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고문장소에 아들 근무시키기도…가책 못느껴"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11.12.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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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피해자 박문식씨 "김근태 선배가 받은 고문, 내가 받은 것과 일치"

"이근안, 고문장소에 아들 근무시키기도…가책 못느껴"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투병생활 끝에 타계한 것을 계기로 김 고문에게 고문을 가했던 이근안 전 경감(73·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이 지난 1월 한 주간지와 한 인터뷰가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인터뷰에서 이 전 경감은 고문을 자행한 사실을 부인하며,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이 전 경감에게 취조를 받았던 박문식 제원회계법인 대표는 30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나도 김근태 선배와 비슷한 고문을 받았다"며 이 전 경감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 전 경감은 친아들을 고문이 이뤄지는 대공분실에 근무시킬 정도로 당시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박 대표는 서울대 재학 중 1981년 '전민학련·전민노련 사건(학림 사건)'으로 끌려가 이 전 경감에게 취조를 받았으며 징역 5년을 선고받고 1983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김근태 고문도 연루된 '서울대 민추위 사건(깃발 사건)'으로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박 대표는 1999년 이 전 경감을 독직폭행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또 서울고법은 지난해 학림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재심에서 "수사기관의 불법 강제연행과 불법 구금, 고문· 가혹행위로 받아낸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내렸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문답.


- 고 김근태 고문 유족에게 조문은 했나.
▶ 아직 빈소에 못가고 있다. 내가 과거 김근태 선배와 직접 활동을 함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내서 빈소에 찾아뵐 생각이다.

- 이근안 전 경감이 인터뷰에서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고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신문(訊問) 기술자'가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했는데.
▶ 예술이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 그 사람의 자기 주장일 뿐이다. 또 고문을 안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내가 1981년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1달 가까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과 같이 살았는데, 이근안이 고문을 안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나중에 김근태 선배가 이근안한테 고문을 당했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 내용이 내가 당한 것과 많이 일치하더라.

- 이 전 경감이 출소 후 종교에 귀의한 뒤 자신의 행위가 '애국 행위'였다고 주장하고,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일할 것이라고 했다.
▶ 그건 이해가 간다. 일반적인 경찰관이라면 신분상 필요에 따라 고문과 폭행을 하기 때문에, 고문을 하는 순간이 지나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이씨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위에서 시켜서 하는 수 없이 고문을 한다'는 인상이 아니고 철저히 반공주의자이기 때문에 고문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친아들까지 고문이 자행되는 대공분실에 의경인지, 전경인지로 근무시킬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 김 고문이 고문으로 상당한 후유증을 앓았는데, 박 대표에게 후유증은 없었나.
▶ 나도 교도소에 수감된 뒤 고문 후유증인 중증 천식과 호흡장애를 앓아 반년 이상 병동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내가 앓은 질환이나, 김근태 선배가 앓은 파킨슨병에 유전적인 요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건강한 상황에서는 그런 병이 나타나지 않는다. 고문이 그런 병을 촉발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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