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규제, 다음 타깃은?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12.02.1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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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이젠 '마트·슈퍼마켓'…법망 피해 무한확장

'골목 엑소더스'다. 대기업들이 골목상권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은 마치 ‘탈출’을 의미하는 엑소더스와 닮았다. 거세게 몰아치는 여론에 등 떠밀린 ‘셀프 퇴출’이다.

지난 1월말 삼성가의 ‘아티제’를 시작으로 현대가 ‘오젠’, 롯데가의 ‘포숑’이 줄지어 철수를 선언했다. 외식업에서 시작한 논란이 점차 거세지며 지난 9일에는 LS네트웍스의 자전거 가맹사업인 ‘바이클로’도 철수를 선언했다. ‘골목 함정’에 빠진 대기업들, 그 후폭풍을 짚어봤다.



♦ 대기업 음식점 방 뺐는데…여전한 눈치 게임

“골목 상권이랑은 전혀 다릅니다. 매장도 도심에 위치해 있고, 정통 고급 제품을 중심으로 하고 있잖아요. 타깃층이 다릅니다.”

대명코퍼레이션의 떡볶이 전문점 베거백, FnC코오롱의 슈크림 전문점 비어드 파파, 매일유업의 수제 샌드위치 전문점 부첼라, 대상에서 운영 중인 터치오브스파이스, 그리고 신세계 조선호텔베이커리의 ‘데이앤데이’와 ‘달로와요’ 등등. 철수 선언을 한 곳 외에도 외식업을 운영 중인 대기업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러나 골목 상권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골목 상권과는 시장 자체가 다르다는 항변이다.





전문가들 역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는 이들과 골목 시장은 사실상 분리돼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대기업의 외식업 진출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한동안 사그러들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팀 부장은 “이들이 골목 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서비스 전 분야에 걸쳐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만큼 골목 상권은 물론 시장 흐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최근 대기업의 신규사업 진출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 편중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 4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된 이후부터 지난해 7월까지 10대 그룹의 신규 계열사 237개 가운데 제조업 진출은 88개, 149개가 외식·유통·물류 등 서비스업종이었다. 전체의 62%에 달하는 비중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비교적 손쉽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데 대한 반감이 표출되고 있다. 이웅규 백석대 교수는 “외식업 등은 진입장벽이 낮고 리스크가 적은 대표적인 분야다”며 “특히 해외에서 검증 받은 라이선스 브랜드를 통해 손쉽게 시장을 선점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대기업의 거대한 네트워크와 유통망을 활용해 불공정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눈총도 따갑다. 신세계 이명희 그룹회장의 딸인 정유경 부사장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조선호텔베이커리의 ‘데이앤데이’가 대표적이다. 이마트 122개 매장 내에 베이커리숍을 운영하며 이마트 피자도 납품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원은 “골목에서 빵집이 사라지는 걸 대중들이 목도하는 현실에서, 이같은 의혹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다”며 “때문에 일반인들의 감정이 비판을 넘어선 분노로 거세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권오인 부장은 "대기업들이 잠깐 발 뺀다고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며 "선거때만 되면 으레 불거지는 이슈인 만큼, 보여주기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 유통기업들 거침없는 영토 확장…불 난 집에 기름 붓기?

유통 대기업들 또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골목 상권을 바라보는 논란의 맥이 같기 때문에, 외식업과 유통업을 같은 선상에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SSM(기업형슈퍼마켓) 등은 기존 상권을 초토화 시키며, 골목가게와 전통시장 등 중소상인들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 실제로 최근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0년 전국의 전통시장 178곳이 사라졌다. 그 사이 대형마트와 SSM은 185곳이 늘어났다.

지난해 상생법과 유통법 등 규제책을 마련했지만, 교묘히 법망을 피해 점포수를 확장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최근에는 M&A를 통해 우회 확장을 꾀하기도 한다. 롯데쇼핑은 최근 CS유통을 인수하며 롯데슈퍼를 포함 총 526개의 매장을 확보해 SSM 영토 확장 1위 자리를 굳혔다. 이마트 역시 킴스클럽에 이어 최근 SM인수에 성공, 영토 전쟁이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개점시 소요되는 비용의 51% 이상을 본사가 부담할 경우에만 사업조정 신청 대상이 된다는 점을 이용해, 가맹사업 진출을 통해 상생법의 맹점을 피해나가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SSM인 롯데슈퍼를 운영 중인 롯데쇼핑은 지난해 10월 균일가숍인 ‘롯데마켓999’의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을 위한 정보공개서를 등록했다. 홈플러스 역시 지난해 12월 ‘365플러스’로 편의점 사업에 진출, 편의점 가맹사업을 위한 정보공개서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승인 받았다. 이 와중에 롯데슈퍼가 군인면세점에 물건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영업망을 확대한 사실이 알려지며, 또 다시 지역 상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권오인 부장은 “영업시간 제한 등 규제 강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면서도 "정권 초기까지는 이같은 움직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같은 규제들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골목 시장이 죽으면 내수 시장이 죽고, 이는 결국 대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함정에 제 발로 걸려든 것은 아닌지, 대기업들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마무리했다.

■CJ푸드빌, 아워홈 "애매합니다잉~"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이라면 일단 ‘블랙 리스트’에 올라간다. 비난의 여론이 거세지자, CJ푸드빌의 ‘비비고’, 아워홈의 ‘밥이답이다’ 등 외식서비스 전문 대기업들은 차별점을 강조하며 '확실한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부장은 “대기업의 서비스업 진출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만 “대기업이라면 영세상인들이 할 수 없는 기술개발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대부분 자본력을 앞세워 중소상권을 먹어버리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문제다”고 정리했다.

이들 식품업체는 “오랫동안 쌓아온 사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외식 브랜드”라는 점을 앞세운다. CJ푸드빌 관계자는 “비비고만 하더라도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브랜드다”며 “지난 2010년 론칭 때도 국내는 광화문 1호점만 오픈한 반면, 싱가포르에는 3개 지점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메뉴개발, 인력양성 등의 역할을 위해 국내 매장을 운영 중이지만,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 작업의 목적이 더 크다는 것이다.

'밥이답이다'를 운영 중인 아워홈 관계자 역시 "한식 패스트푸드 메뉴를 개발해 해외 진출을 최종 목표로하는 브랜드다"며 "현재도 운영 중인 곳은 압구정 매장 1곳이다"고 차별점을 앞세웠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외식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대기업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운영 중이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같은 진정성을 알아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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