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중졸 '여공', 30대에 회사 대표 인생역전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12.0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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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컨설팅펌 인피플 채홍미 대표

열일곱 중졸 '여공', 30대에 회사 대표 인생역전


해외 MBA 학위 하나쯤 있어야 명함을 내밀법하게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곳이 컨설팅업계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의 평가가 생존을 좌우하는 냉정한 컨설팅업계이기에 오히려 학력의 약발은 짧고, 실력의 위력은 길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열일곱의 여공이 국내 1호 국제 공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다시 컨설팅펌 대표로 한발 한발 걸어온 궤적은 한편의 소설같다. 퍼실리테이션 전문 컨설팅펌 인피플의 채홍미 대표(39) 얘기다.



◇산업체특별학급, '외딴방'은 있었다

하루에 버스 한 대 구경하기 어려웠다. 80년대까지 전남 보성은 그랬다. 농사를 지으며 밥은 먹고 살았지만 2남 4녀의 학비를 대는 건 역부족이었다.



선생님은 부모님을 수도 없이 설득했지만 장남 바로 밑 장녀였기에 포기해야할 게 많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혈혈단신으로 광주 전남방직에 취직했다.

교복입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대학교는 꼭 또래들과 같은 시기에 입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직원이 2000명에 달하는 대기업이었던지라 산업체특별학급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주 3교대 근무 때문에 출퇴근 매주 바뀌면 수업 시간도 그에 맞춰 반이 바뀌었다. 담임선생님조차 수업시간을 헷갈려할 정도였다.


작업반장들은 졸업 후 직원들의 이탈을 우려해 수업을 못 듣도록 일부러 12시간 근무조로 편입시키곤 했다. 졸음을 참아가며 버텼지만 수업 진도가 제대로 나갈리 만무했다. 결국 산업체 특별학급을 그만두고 검정고시학원의 야간반에 등록했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되면 곧바로 학원으로 향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도시락을 싸올 틈도 없었다. 같은 반 학원생들은 '공순이'라고 놀렸다.

학원경리 일을 보던 여직원이 도시락을 싸와 매일같이 나눠줬다. 찾을 수 있다면 꼭 한 번 만나 "그 때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도시락 싸서 제 때 출근하고 자기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다 제 시간에 퇴근하는 경리가 꿈이었어요."

90년 광주를 떠나 지인의 소개로 서울 자양동의 화장품 로고 인쇄공장에 들어갔다. 방직공장에 비하면 일은 수월한 편이었다.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배화여전 영어통역과에 입학했다.

◇'광장'으로 나와 소통을 디자인하다

94년 GE와 삼성의 의료장비합작사인 GE메디칼에 입사했다. 여직원은 고졸출신이 대부분이고, 컴퓨터는 도스(DOS)가 대세였다. 면접관은 채 대표처럼 '대가 쎈' 여직원을 뽑을지, 말지 고심했다고 한다.

8년간 아침에 눈 뜨면 회사 갈 생각에 행복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경야독을 계속, 한양대 경영대학원까지 마쳤다. 모기업인 GE의 '6시그마'와 잭 웰치 전 GE 회장이 자신의 최대업적으로 꼽은 '워크아웃 타운미팅'을 도입시킨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

학력이 실력을 대신하는 컨설팅 업계에서 그녀가 고유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독특한 업무이력 때문이었다. 국내최대 토종 컨설팅업체 네모파트너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컨설턴트로 전직했다.

일회적인 전략 컨설팅보다 소통을 증진시켜 클라이언트가 컨설팅경험을 자산화 할 수 있는 프로세스 컨설팅에 더 매력을 느꼈다. 2008년 초 국내 1호 IAF(International Association Facilitation) 공인 퍼실리테이터로서 인피플을 설립했다. 퍼실리테이션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때다.

퍼실리테이션이란 조직회의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기술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회의에서 접하는 갈등과 의견대립을 원활히 해소하고 모든 구성원이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하는 체계다.

"퍼실리테이터는 답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내부 역량으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내부 회의를 디자인하고 이끄는 것이 주요임무에요. 전략컨설팅과 달리, 답을 도출하는 경험을 조직구성원들이 체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전략컨설팅은 외부환경이 빨리 변해서 컨설팅 결과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일회성 프로젝트 치고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아 중소기업이 접근하기 어렵다면, 퍼실리테이션은 그 반대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인피플의 주요 클라이언트도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들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퍼실리테이션의 가치를 느낀 대기업들이 주로 러브콜을 하기 때문이다.

퍼실리테이터이자 이제 5년차 CEO, 채홍미 대표는 "꼬인 기업경영도 굴곡있는 인생도 결국 '사람 속(인피플)'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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