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풍경] '커피 전성시대'…동네따라 손님도 문화도 달라

뉴스1 제공 2012.02.1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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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서송희 기자=

# 지난 3일 오전 종로3가 맥도널드 매장. 매장을 찾은 손님 중 3분의 1 이상이 60, 70대 노인들로 대부분 혼자였다. 20, 30대 젊은이들이 주문 후 바쁘게 먹고 자리를 뜨는 것과 달리 이들은 커피 한 잔을 탁자에 두고 신문을 보거나 전화를 하면서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 이옥성(69)씨는 "커피 가격도 저렴하고 부담 없이 앉아있을 수 있어 패스트푸드점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 같은 날 오후 신촌 이화여대 앞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매장에는 테이블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혼자 공부를 하는 대학생들로 가득했다. 이곳의 작고 둥그런 탁자는 2명이 마주앉기엔 적당하지만 여럿이 함께 조별 숙제를 하기에는 불편해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이대생은 "스타벅스는 혼자 공부하는 학생이 많고 지하철역 쪽 이디아는 신입생 등 저학년들이 많이 모인다"고 귀띔했다.



바야흐로 커피전문점 전성시대다.

전반적인 소비침체 속에서도 커피전문점 수는 지난해 1만개까지 증가해 시장규모가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치킨집 망한 자리에 커피전문점이 생겨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커피전문점 급증은 단순히 커피에 대한 대중적인 기호도가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활물가 급등과 함께 청년백수 증가, 사회 고령화로 인해 커피전문점이 비교적 저렴한 대안공간으로 각광받고 있어서다.
지역에 따라 커피전문점을 찾는 고객의 연령대, 머무는 시간과 방법이 크게 달라진다.

◇60~70대, 패스트푸드 커피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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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일대 패스트푸드점은 젊은층보다 노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 물론 실제 방문고객은 젊은층이 많지만 한 번 자리잡으면 2~3시간 이상 머무는 노인들이 더 많아 보인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반나절 이상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종로3가 맥도날드의 한 종업원은 "런치타임인 오전 11시~오후 1시와 오후 7시에 어른신들이 특히 많이 온다. 주로 커피를 마신다"고 전했다.

친구를 만나 적적함을 달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적지 않은 노인들은 개인사업의 거점이나 업무적 미팅 장소로 패스트푸드점을 애용하고 있었다.

부동산대출업을 하는 추문석(72)씨는 종로5가 맥도날드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추씨는 "20년 전 부동산을 소개하는 이들이 종로5가에 모여들곤 했다"면서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맥도날드는 대로변에 있어 찾기가 쉬워 약속장소로 좋다"고 말했다.

이옥성(77)씨는 "사무실을 마련하기에는 고정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그 대신 맥도날드에서 사람을 만난다"고 밝혔다.

임성민(70)씨는 "다방보다 자유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에 한 달에 2번 정도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친구들과 여가를 보내고 있다. 임씨는 "커피나 코코아 등 메뉴도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한데다 오래 앉아있어도 눈총주는 사람이 없어 부담없이 찾는다"고 말했다.

◇10대들, 커피 한잔에 연예인 대기모드

추운 겨울에도 야외에서 연예인을 기다리는 학생들. News1 추운 겨울에도 야외에서 연예인을 기다리는 학생들. News1
종로와 달리 강남구 압구정 일대 커피전문점에는 커피를 즐겨 마시기에는 이른 10대 젊은층들이 많이 찾는다. 이 일대가 유명한 연예전문기획사나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 미용실이 몰려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이 운영하는 JYP와 큐브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주변의 한 커피전문점에는 테이블 곳곳을 차지한 10대 팬들이 잔뜩 들떠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 청소년들은 커피를 한 잔만 주문하고 떠들며 틈틈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기다리던 연예인이 사무실에서 나오면 우르르 몰려나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서야 커피전문점을 떠났다.

미용실 밖에서 기다리는 팬(왼쪽)과 미용실 아래 커피에서 기다리는 팬들(오른쪽). News1 미용실 밖에서 기다리는 팬(왼쪽)과 미용실 아래 커피에서 기다리는 팬들(오른쪽). News1
남자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알려진 한 미용실의 바로 아래 커피숍에서는청소년뿐만 아니라 20대들도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연예인들의 일정을 미리 파악하고 시간에 맞춰 이용실에 들어가는 몇 초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어떤 연예인을 찾아 왔는지, 정보는 어디서 얻었는지를 묻는 기자에게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는 걸 극도로 경계하면서 입을 닫았다.

특정 시간이 되면팬들이삼삼오오 모여 들었고 연예인이 미용실로 들어가는 찰나를 보고 난 후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미용실에서 치장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 커피전문점에 앉아 연예인을 기다리는 식이었다.

팬들은담배를 피지 않았지만 연예인이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창가의 흡연석에 자리를 잡고 창 밖을 주시했다.

