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男, 부장되자 투서만 48통… 전무되기까지

머니위크 김성욱 기자 2012.02.0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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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고졸 혁명/금호그룹 전무 지낸 윤생진 선진D&C 대표

최근 기업들이 '고졸 채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고졸'로 입사해서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자리에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렵다.

하지만 학벌이 곧 실력이고 성공의 지름길로 여겨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고졸이라는 학력을 이겨내고 이른바 '고졸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사람들을 종종 찾을 수 있다. 윤생진 선진D&C 대표도 그 중 한명이다. 윤 대표는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1978년 금호타이어에 기능직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7차례의 특진을 거듭해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전무까지 지내다 지난 2010년 물러나 자기사업을 하고 있다.



고졸이라는 멍에를 지고 어떻게 대그룹 임원에 오르게 됐는지, 그 비결과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미친놈' 취급 받은 '부장 목표'

윤생진 대표는 신입 면접 때 면접관에게 "자네의 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윤 대표는 "금호타이어의 부장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대답에 면접관들은 "반장을 잘못 말한 것 아니냐"며 의아해 했다. 당시 금호타이어 고졸 기능직이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직책은 기능직을 총괄하는 반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장이 꿈"이라는 윤 대표의 답변이 반장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 대표는 반장이 아니라 부장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부장까지 오르겠다는 목표를 갖는 것은 당연했죠. 그러나 회사 내에 고졸의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거죠. 어쩌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의 호기였구요."

윤 대표의 이러한 면접 얘기는 순식간에 전 공장에 소문이 났다. 그리고 윤 대표를 보고 모두들 "미친놈이 한명 들어왔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정말 창피했습니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구요. 그러나 마음을 다잡았죠. 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윤 대표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은 대졸 직원은 할 수 없는 분야에서 1등을 하자는 것이었다. 생산성 향상, 품질 향상, 불량 감소 등 회사의 이익이 되는 분야에서 1등을 하면 회사에 눈여겨볼 것이고, 그러면 '부장'이 결코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진=류승희 기자)

◆'민주화 운동', 기회를 제공하다

윤 대표는 현재의 자신이 있기까지 많은 노력과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도 따랐다고 말한다. 그 운은 바로 80년대 후반의 민주화 열풍이다.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면서 노조도 자신들의 요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서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자 관리직 직원들은 노조 앞에 나서서 이들을 달래기 어려워졌습니다. 또 모두 대졸 출신인 현장관리직은 고졸 출신인 기능직 노조보다 직급은 위지만 나이나 경험은 적을 수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대졸관리자와 고졸 기능직 간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현장관리를 맡기기 위해 대리로 발탁하게 됐죠. 운이 따른 거죠."

그러나 윤 대표가 운만으로 관리직이 된 것은 아니었다. '부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다. 매일 책과 씨름을 하면서 전문지식을 갈고 닦았다. 특히 원가산출분야에 집중했다. 이론에 현장경험을 접목해 남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또한 보고서에서도 대졸 직원보다 잘 쓴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이러한 노력이 그를 관리직으로 박탈하게 된 배경이었다.

그리고 회사의 기대(?)대로 관리직이 된 윤 대표는 금호타이어 공장을 한국 최고의 공장으로 만들었다. 많은 기업들이 윤 대표가 근무하는 공장으로 견학을 오기 시작했고, 청와대 초청을 받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앞에서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얘기가 박성용 회장 귀에 들어가 대리에서 차장으로 승진하면서 회장부속실로 옮기게 됐다.

회장부속실에서 근무하게 된 후에도 윤 대표는 특히 노사관계와 품질관리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현장 출신답게 기능직 직원에 대한 처우를 높이고, 품질향상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이러한 노력으로 6년 만에 대리에서 상무까지 승진하게 됐다.

◆평생 잊지 못할 고졸 출신 스트레스

고졸 출신 기능직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전무까지 오르기까지 윤 대표가 받은 스트레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윤 대표는 "영산강에 흘린 눈물의 3분의 1은 내 눈물"이라고 표현했다.

"대졸자가 실수를 하면 그냥 실수지만, 고졸자가 실수를 하면 무식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모든 간부가 고졸 출신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어요. 삼삼오오 모여 얘기할 때도 내가 고졸 출신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대화를 나누더군요. 능력을 배제한 학력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와 소외감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윤 대표에 대한 시기와 질투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윤 대표가 부장으로 승진한 후 회장 앞으로 전달된 투서만 48통에 달했다. 각종 음해 투서가 남발하자 윤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박성용 회장이 "중역이 될 사람이니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고 추진하라"고 신뢰해줘서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졸 출신이 할 수 없는 분야에서 1등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회사가 나를 발탁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구요. 이 때문에 신입 때부터 편견과 잘못된 제도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 당분간 '고졸 신화'로 불릴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요즘에는 잘못된 제도에 부딪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해봐야 안 되고 소용도 없다는 패배의식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도 희망과 비전을

윤 대표는 최근의 고졸 채용에 대해 "한편으로는 좋지만,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움도 있다"며 "정부와 기업의 계속된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노동부,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경총, 전경련, 상의 등 민관이 합동으로 학력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고졸 출신이어도 능력이 있으면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표가 내놓은 대안은 '4+2'제도. 고졸 출신 직원이 4년간 근무하면서 능력을 평가받으면 2년간 집중 교육을 시키고 이후에는 4년제 대졸 출신과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윤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고졸 출신에게도 희망과 꿈과 비전을 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스스로 능력을 키우면 회사에서 발탁한다는 믿음을 직원들에게 주면 회사에게도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뼛속까지 금호인인 윤생진 대표

윤생진 선진D&C 대표의 휴대전화 번호는 019-2*9-1**9번이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2000만명을 넘어섰지만 윤 대표는 아직도 2G폰을 사용하고 있다.

윤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스마트폰으로 바꾸면 전화번호를 010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번호에 3개의 9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자신이 모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잊지 않기 위해 전화번호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윤 대표의 설명이다.

윤 대표는 "나에게 종교는 금호고, 교주는 총수"라며 "어부의 아들로 있을 사람을 기능직 사원으로 뽑아줬고, 기능직 사원으로 끝날 수 있는 사람을 회장 비서실로 발탁해줬다. 금호 덕분에 현재의 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첫째가 가족을 위해, 둘째 처가를 위해, 셋째 외가를 위해 그리고 넷째는 금호그룹을 위해라고 말할 정도로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윤 대표는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형제간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나보다 더 마음 아프고 가슴이 찢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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