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는 창업의 절망 끝에서 희망의 홈런을 쏘다

머니투데이 이정훈 월간 외식경영 2011.12.02 21:33
글자크기

'화미소금구이' 이성만 대표

많은 외식업 창업자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쉽게 생각하고 식당을 차렸다가 큰코다치는 경우를 본다. '화미소금구이' 이성만 대표도 그랬다.

비교적 순탄하게 직장생활과 사업체 경영을 하다가 사업이 어려워지자 그 대안으로 식당을 차렸다. 그러나 준비 없이 시작한 식당은 몇 년 동안 적자에 허덕였고 가정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실패를 인정하고 식당을 접으려고 결심했지만 그동안 고생한 것이 너무 억울했다. 넘어지게 한 돌부리를 잡고 일어선다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실천했다. 자신의 의식을 바꾸고 지금까지의 태도와 관행과 콘셉트를 모두 바꾸었다. 그러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 적성 맞지 않아 조선분야 포기, 새 직장 영업부서 근무 뒤 개인사업
준비 없는 창업의 절망 끝에서 희망의 홈런을 쏘다


'화미소금구이' 이성만(48) 대표는 조선공학도였다. 우리나라 조선공업이 일본을 따라잡으며 세계 수위로 도약하던 시기, 조선 산업은 청소년들에게 무지갯빛 미래였고 유망분야였다. 이 대표도 자신의 적성보다 탄탄한 장래를 위해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그러나 진로를 수정했다. 대학졸업 후 6개월간 국내 굴지의 조선소인 ‘ㅅ중공업’에서 선박 설계 업무를 했는데, 역시 본인의 성격이나 적성과 거리가 먼 일이었다. 미련 없이 그만두고 특수강으로 유명했던 대기업체에 들어가 일반관리 업무를 맡아보았다.

어느 정도 업무를 파악한 후 그는 영업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영업 업무는 그에게 아주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다. 그제야 제 물을 만났다.


당시에는 모든 건물의 난간이 철재로 되어있었는데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특수강재 난간을 시공하자 서울 코엑스를 비롯한 대형건물부터 일반 건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특수강으로 난간을 시공하는 붐이 일었다. 이로써 회사는 호경기를 맞았다.

영업업무를 하던 이 대표는 이때 알게 된 거래처를 기반으로 삼아 회사를 나와 독립 법인을 스스로 세웠다.

◇ 건설경기 침체로 사업 접고 외식업 시작
그러나 전반적인 건설경기 침체 속에 거래처의 부실채권이 점차 늘어나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업종 특성상 거래규모가 워낙 커, 단 한 방으로 다시 재기하는 수도 있지만 이 대표는 좀 더 안정적인 수익원을 찾아보기로 하고 사업을 접었다.

이 대표가 사업을 하면서 영업활동을 할 때, 거래처 인사들을 접대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마다 접대장소로 잡은 음식점들에 대해 조금씩 나름대로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이 느꼈던 아쉬움의 요소들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음식점을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11월에 지금의 자리에 '명품관'이라는 이름의 정육식당을 차렸다. 그러나 아무런 계획도 지식도 경험도 비전도 대책도 없이 시작한 음식 장사는 이성만 대표에게 끝없는 고통과 비용만 요구하는 괴물 블랙홀이 되었다.

문을 열자 손님이 많아 장사는 잘 되었다. 그런데 남는 게 없었다. 바쁘게 일을 해도 겨우 수지를 맞추거나 적자였다.

이 대표는 처음 식당을 차리면서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정작 고기나 식당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었던 이 대표는 ‘고기는 육부장 쓰면 되겠지. 반찬은 찬모 쓰면 되겠지, 시장은 주방직원에게 시키면 되겠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예전 사업체에서 했던 대로 전문성 있는 부하직원들에게 맡기고 그저 자신은 왔다 갔다 하면서 수금이나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상대방을 너무 모르고 링에 올라갔다가 쌍코피가 터진 권투선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몇 년간을 내리 ‘식당’이라는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준비 없는 창업의 절망 끝에서 희망의 홈런을 쏘다
◇ 이 대표가 되돌아본 과거 실수들
그의 첫 번째 실수는 잘못된 입지 선택이었다.
당장 수입원이 사라지고 돈 쓸 곳은 많아지자 마음이 다급해져 판단력이 흐려졌다. 당시 점포 주변은 9000세대가 새로 들어선 대단위 재개발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 세대수도 많았고 비교적 중산층이 선호하는 평형이 주를 이뤄 겉으로 보기에는 무난한 입지였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 써서 입주민의 성향을 분석해보았더라면 그리 좋은 입지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입주민 대다수가 원주민인데 이들은 원래 적은 평수의 서민 아파트나 개인주택에 살다가 대출을 받아 무리해서 입주한 사람들이 많았다. 때문에 이들은 매달 일정액을 입주 대출금으로 갚아나가야 했기에 가처분소득이 아주 적었다. 비록 중형 아파트가 수천 가구 들어섰지만 소비 여력이 있는 가구가 드물었던 것이다. 조급한 마음이 부른 실수였다.

두 번째 실수는 식당주인이 전혀 전문지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고깃집을 열면서 고기에 대해 전혀 몰랐고, 반찬 만들기, 메뉴 개발이나 구색요령, 고기나 식재료 구입요령, 외식업 트렌드, 고객의 심리나 취향, 접객요령, 홍보요령 등등 외식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전혀 몰랐기 때문에 식당운영에 고민하지 않았고, 고민이 없었기에 쉽게 결정했으며, 서둘러서 준비 없이 개점해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다.

세 번째 실수는 잘못된 인력관리다.
예전 사업체 경영하던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식당운영과 일반 사업체 경영을 혼동하였다. 핵심 책임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면 조직이 저절로 굴러간다고 생각하고 주방과 홀의 책임자들에게 전권을 맡겼다.