5000원이 넘는 커피값이 부담스러운지, 청소년들은영하의 날씨에도 야외에서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압구정의 다른 커피전문점에서 미용실에서 마주쳤던 한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20대 초반이라고 밝힌 팬들은 연예인을 보러 압구정에 자주 방문한다고 밝혔다.그는 "연예인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닐 때에도압구정에 자주 나온다"며 "(좋아하는 연예인의) 행동반경에 있어 연예인을 보러 가기도 좋고,프렌차이즈 커피숍은 다른 지역과 가격 차이도 없기 때문에 압구정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연예인에 관련된 상점의 지도를 가지고 압구정을 돌아보는 일본인들도 눈에 띄였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숙소와 자주 찾는 미용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왔던가게 등의 상호명과 위치, 가는 방법 등을 프린트해 가지고 다녔다.

◇대학가 커피숍 도서관·세미나실 대용

대학가 커피전문점은 도서관이나 세미나실 대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촌 일대에선 학생들이 함께 조별 리포트를 만들거나 발표 과제를 토론하는 장소로 커피 전문점을애용한다.

하지만 커피전문점의 인테리어나 분위기, 커피값, 위치 등에 따라 찾는 이유도 저마다 달랐다.

이화여대 앞의 카페 '주'는 학생들 사이에 모여서 숙제하기에 좋은 장소로 꼽힌다. 이곳에서 스터디(뜻을 모아 함께 공부하는 모임)원을 기다리던 한 학생은 "학교 앞이라 다들 찾기도 편하고 책상도 넓어 여러 사람과 작업하기에 좋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반면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 커피전문점은 단체보다는 혼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2인용 둥근 탁자 위주의 인테리어가 아무래도 다수가 함께 모이기에는 불편해서다.

스타벅스에 자주 온다는 한 이대생은 "수업 사이에 뜨는 시간에 스타벅스에 자주 오는 편"이라며 "스타벅스는 혼자 공부하는 사람이 많고 지하철역 쪽 이디아에는 저학년생들이 자주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치나 가격, 영업 기간, 분위기에 따라 대학 초년생이 많이 찾는 곳과 고학년이나 대학원생이 찾는 곳이 나뉘기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시장통 달달한 커피 한잔이 아직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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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이 밥 한끼보다 비싸다고들 하지만 종로 세운전자상가에는 아직 500원짜리 커피를 마실 수 있다.

15년째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커피를 팔아온 김영자(여·인천)씨는 뜨거운 물에 넉넉한 인심으로 커피와 크림을 큰 스푼에 듬뿍 담아 달달한 '다방커피'를 만들어 판다.

하지만 김씨는 시장상인들로부터 '토스트 아줌마'라고 불린다.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기 전부터 '형님폰'으로 불리던 광역무선전화기를 들고 시장 곳곳을 누비며 커피를 배달했지만 이젠 수지가 맞지 않아 커피보다 토스트 판매가 주를 이루고 있다.

김씨는 봉지커피와 전기주전자가 대중화되면서 이제는 각자 커피를 타먹기 때문에 커피 수요가 급감다고 진단하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와 프림을 듬뿍 넣는 자신의 커피가 봉지커피보다 훨씬 더 맛있다고 자부했다.

이전에는 이 시장 안에도 커피 가게가 두 곳이 있었다. 하지만 청계천에 접해 커피를 팔던 아주머니는 청계천 개발로 철거 대상으로 지정돼 장사를 접었다.

비닐과 상자로 둘러 외풍을 막고 전기 난로를 틀어 온기를 드리운 커다란 파라솔이 그의 커피숍이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혹한에도 김씨는 "내 나이 이제 7학년(70대)이지만 시장통 젊은이들 상대하다 보니 항상 활기차고 젊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80년대 모습 간직 다방 젊은층에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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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흑석동에는 다방이 옛 모습 그대로 30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커피 프림과 설탕을 담은 통에 붉은 벽돌로 만는 아치형 칸막이, 백열등 조명, 가죽의자가 지금의 20, 30대가 어릴 적 할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가 요구르트를 마시던 풍경 그대로다.

1983년 커피를 팔기 시작한 '터방네'는 92년부터 지금 주인이 넘겨받아 커피를 팔고 있다.

터방네를 찾은 한 학생은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도 많이 전해온다"면서 경찰에 쫓기던 학생들이 도망갔다는 화장실에 난 작은 문을 가르쳐 줬다.

터방네는 옛 정취를 느끼려는 중년 손님도 찾긴하지만 이색적인 공간을 찾는 젊은이들 사이에 명소로 통한다. 이곳에선 2인 이상이 커피를 주문하면 80~90년대 커피숍에서 증기압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해내는 방식의 '사이폰 커피'를 내려 준다.

버터커피, 생강 커피 등 흔하지 않은 커피를 맛볼 수 있으며, 생강차와 밀크쉐이크 등 다양한 메뉴는 터방네만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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