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상폐 날벼락' 모면하기까지...'초비상 3일'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류지민 기자 2012.02.0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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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의 지주회사 한화가 상장폐지라는 사상초유의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검찰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9년을 구형한 지난 2일부터 한국거래소(KRX)가 상장폐지 실질심사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한 5일까지 3일 간 한화는 그야말로 초비상 상태였다.

거래소는 5일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그룹이 경영투명성 개선방안과 이행계획서를 제출했다"며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화 주식에 대한 매매거래는 6일부터 정상화된다.



앞서 거래소는 지난 3일 한화가 횡령 및 배임 사실을 공시했다며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6일부터 한화 주식에 대한 매매거래를 정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한화는 주말내내 재무·기획·투자자관계관리(IR) 등 관련 부서원들을 총동원해 경영투명성 개선방안과 이행계획서를 작성하고 거래소를 상대로 상황을 설명하는 등의 작업을 펼쳐 가까스로 상장폐지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 것은 지난해 4월 개정된 거래소 규정의 영향이 컸다.

거래소는 지난해 4월 배임 또는 횡령 금액이 자기자본 대비 5% 이상, 대기업은 2.5% 이상인 경우이면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쳤다. 이전까지는 임직원의 배임 또는 횡령 금액이 자본의 전액(최근 재무제표 반영)을 잠식하는 경우에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되도록 했었다.

이보다 약 3개월 앞선 지난해 1월29일 서울서부지검은 김 회장 등 관련 임원 3명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공소제기(기소)를 했다. 이들이 약 900억원에 상당하는 계열사 한화S&C의 주식을 저가로 매각해 한화에 손실을 끼쳤다는 논리였다.


한화가 이에 대해 공시를 한 시점은 검찰의 기소 이후 약 1년여가 지난 3일이었다. 그 전날인 2일 검찰이 구형을 하자 이를 계기로 새로운 규정을 확인하고 공시를 한 셈이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2일 서부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거액의 손실을 계열사에 떠넘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등)로 불구속 기소된 김 회장에게 징역 9년,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공시 담당자의 업무 착오로 결과적으로 공시를 뒤늦게 한 셈이 됐다"며 "2일 검찰 구형이 난 뒤 3일 거래소 측에서 공소장을 확인해 보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고, 이를 계기로 내용을 검토하던 중 공시해야 할 내용인 것인 것을 알게 돼 급하게 공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거래소도 관련 절차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거래소는 지난 3일 한화의 공시가 있은 직후 한화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관련 절차에 따라 6일부터 한화 주식에 대해 매매거래가 정지되는 만큼 늦어도 5일까지는 한화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거래소는 이에 대한 판단을 위해 한화에 경영투명성 개선방안과 이행계획서 등 자구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했고, 한화는 주말내내 관련 부서를 총동원하며 자료를 만들어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한화의 재무·기획·IR·홍보 부서는 주말 동안 초비상 상태로 근무했다"며 "그룹의 홍보팀 등도 주말임에도 출근해 한화의 업무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도 대기업의 총수 등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와 관련된 검찰 수사들이 많았지만, 거래소 규정이 개정되기 전이어서 이처럼 상장폐지 위기까지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며 "거래소의 새로운 규정의 파급력이 이 정도일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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