해결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상인들도 열심히 살라고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러한 이웃들의 격려와 고마움에 더욱 땀 흘려 일했다.

어려서부터 면 종류 음식을 좋아하던 그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평소 좋아하던 냉면을 입맛에 맞게 집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독특한 양념장과 육수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 풍납동 ‘유천파크맨션’에서 시작된 칡 냉면의 신화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어렵게 꾸려오던 사업들이 매출 부진으로 여러 차례 폐업하게 되면서 어렵게 마련한 주택을 팔고 같은 지역의 ‘유천파크맨션’으로 이사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유난히 추웠던 겨울 땅을 파고 묻어놓은 동치미가 하루아침에 도난당한 일이 발생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고구마를 먹다가 몰래 퍼먹은 것이 항아리 한 개를 다 비우게 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한 것. 화도 났지만 얼마나 맛있었으면 그렇겠나 싶어 빙그레 웃고 말았다. 이 소문이 주변에 알려지자 음식솜씨가 너무 아까우니 전문적으로 냉면집을 차려보라며 적극 성원해 주었다.

가정집에서 영업을 하기에는 문제점이 많아 근처 상가주택에 밥상 4개를 놓을 수 있는 자리를 얻어 1986년 정식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당시 함흥냉면 전문가들은 그가 만든 칡 냉면을 ‘나이롱 냉면’이라 폄하하면서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양념장과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육수에 한 끼 식사로도 부족함이 없던 양 등 때문에 고객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매콤하고 시원한 맛을 잊을 수 없었던 고객은 단골이 되었고 급기야 전국으로 소문이 퍼졌다.

◇ 주민과 고객의 성원으로 '유천냉면' 상표 취득
1993년 풍납동 영파여고 뒷담 길의 한 상가를 임대 해 새로운 각오로 장사를 시작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2년 여 동안 성심성의껏 음식을 만들어 손님상에 올린 덕분인지 소문이 퍼져 단골고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가 하면 주변 나무그늘에 깔아놓은 돗자리 위에서 식사를 즐기는 등의 진풍경이 연일 연출되었다.

정성스레 음식을 만드는 것에 몰두하던 그는 어느 날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평생 처음 들어보는 상표와 서비스표 등록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이를 계기로 1993년‘유천냉면’이라는 상호로 등록하려 했으나 유천은 지명이란 이유로 거절당한다.

첫 가게에서부터 사용하던 간판이라 그런지 애착이 간 상호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단골 고객과 풍납동 주민들에게 이러한 사정을 알린다. 결국 수백여 명의 증언 자료를 취합해 담당자에게 제시하게 되자 '유천냉면' 이라는 상표와 서비스표를 받게 되었다.

◇ 상거래 질서 확립 위해 전국 유사 간판 50여개 정리
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어느 순간은 너무 힘들 때도 있었다. 비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손님들이 북적이다 보니 그런 오해가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이러한 겉모습만 보고 상처를 준 사람은 바로 건물주였다. 어느 날 가게를 비워달라는 것이다.

다급하게 다른 자리를 알아보다 여의치 않아 지금의 풍납2동 공터에 건물을 세우고 이사를 하게 된다. 서둘러 이사를 마친 후 얼마가 지났을까. 그간의 추억과 고마움을 잊을 수 없어 함께 한 임직원들과 그 전 가게 앞을 지나는데 ‘유촌냉면’ 간판이 붙어 있지 않은가.

얼마나 어이가 없고 분하던지 한동안 말을 잃고 서 있었다. 너무나 억울해서 몇날 며칠을 잠도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리저리 방법을 찾다 유천냉면과 유사한 간판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이 뿐만 아니다. 이 시기 전수창업(기술전수)을 시작하면서부터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수많은 유사 식당과 업체들이 생겨났다. 작년까지 ‘유촌’ 또는 ‘육천’같은 수많은 유사 상호를 사용하는 냉면 집들이 여름철이면 생겨났다 없어지곤 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몇 년 전부터 유사 상표를 쓰지 못하게 협조문(내용증명) 등을 문제의 업소 등에 발송해 정리했다.

◇ 곤지암 공장 신축가동으로 직영·가맹점 맛 통일
칡 냉면계의 진정한 장인이자 代母
한편 또 다른 시련이 그의 손과 발을 묶으려 했다. 유사 간판을 쓰는 업주들의 고소와 고발이 이어졌기 때문. 검찰청에 불려가 사실 그대로를 여러 가지 정황을 예로 들면서 칡 냉면 제조 과정 등에 대해 차근차근 진술해 어처구니없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음식을 만드는데 식재료 선별을 더욱 까다롭게 하면서 늘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충남 금산에 칡 냉면 공장을 운영하다 지금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에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에 맞는 공장을 신축해 가동 중에 있다. 이 공장은 그동안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기술을 전수해 준 점포들의 맛이 제각각 이었던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신축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HACCP 공장에서 생산되는 똑같은 반가공 상태의 재료를 사용한 양념 등으로 일관된 맛을 느낄 수 있는 매장에서만 '유천냉면' 간판을 달 수 있도록 직영, 가맹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매월 2개 정도씩 24개 정식 점포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공정위에 (주)유천대가 등록, 해외시장 개척 본격화
주로 오피스텔과 주상복합 건물주를 찾고 있는데, 돈에 집착하는 주인은 철저히 배제시키기로 했다. 직원에게만 일을 시키는 점주 또한 마찬가지다.

가맹점 개설 비용이나 인테리어 수익보다 물류에 중점을 두기로 한 것. 일본인 관광객들도 찾아주고 있기에 해외시장 개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2010년에 (주)유천대가 법인을 설립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본부 등록을 마쳤다.

“올해부터는 브랜드에 집중하면서 가업형 기업화를 이루는 게 꿈입니다. '유천냉면'이 재도약 하는 시기인 만큼 매출의 일부를 지역 장학 사업 등 사회 환원에도 지속적인 공을 들이고 싶어요.” '유천냉면'이 재도약하는 시기인 만큼 그는 가업형 기업화가 꿈이다.

◇ 명품 '유천냉면'에 이어 전통요리와 한식 연구 계획
비록 늦은 감이 있었지만 평생의 한이 되었던 학업을 다시 시작해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배화여대 전통조리과를 졸업한 그는 앞으로 젊은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전통요리와 한식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수많은 즐거움과 고생을 함께해 준 가족들과 늘 지켜봐주고 도와 준 단골손님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는 우 여사는 늘 정직하게 국산 식재료만을 사용하는 진정한 칡 냉면계의 장인으로 영원히 남고 싶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다짐하며 한복 옷고름을 매만져 본다.

현재 '유천냉면' 풍납동 본점은 70평형에 1층(110석), 2층(90석)을 갖추고 있으며, 테이블 당 객단가는 2만원이다. 줄을 서서 먹는 여름철에는 아산병원 환자들도 찾을 정도로 회전율이 높아 20회 도다. 그간의 성공담보다 애간장이 다 녹을 정도로 마음고생이 많았던 그의 일대기를 뒤돌아보며'유천냉면'의 유사 브랜드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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