음식이나 식당 운영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책임자들이 알아서 하도록 방치한 결과는 참혹했다. 몇몇 종업원은 술 마시고 무단결근하고, 종업원들끼리 매일 서로 싸우고 난리였다. 실제 필요 인원보다 더 채용해 인력이 남아도는 것도 문제였다. 많은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부분도 큰 손실이었다.

준비 없는 창업의 절망 끝에서 희망의 홈런을 쏘다
네 번째 실수는 잘못된 의식과 자세, 그리고 자신감 부족이다.
과거에 잘 나갔던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그 역시 빠졌다. 큰 사업체를 거느렸던 경험, 큰돈을 만졌던 경험 때문에 이 대표는 음식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만 바라보았다.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도 잘 못했다. 어쩌다 음식투정을 하는 손님을 보면 제대로 응대를 못하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고는 했다. 지인들에게 식당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대인관계도 차츰 축소되었다. 하루하루 식당에 나오는 게 고통스러웠다.

다섯 번째 실수는 거품이 낀 임차료를 조정하지 않고 그냥 수용하여 개점한 점이다.
231.41㎡(70평) 넓이의 점포를 보증금 5000만원에 월 550만원에 임차하였는데 4년 전에 이 금액은 너무 비싼 측면이 있다.

인접한 어느 점포에서 첫 거래를 이와 비슷하게 책정하자 이것이 기준금액이 되었다고는 하나 충분히 이의제기와 조정의 여지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큰돈’만 만지던 이 대표의 감각으로는 550만원도 하룻저녁 술값 정도의 푼돈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밖에 자원배분의 비효율성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초기 투자금 1억 5000만원 가운데 임차보증금 5000만원을 제외한 1억 원을 인테리어와 시설비에 투자하였는데, 고정비에 들어간 돈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테리어에 그렇게 막대한 금액을 쏟아 부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점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발품을 팔아 좋은 양질의 고기를 수소문해 고객에게 고품질의 고기를 서비스했다면 단골손님이라도 많이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마음 하나 바꾸니 모든 게 바뀌어
허덕거리고 고생해서 겨우 본전치기 하거나 운영비가 모자라는 달에는 돈을 메워야 하는 일이 반복되자 이 대표는 이젠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려는 순간, 한 쪽에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왔다.

투자금 1억 5000만원 까먹는 것도 그렇지만,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쉬지 않고 4년간 매일 고생한 아내 허수경(46)씨를 떠올리니 너무 미안했다. 식당 일은 물론이고 사회생활도 안 해보고 시집 온 아내였다.

‘나 또한 어차피 이 길에 들어섰으니 지금까지 실수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제대로 한 번 해보아야겠다’는 오기가 이 대표에게 서서히 자릴 잡았다.

마음을 바꾸니 지금까지의 문제점들이 눈에 보였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식을 스스로에게 자꾸 주입하려고 애썼다. 먼저 점포 주인을 찾아갔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임대료가 너무 비싸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 합리적인 선으로 내려달라고 간청했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던 주인과의 조정 끝에 월 330만원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임대료 부담을 다소 덜고 나서 전문 컨설턴트와 상의하여 식당의 옥호를 '명품관'에서 '화미소금구이'로 바꾸었다. 인테리어도 옥호에 맞게 새로 보강하였다. 종업원들과도 자주 스킨십을 가져 유대를 다지고 있다. 이 대표는 한편으로 그들에게 수시로 명시적으로 각자의 임무와 역할을 일깨워준다.

그는 음식에 대한 공부에도 파고들었다. 외식관련 서적과 잡지를 탐독하고 점포운영에 필요한 벤치마킹과 조리 교육에도 참석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컨설턴트가 알선해준 대구의 업소에 KTX를 타고 가서 고기 조리법에 대해 배우고 다시 KTX를 타고 저녁에 돌아와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한 달 동안이나 인천과 대구를 오갔지만 새로운 의욕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메뉴 콘셉트도 입지에 부합하는 최고급 돼지고기 생삼겹살(150g, 9000원)과 생목살(150g, 9000원) 구이로 바꾸었다. 영업시간도 종전의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에서, 12시까지로 세 시간 늘렸다.

그동안의 노력과 전략이 주효, 눈에 띄게 늘어난 저녁 매출을 중심으로 점포가 차츰 살아났다. 평소 저녁 손님이 적어 매출 증대에 고심했는데 상호를 바꾸자 자연스럽게 식사 손님 위주에서 술과 고기 손님 위주로 교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이 대표가 바라던 바였다.

점심 메뉴는 과거부터 인기 메뉴였던 갈비탕(7000원)과 함께 새로 투입한 한우국밥(6000원)이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점심 메뉴를 보강하기 위해 예전의 주 메뉴였던 고추장불고기쌈밥(120g, 8000원)을 다시 리바이벌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주변 아파트 단지도 과거 원주민에서 서서히 소비여력을 갖춘 외지인들로 물갈이가 되고 있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점포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시절 '인천 SK 와이번즈 야구단 후원회'의 후원회원과 부회장을 지내고, 2008년부터 작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개인적으로 열성적인 야구팬이었기에 순수하게 연고구단을 후원했던 것이다.
준비 없는 창업의 절망 끝에서 희망의 홈런을 쏘다
그러나 올해부터 이것도 그만두었다. 오로지 식당 정상화에 올인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성만 대표는 ‘화미소금구이’라는 팀의 지휘봉을 새로 잡은 신임 감독의 자세로 팀의 컬러와 분위기를 일신시키는데 성공했다. 지난 시즌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도 성공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을 넘어가는 멋진 대박 홈런을 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